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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한국 남자골퍼들 “드라이버 잡을 홀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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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샷 ‘코리아 디스카운트’

코스는 좁다란데 OB구역만 많아

드라이버 대신 우드, 아이언 티샷

거리 1위 LPGA와 비슷한 279야드

PGA 가면 208명 중 203위 해당

중앙일보

장타 추세와 반대로 KPGA의 코스 전장은 줄고 있다. 장타자 김태훈은 드라이버를 칠 홀이 많지 않아 올해 평균 259야드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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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현재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거리 1위는 279야드(나운철)다. 남자 프로 투어 거리라고 믿기 어려운 숫자다. 샷거리 계측 관계자는 “혹시 한국 투어 거리 단위가 m인데 야드로 잘 못 본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279m는 305야드다. 남자 투어는 그 정도는 되야 정상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드라이브샷 거리 1위는 평균 319야드(트레이 멀리낙스·미국)다. 300야드가 넘는 선수가 54명이다.

민망하지만 KPGA 거리 1위는 279m가 아니고 279야드가 맞다. 한국 1등이 미국 PGA투어에 간다면 208명 중 203등이다. 미국에서 279야드로 1등을 하던 시절은 감나무 드라이버를 쓰던 1980년대다.

통계상 KPGA투어 선수들의 샷거리는 PGA투어가 아니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선수들과 견줄 만하다. 양 투어 1위의 평균 거리가 똑같이 279야드다. 딱 중간 순위 선수(259야드-256야드), 하위 10% 선수의 기록(246야드-245야드)도 비슷하다.

물론 KPGA 선수들의 장타 실력이 이 정도는 아니다. 축구나 농구 등 다른 스포츠처럼 골프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파워 차이는 확연하다. 2009년 KPGA에서 김대현이 304야드를 쳤고, 2012년 김봉섭(309야드)을 비롯해 6명이 300야드를 넘겼다. 선수들이 더욱 훈련을 열심히 하니 지금은 더 멀리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통계상으론 줄었다.

장이근은 지난해 아시안 투어에서 평균 310야드를 기록했다. 김태훈은 “아시안 투어에서 뛸 때는 310~320야드를 쳤다”고 했다. 그런 그들이 국내 투어에 오면 샷거리가 확 깎인다. 장이근은 올해 KPGA투어에서 평균 271야드, 김태훈은 259야드다.

국내 골프장은 페어웨이 잔디가 길어 런이 적은 편이다. 시즌 초반 차가운 기온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민망한 숫자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남자 프로골퍼들은 “올해 드라이버를 칠 수 없는 좁은 홀, 맞바람 부는 오르막 홀 등에서 거리를 쟀다”고 했다. 한 선수는 “‘왜 이 좁은 홀이냐’고 물었더니 경기위원이 ‘왜 드라이버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되묻더라”며 아쉬워했다.

KPGA 경기위원회는 “공정하게 하려다 거리를 재는 홀을 선정하는데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잘 하려다 한 실수를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시즌 초반이라 통계의 착시도 분명 클 것이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한국 남자 선수들의 샷거리 저평가 현상이 나타나더니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KPGA에서는 2013년 김태훈(301야드)을 끝으로 평균 300야드를 친 선수가 없다. 왜 전세계 모든 투어 샷거리는 늘어나는데 KPGA만 계속 줄어드는가.

해외 투어에서는 드라이버를 치기 좋은 넓은 홀에서 샷거리를 잰다. 일부러 약간 내리막을 고르기도 한다. 프로 스포츠는 일종의 쇼 비지니스이기도 하다. 선수들의 기량을 멋지게 포장해 보여주고, 대중의 동경과 환호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KPGA에서는 있는 실력도 줄여서 보여주고 있는 형국이다. 선수에게 왜 드라이버를 안 잡았느냐가 아니라 멀리 치려면 어떤 홀이 편한지 물어야 한다.

코스도 문제다. 지난해 한 매체는 PGA투어의 평균 전장이 2007년 6893야드에서 2017년 7276야드로 383야드가 늘어난 반면 KPGA투어의 평균 전장은 2007년 7113야드에서 지난해 7055야드로 58야드가 줄었다고 보도했다. 가뜩이나 OB가 많고 코스는 좁은데 전장까지 짧아지니 장타를 칠 필요가 없다.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능력은 퇴화된다.

KPGA투어 대회 스폰서의 예산이 적어 좋은 코스를 빌리기 어려운 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SK텔레콤 오픈은 17일 스카이72 골프장 하늘 코스에서 개막한다.

이 골프장에는 챔피언십 토너먼트용으로 만들어 놓은 오션 코스가 있다. 길고 변별력이 뛰어나 스카이72가 자랑하는 그 오션코스에서는 LPGA 대회가 열린다. KPGA는 선수들이 “드라이버를 칠 홀이 많지 않다”고 얘기하는 하늘 코스를 이용한다.

하늘코스에서는 2006년 미셸 위가 처음으로 남자대회 컷을 통과했다. 여성 선수가 컷 통과하기에 무난한 코스인지는 몰라도 남자 선수들이 장타의 매력을 발산하기는 어렵다. 선수들은 답답하다.

한국 골프계는 남자 선수들을 키에 맞지 않는 짧은 박스에 우겨 넣어 그나마 발목까지 잘라 버린 격이다. 그러면서 279야드라는 민망한 숫자가 나왔다. 279야드는 선수들의 거리가 아니라 남자 골프를 상품으로 쓰는 협회를 비롯한 대회 관계자의 마케팅 능력 수치로 보인다.

시즌이 계속되면 평균 샷거리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279라는 숫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279야드라는 숫자를 생각하면서 한국 골프계의 마케팅 능력이 감나무 드라이버를 쓰던 미국의 80년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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