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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이슈 [연재] 매일경제 '쇼미 더 스포츠'

지긋지긋한 `월드컵 조별리그 경우의 수` 우리만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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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101]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에게 '경우의 수'는 오랜 친구이자 희망 고문이다. 특히, 월드컵 조별예선 통과와 관련해서는 4년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경우의 수'에 대해서 '이제는 지겹다'는 말을 하며, 때로는 이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이나, 미디어를 혐오하기까지 한다.

사실,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 때문이다. 다른 축구 강국들처럼 시원하게 승리해서 조별예선을 통과한다면 '경우의 수' 따위는 따질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가슴 졸일 이유도 없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축구이고, 월드컵이다.

월드컵 본선의 조별예선은 단 3경기만으로 16강 토너먼트 진출이 결정되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무대이다. 3경기를 10여 일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각 국 선수들은 극심한 체력소모와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런데, 축구는 승리와 패배 외에도 무승부가 존재하는 좀 특이한 스포츠이다. 승(3점), 패(0점), 무(1점) 각각의 경우에 따라 승점을 부여해 순위를 매기는데 세계 모든 나라의 프로리그는 모두 이 승점제를 택하고 있다. 다른 팀들에 비해 보다 많은 승리를 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하지만, 때로는 무승부를 통해 승점을 관리하는 전략도 필요한 것이 축구이다.

월드컵 조별예선도 승점에 따라 순위를 매기며, 이 결과로 16강 토너먼트 진출팀이 결정된다. 문제는 단 3경기로 순위를 매겨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실, '경우의 수'는 조별 예선 2경기를 마친 상태에서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한 팀들은 따질 필요가 없다. 남은 1경기의 승패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갈리는 상황에서만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냥 그 마지막 경기를 승리해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다면,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가 없다. 이 경우는 굳이 표현하자면 '광의의 경우의 수'이다.

반면에 마지막 경기를 이긴다 해도 같은 조,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결정 되거나, 마지막에 강 팀을 만나 비기거나 질 것이 예상될 때 따지는 것이 소위 진짜 '경우의 수'이다.

물론, 조별예선 2경기만으로 16강 토너먼트를 확정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현재의 월드컵 32강 체제가 정착된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에 대회당 많아야 8개팀, 적게는 2개팀 만이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 짓고 편안한 마음으로 3차전을 맞이하였다.

6개 대회에서 총 30번 있었으니, 대회 당 평균 5팀 정도로 전체 16강 진출 국가 중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조기 16강 확정은 30번 중에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4번으로 가장 많았고, 네덜란드, 스페인(3번), 잉글랜드, 벨기에, 프랑스(2번) 순이었는데, 어찌 보면 전통의 축구 강국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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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6일 러시아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훈련을 하고있다. /사진=(상트페테르부르크)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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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광의의 경우의 수'는 대부분의 팀에 해당된다. 하지만, 남은 1경기를 승리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전력을 다해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반면에 순수한 의미의 '경우의 수'는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를 따져봐야 되는 경우이다. 지금의 우리 상황이 그러하다. 대한민국은 마지막 독일전에 설사 승리한다 하더라도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없다. 멕시코와 스웨덴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우리가 독일을 이길 수만 있다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멕시코의 전력을 감안하면 스웨덴을 이길 충분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후좌우 상황을 냉정히 따져보면 좀 비관적이다. 우선, 지금까지 조별예선 1, 2차전에서 모두 패해 2패를 당한 팀이 16강에 진출한 예는 없었다. 승점 3점을 기록한 팀이 조별 예선을 통과한 것도 본선 32개국 시스템이 정착된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에 단 한 번뿐이었다.

게다가 축구에서 승·무·패는 단순 3분의 1 확률이 아니다. 모든 스포츠경기가 그러하듯이 전력의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 독일과 57위 한국 간 시합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 다른 상황들까지 잘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앞선 2경기가 더욱 아쉬워 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의 역사는 말 그대로 '경우의 수'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승리 시 자력 진출이 가능했던 적은 총 5번이었으나, 이 중 단 1번만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하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나이지리아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경쟁 팀인 그리스의 패배로 16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대한민국에게 '경우의 수'가 제대로 발동했던 유일한 역대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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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06 독일월드컵은 무승부나 심지어 패배 시에도 '경우의 수' 희망이 있었으나, 최악의 상황이 나오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1986 멕시코월드컵 이후, 조건부 16강 진출 가능이라는 경우의 수는 1998 프랑스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경우의 수'가 통했던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모든 팀이 사력을 다해 싸운다. 결국 승리가 전제되지 않고는 '경우의 수'라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스포츠의 가장 큰 가치는 승리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를 이루어 내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우의 수'도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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