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온 ‘설상 첫 금’ 순간도 놓친 독점 중계
일부 종목 제외 시청률 1%대 ‘굴욕’
지상파 중계권 재판매 협상 결렬에 보도 급감
8시간 시차·스타 부재 ‘구조적 악재’ 겹쳐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최초의 금메달이라는 스노보드 여자 하프라이프 최가온(18)의 쾌거마저 이른바 ‘중계 패싱’ 논란에 휘말리면서 빛이 바래는 분위기다. 특정 방송사의 중계권 독점이 부른 ‘보편적 시청권’ 침해가 국민적 무관심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한국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최가온은 1, 2차 시기 실패를 딛고 3차 시기에서 90.25점을 획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금메달 소식을 한 줄짜리 자막으로 처리한 JTBC. 사진=중계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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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은 많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단독 중계하는 JTBC가 메인 채널에서 최가온의 경기 대신 쇼트트랙 중계를 택했기 때문이다. 금메달 확정 순간은 돈을 지불한 일부 시청자만 볼 수 있는 스포츠 채널에서 송출됐다. 메인 채널에서는 자막 한 줄로 처리되는 데 그쳤다.
수치로 나타난 올림픽 열기는 처참한 수준이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7일 방송된 개막식 생중계 시청률은 1.8%(전국 가구 기준)에 머물렀다. 이는 지상파 3사가 동시 중계했던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시청률(KBS1 9.9%, SBS 4.1%, MBC 4.0% 등 합계 18%)과 비교하면 약 10분의 1 수준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지상파 합계 44.6%)은 고사하고,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으로 치러진 2021년 도쿄 올림픽(17.2%)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 같은 ‘역대급 무관심’의 일차적 원인으로는 JTBC의 중계권 독점이 꼽힌다. JTBC는 약 6000억 원을 투입해 2032년까지 올림픽·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했다. 이른바 지상파 3사가 이어온 ‘코리아풀(Korea Pool)’ 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JTBC는 중계권료 분담을 놓고 지상파 3사와의 재판매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올림픽 보도를 최소화하는 사실상 ‘보이콧’ 전략을 택했다. 실제로 KBS·MBC·SBS 메인 뉴스의 올림픽 보도량은 다른 대회에 비해 눈에 띄게 급감했다. 심지어 스포츠뉴스에서도 메인 소식을 동계올림픽이 아닌 해외 스포츠가 차지할 정도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뉴스에서 올림픽 소식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무관심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물론 JTBC는 이같은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JTBC 측은 “JTBC가 과도하게 높은 금액으로 중계권을 따왔다는 주장은 대표적인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지상파의 동계올림픽 중계권료도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200만 달러대 초반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3000만 달러대 초반 등으로 치솟았다는 것이 JTBC의 논리다. JTBC 관계자는 “동계 올림픽와 월드컵 모두 이전 대회와 비슷하거나 물가 상승률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며 “과도한 금액으로 계약했다는 주장은 특정 관계자의 일방적인 얘기”라고 했다.
동계올림픽에 대한 무관심은 구조적인 악재도 한몫한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시차가 8시간이다. 주요 경기가 대부분 한국 시각으로 심야나 새벽 시간대에 배치됐다. 쇼트트랙 등 인기 종목의 결승전 시청률이 분당 최고 13.8%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특정 시간대와 특정 채널에 국한된 지표일 뿐이다.
광고 시장 역시 차갑게 식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메인 스폰서를 제외하고는 올림픽 광고 집행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중계 채널이 하나뿐인 상황에서 시차까지 겹쳐 광고 효율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장에 있는 선수들 조차 이례적인 무관심에 놀라는 분위기다.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종목 동메달을 획득한 유승은(18)은 현장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가 많이 관심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김연아, 이상화, 윤성빈 등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스타 플레이어가 부재한 것도 흥행 부진을 가속화했다는 평가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보편적 시청권’ 논의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심미선 순천향대 교수는 지난 12일 열린 ‘스포츠 중계권과 미디어 주권의 위기’ 세미나에서 “올림픽은 국민적 공유자산인데 특정 방송사의 독점으로 인해 시청 소외 계층이 발생했다”며 “보편적 시청권의 조건에 ‘무료 지상파 방송’을 명시하는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도 2015년 유럽 전체의 올림픽 중계권을 디스커버리 채널이 독점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사업자의 무리한 선택에 따른 실패가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국내 상황과 유사하며, 한국이 글로벌 스포츠 업계에서 호구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재팬 컨소시엄’ 형태 등과 같이 국내 사업자들의 공동 대응 방식과 법적 제도의 정교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제2, 제3의 JTBC 사태가 재발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세진 한양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국민적 집단시청경험이 무너진 개탄스러운 상황이 발생한 것은 결국 정책 실패의 결과”라며 “방송 산업의 심각한 위기에 대한 수많은 사전 징후와 방송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이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스포츠 중계권 이슈에 관한 정부의 개입 적기 또한 놓쳐버렸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제도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국민의 시청권이 지나치게 제한된 상황은 매우 유감”이라며 “방송사 간 중계권 협상을 강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번 동계올림픽 파문은 자본의 논리로 무너진 공적 미디어 주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오는 6월에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에서 이같은 사태가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정치권, 방송계가 하루빨리 해법을 찾아야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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