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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4 (화)

    이슈 스타와의 인터뷰

    장혜진 “엄마역은 다 똑같다고? 각자 다른 존재라 새롭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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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개봉 영화 ‘넘버원’ 엄마 은실 役

    상실 딛고 씩씩하게 사는 유쾌한 엄마

    “긴 무명 생활…은실 인생 나와 닮아”

    헤럴드경제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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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제가 답변은 잘하는데, 좀 길 수 있어요. 알아서 잘라주셔야 해요.”(웃음)

    시작부터 유쾌함이 넘쳤다. 웃음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웃음으로 끝났다. 잔뜩 들뜨고 신난 그에게서 툭툭 튀어나오는 가벼운 애교들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듯 경계를 사정없이 무장해제시키는 에너지 속에는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그만의 ‘마음가짐’과 ‘단단함’이 있었다. “옆집 누나 같은, 그리고 엄마 같은, 때로는 이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우 장혜진은 그 자체로 이미 자신의 목표를 이뤄낸 듯 모였다.

    장혜진이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넘버원’으로 조만간 관객들을 찾는다. 이번 영화에서 장혜진은 ‘기생충’(2019)에 이어 7년 만에 최우식과 모자지간으로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장혜진은 ‘엄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장혜진은 “내가 엄마 역할을 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엄마는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개개인으로 각각 다른 존재기 때문에 할 때마다 새롭다”고 말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현실적이고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엄마(‘기생충’·충숙), 친구 같은 엄마이지만 정작 아이의 아픔을 외면하는 무기력한 엄마(‘세계의 주인’·태선), 그리고 남은 아들을 위해 힘을 내 살아가는 씩씩한 엄마(‘넘버원’·은실)까지. 모두가 똑같이 ‘엄마’라 불리지만, 장혜진이 연기한 ‘엄마’에는 저마다 다른 얼굴과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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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들을 한 명씩 연기할 때마다 ‘엄마’라고 퉁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모두 다른 존재고, 그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엄마라고 하면 모두가 희생적이고,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엄마가 있고 저런 엄마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인 거죠.”

    영화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아들 ‘하민’(최우식 분)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 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하민은 어떻게든 엄마의 밥을 먹지 않기 위해 일찍이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부산에 남은 은실은 가끔 아들 끼니 걱정을 하면서도 유쾌하게 저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장혜진은 “아들과 (물리적)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유쾌하게 그려지길 바랐다”면서 “은실의 삶은 늘 슬퍼하고 걱정하는 삶이 아니다. 그저 또 한 명의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은실의 삶이 연기 하나하나에 녹아들길 바랐다”고 했다.

    들여다보면 절대 순탄치만은 않았던 ‘은실’의 인생은 장혜진의 배우 인생과 닮았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소중한 큰아들까지 세상을 떠난 은실은 그럼에도 살기 위해 밥숟가락을 든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그를 짓눌렀지만, 결국 은실은 스스로 일어나 뚜벅뚜벅 앞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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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찬가지로 장혜진에게도 길었던 어둠의 터널이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1998)에서 단역으로 데뷔했으나, 돌연 9년간 업계를 떠났다. 자신보다 연기를 잘하는 이들 속에서 자신감을 잃다보니 연기하는 것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게 당시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고향에 내려간 그는 마트 직원, 백화점 판매원, 연기학원 마케팅팀장 등 연기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장혜진은 지난 2007년 영화 ‘밀양’을 통해 연기판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창동 감독의 출연 제의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의감과 불안감을 내려놓고 다시 일어선 장혜진은 10년 후 오스카의 주역이, 그리고 오늘날의 ‘신(新) 국민 엄마’가 됐다. 그는 “삶이 나를 배우로 만든 것”이라며 회상했다.

    “제 삶이 평탄했다면, 그 많은 감정이 표현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난 삶이 제 연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많은 일을 겪었지만, 지나고 보니 부정적인 일들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은실이가 딱 그렇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진 사람이죠.”

    최우식은 장혜진을 ‘엄마’라고 부른다. ‘기생충’ 촬영 때부터 부르던 호칭이다. 그만큼 둘 사이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보였다. “우식이랑은 결이 너무 잘 맞아요.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어요.” 이번 영화에서 두 모자가 보여주는 시너지도 기대 이상이다.

    장혜진은 “기생충 이후 그 몇 년 사이에 우식 배우의 연기가 깊고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에 놀랐다”면서 “내 연기가 거친 면이 있고, 감정이 과할 때도 있어서 그런지 우식 배우의 연기가 유독 너무 좋게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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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넘버원’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은실이 차려주는 ‘집밥’이다. ‘엄마’란 단어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거기에 집밥까지 치고 들어오니 손쓸 방법이 없다. 그 울컥함이 지나면 영원하지 않은 부모와의 시간에 대한 메시지가 깊게 남는다. 그리고 그에 대해 관객이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힘이다.

    “엄마는 너무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때론 애증의 관계이면서 또 나를 닮은 누군가에 대한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하잖아요. 이 영화는 ‘엄마 이야기가 나오니까 울어야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 우리 엄마가 이런 삶을 살았겠구나’라며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만드는 영화에요. 시사회가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을 보니 각자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 ‘넘버원’을 굳이 표현하자면 과하지 않은 ‘새로운 신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혜진은 배역과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 중이다. 지난해 그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독립 예술영화 ‘세계의 주인’에서도 태선으로 등장해 ‘윤가은 감독의 페르소나’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뽐냈다. 장혜진은 “윤 감독이 정말 꼭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느새 거장 감독이 되어서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그에게 연기는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다. 쉬지 않고 그를 연기의 세계에서 마음껏 뛰놀게 만드는 힘은 여기에 있다. 장혜진은 “재미없으면 억만금을 줘도 하기 싫은데, 연기는 너무 재미있고, 현장도 매번 새롭다”면서 “할 것이 잔뜩 쌓여있으면 언제 다하지 싶어서 지치기 때문에, 매 작품을 마지막처럼 아쉬움 없이 임하는 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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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작품을 마지막인 듯 임하지만, 결국 그의 꿈은 길고 가늘게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엄마 역할만 하다가 다들 실제로 보면 ‘어려 보인다’, ‘예쁘다’란 말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왠지 쾌감이 있어요.” 마지막까지 귀여운 웃음이 넘쳤다.

    “제가 또래보다 일찍 ‘엄마’가 됐어요. 현재로선 ‘일찍 엄마가 됐으니, 앞으로도 엄마로 길게 가보자’란 생각이에요. 제가 엄마를 연기한다고 해서, 엄마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때로 나이에 맞는 엄마 역할, 때론 더 나이가 든 엄마도 연기하면서 그렇게 재미있게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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