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비해 열악한 한국 남자 골프
우승 뒤 설움 북받쳐 눈물 쏟아내
가장으로서 부담 속에 운동하지만
아이 생기면 더 강해지는 아빠들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후 어머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이태희는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고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KPGA 민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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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뛰는 이태희(34)는 지난 27일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는 눈물을 쏟았다. 이태희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나온다”며 서럽게 울었고, 인터뷰를 하던 현장 아나운서도 함께 울먹였다. 우승 확정 후 시간이 한참 지나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또 눈물을 보였다.
지난 20일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한 권성열(32)도 우승 직후 눈물을 흘렸다. 60경기 만에 처음 우승한 권성열은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우승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우승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승 순간 울컥하면서 눈물이 많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 우승자 전가람(23)도 울었다.
요즘 남자 선수는 ‘남자는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만 울어야 한다’는 옛말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울음이 잦다. 우승하면 거의 대부분 운다. 우승하고 활짝 웃는 여자 선수와 크게 대비된다.
그들은 왜 ‘울보’가 됐을까. 남자 선수는 여자 선수보다 서럽다. 대회 수가 줄었고 스폰서도 여자 쪽으로 편중됐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승을 하게 되면 북받쳤던 설움은 눈물로 터져 나온다.
여성 골퍼는 한국에서 최고가 되면 세계 최고다. 송경서 JTBC골프 해설위원은 “여성 선수는 일본과 미국으로 진출해도 여유 있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반면 남자 골프는 세계의 벽이 높다. 여성 선수보다 선수 생명이 길다보니 상대적으로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우승 후 눈물을 흘리는 권성열. 그는 "아버지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KPGA/민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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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되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다. 권성열은 아버지가 치과 의사지만 20대 중반에 독립했다. 투어 생활로 저축을 못해 결혼 자금이 없었다. 그는 “준비해놓고 결혼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결혼하게 되면 어떻게든 살게 된다는 조언에, 이래저래 받은 대출로 집을 얻어 결혼했다”고 말했다. 경제사정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도 어렵다. 권성열은 “태어나면 다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도 낳았다”고 말했다. 막상 아이가 생기자 ‘어떻게든 되겠지’ 하던 생각은 사라졌다. 권성열은 “잘 키울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훈련했다. 임신한 부인에게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는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장에서 지냈다. 예전에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만큼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 내 아이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책임감 때문에 집에 앉아 있지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이태희는 반대다. 한국 골프 최고의 연습벌레인데, 아이를 가진 뒤 훈련을 줄였다. 이태희는 “지난 2월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훈련을 덜 한다. 오히려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태희는 지난해 5월 카이도오픈에서 마지막 홀 더블보기로 역전패했다. 그날 쓰린 마음에 부인과 울다가 사랑의 결실을 얻었다. 그날 잉태한 아이가 올해 태어나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이태희는 “만약 지난해 우승했다면 아이가 생기는 축복은 없었을지 모른다. 내 인생은 또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이도 오픈 우승상금 6000만원을 놓치고, 3억원짜리 제네시스 우승을 차지했다.
권성열은 “아이를 낳고 우승해보니 아버지가 나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실감 났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래서 우승 후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존경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남자 골퍼는 약하지만 아버지 골퍼는 강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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