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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 초창기 사진 가치는 얼마나 될까. 사례가 별로 없어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최근 한 경매 업체를 통해 1920년대 사진 두 장과 졸업증서 등이 한꺼번에 500만 원(추정)에 낙찰됐다.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소재 경매 회사 ‘코베이’의 ‘삶의 흔적 경매전’에 출품됐던 1924, 5년 야구 사진과 1932년 경성고등상업학교(京城高等商業學校. 서울대 상대 전신) 민용규(閔鏞圭)의 졸업증서(卒業證書) 한 장 등 3점이 시작 가 3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 500만 원에 팔렸다.
이 땅에 야구가 들어온 1904년 이래 초창기 야구사진은 아주 희귀하다. 전해오는 실물 원본이 거의 없다.
이번에 코베이에 출품된 것은 졸업증서가 민용규의 명의로 돼 있는데다 사진에 그의 서명도 들어 있어 그의 집안에서 흘러나온 자료로 보인다. 3점 모두 연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만하다.
민용규는 민경훈 제19대 대한야구협회 회장(2008년)의 선친으로 일제 강점기에 휘문고보(휘문고 전신)와 경성전기 등에서 야구선수생활을 했다. 낙찰된 사진 두 장은 민용규의 휘문고보 시절 야구부원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다. 한 장은 사진 밑 부분 왼쪽에 ‘1924 Spring in 민’ 이라는 서명이 있고, 이와타(岩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명은 ‘민’이라는 글자로 보아 민용규가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타는 대한제국 때 황실사진사로 일했던 일본인 이와타 가나에로 경성(서울)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로 40, 세로 34cm 크기의 이 사진에는 중절모를 쓴 휘문고보 감독 박석윤과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했던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과 그의 동생 전형철, 민용규 등이 들어 있다. 박석윤은 1922년 12월에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이 사상 최초로 조선 땅을 방문, 전조선 선발팀과 경기를 했을 때 조선 대표 팀 투수로 완투를 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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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54, 세로 39.5cm인 다른 사진 한 장은 밑에 ‘휘문축구야구선수송별기념(徽文蹴球野球選手送別記念)1925.2.17.’이라는 글씨와 더불어 사진을 붙여 놓은 앨범 낱장 오른쪽 아랫부분에 ‘경성 서린동 139 금광당사진관’이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다.
이 사진이 경합 끝에 고가에 낙찰된 것은 일제 때에 온 재산을 털어 귀중한 민족 문화재 수집에 몰두했던 간송 전형필과 한국야구 초창기 명선수였던 박석윤 등이 들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형필이 국보 제70호로 지정돼 있는 『훈민정음』을 1943년에 당시 기와집 11채 값인 거금 1만 1000원을 주고 손에 넣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전형필은 휘문고보에 입학한 뒤 야구부에 들어가 1루수로 활동했고 4학년 때인 1924년에는 야구부 부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1924년에는 일본 오사카로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전형필이 설립했던 간송기념관에는 『훈민정음』을 비롯한 국보 11점, 보물 11점, 서울시지정 문화재 4점 등이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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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낙찰된 사진 두 장이 유일본은 아니다. 전형필의 일대기를 그린 『간송 전형필』(199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는 낙찰된 사진 보다 상태가 더 좋은 사진이 수록돼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당시 기념사진을 찍었던 휘문고보 야구부(또는 축구부) 선수들의 집안에 같은 사진이 보관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한국야구사의 가장 오래된 사진은 1910년 2월 26일(음력) 관립한성고등학교(현 경기고 전신)와 황성기독청년회(현 YMCA)의 경기장면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출처=『간송 전형필』, 코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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