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대표팀 류현진이 14일(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도미니카공화국과 8강전 2회 3실점 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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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39)의 국가대표 여정이 아쉬움 속에 마침표를 찍었다. 류현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으로 대변되는 한국 야구 영광의 시대를 이끈 대표팀 원조 에이스다. 17년 만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이번 WBC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가장 믿을 수 있는 에이스였다.
류현진은 14일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WBC 8강 도미니카공화국전에 선발 등판해 1.2이닝 3피안타 3볼넷 1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1회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케텔 마르테, 후안 소토로 이어지는 강력한 타선을 삼자범퇴로 막았지만 2회를 이겨내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재능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이 불과 1이닝 만에 ‘콘택트 중심’으로 접근법을 바꿨다. 큰 스윙 만으로는 류현진의 정교한 제구와 노련한 수 싸움을 상대하기 쉽지 않겠다고 판단한 듯 했다.
1사 1루에서 주니오르 카미네로에게 2루타를 맞았고, 훌리오 로드리게스의 내야 땅볼, 타티스 주니어의 적시타로 3실점 했다. 실투라고 할 만한 공은 없었다. 대부분 공이 존 구석구석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아예 바깥으로 빠지는 공으로 범타를 유도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힘이 모자랐다.
땅바닥에 파묻다시피 낮게 떨어뜨린 커브를 카미네로가 그대로 걷어올려 2루타를 만들었다. 1루에 있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순식간에 3루를 돌아 홈을 파고 들었다. 김주원의 홈 송구가 다소 옆으로 빗나가는 걸 보자마자 안쪽으로 경로를 바꿔 슬라이딩을 했다.
내년이면 40세가 되는 류현진에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 시절 구위를 바랄 수는 없었다.
류현진이 2회 2사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대표팀은 노경은, 박영현, 곽빈, 데인 더닝, 고영표, 조병현, 고우석, 소형준을 줄지어 마운드에 올리며 ‘벌떼 작전’으로 버텼다. 3회까지 7실점 하고 4~6회 연속 3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지만, 7회말 결국 콜드게임 패배를 확정짓는 3점 홈런을 맞았다.
경기 후 류현진은 “국가대표는 이제 마지막인 것 같다. 아쉽지만 이후로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마지막 국가대표임을 분명히 했다. 류현진은 “마지막까지 대표팀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웠다. 마지막이 아쉽지만, 여기까지 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소감을 전했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도 “지난해 2월 대표팀 감독이 된 후로 꾸준히 (류현진이) 국가대표로 나가기를 원했다. 성적도 태도도 모범적이었다. 그래서 그 나이까지 대표팀 선발투수로 경쟁력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류현진은 프로 데뷔 첫해인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곧장 대표팀에 선발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선발로 등판해 8.1이닝 2실점 호투로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9년 WBC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5차례 등판하며 준우승에 기여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예선과 결승 대만전 2경기에 모두 선발 등판해 역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가 가장 빛났던 시대는 곧 ‘류현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6 WBC 8강을 끝으로 류현진은 태극마크를 내려놓는다. 그 뒤를 이을 국가대표 에이스를 아직 새로 찾지 못했다는 게 지금 한국 야구의 가장 큰 고민이다.
류현진은 ‘후계자가 없다’는 말에 “그렇지는 않다. 어린 투수들이 여기 와서 경기를 한 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선수들과 맞대결한 것도 공부, 경험이 많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마이애미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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