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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홀드왕+검거왕, 생애 최고의 해 보낸 롯데 오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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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왕에 올라 KBO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건네받은 오현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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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사이드암 투수 오현택(33)에게 2018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해다. 데뷔 11년 만에 홀드 1위에 오르며 타이틀을 따냈다. 또 하나의 상도 받았다. 음주운전 후 뺑소니범을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줘 '의인(義人)'으로 선정된 것이다. 롯데 팬들은 오현택을 '빛현택'이라 부르며 '2관왕(홀드왕+검거왕)'에 올랐다며 칭찬했다. 지난 4일 조아제약 야구대상에서 재기상을 수상한 오현택을 만났다.

오현택은 올해 무려 72경기에 등판했다. 정규시즌(144경기)의 절반이고, 투수 중 출전경기 1위다. 3승 2패, 평균자책점 3.76. 홀드(구원투수가 리드를 지킨 뒤 다음 투수에게 넘긴 기록)는 25개를 따내 1위에 올랐다. 프로 무대에 뛰어든 뒤 최고 성적이었다. 오현택은 "롯데 이적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롯데에 아는 선수가 많지 않았지만 금세 적응했다. 부산도 너무 살기 좋다. 해운대 쪽에 사는데 산책하기도 좋다. 옆집에 두산에서 함께 있었던 (노)경은이 형이 산다. (FA 자격을 얻은 노경은이)이사를 가지 말아야 할텐데…"라고 했다.

2008년 원광대를 졸업한 오현택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두산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그는 2013년부터 1군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2014시즌 뒤엔 연봉이 1억1000만원까지 뛰었다. 하지만 부상이 오현택을 덮쳤다. 2015년 11월, 2017년 3월 두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그 사이 연봉은 6000만원까지 깎였다. 그리고 지난 겨울 4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된 그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오현택은 "사실 명단에서 빠질 거라고 예상했다. 두산엔 박치국이나 변진수 같은 젊고 뛰어난 (사이드암) 후배들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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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택의 투구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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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오현택은 "사실 야구를 그만두기 전에 롯데에서 한 번 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팬들의 열기가 워낙 대단하니까. 뉴욕 양키스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선수라면 한 번 뛰고 싶은 팀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저를 뽑아준 롯데가 고마웠다.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수술 뒤 공식 경기 기록도 없는데 믿어주셨다"고 덧붙였다. 그는 "조원우 전 감독, 김원형·주형광 코치, 그리고 트레이닝 파트에서 정말 관리를 잘 해주셨다. 특히 전지훈련 끝난 뒤 김원형 코치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조 감독님도 '성급해 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다"고 감사했다.

오현택에겐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보약 같았다. 부상 후 복귀 시즌으로 제법 많은 등판을 하면서 힘이 부칠 때였기 때문이다. 오현택 스스로도 "두 번 정도 고비가 있었다"고 했다. 휴식기 동안 오현택은 장한 일도 했다. 음주운전을 하다 20대 여성을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쫓아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지난달 29일엔 국회 교통안전포럼이 주최한 2018 선진교통안전대상 시상식에서 의인상을 받았다. 오현택은 "내가 첫 수상자라고 하더라. 다른 분들도 많은데 과분하고 감사했다. 내가 언제 국회에 가보겠느냐. 정말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KBO도 표창과 함께 포상금 500만원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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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뺑소니범 검거를 도운 뒤 경찰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오현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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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전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팀내 연습경기를 마치고 송승준 형과 저녁을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자주 가는 손세차장에서 세차를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교차로에서 대기하는데 반대편에소 오던 차가 행인을 치더라. 속도도 빠르지 않아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았는데 그냥 달아나는 걸 보고 음주운전 같았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차를 돌려 쫓았다"

부산에서 산 지 1년도 되지 않아 길을 잘 모르는 오현택은 경찰과 통화를 하면서 차를 추격했다. 처음엔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쫓았다. 다행히 차량은 좁은 길로 들어갔고, 그제서야 오현택은 차를 옆에 대서 문을 열고 달아나지 못하게 막았다. 오현택은 "1분 만에 경찰들이 와 검거했다. 나중에 들으니 이미 음주운전을 해서 면허가 취소된 사람이었다"고 했다.

자칫 오현택이 다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으려고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오현택은 "전혀 없었다. 음주운전자라 더 큰 사고가 날까 걱정되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보행자 분도 크게 다치지 않고, 추가 부상자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부모님께선 '다칠 수 있는데 왜 그랬느냐고도 걱정하시면서도 좋은 일 했다'고 칭찬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야구선수라 큰 관심을 받은 것 같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과정 속에서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었다. 경찰이 도착해 오현택에게도 음주 측정을 한 것이다. 오현택은 "원래 해야 하는 일이라도 하더라"며 "기사에 '새벽까지 뭐 했냐, 놀러다닌 거냐. 너도 술 마신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오현택은 "한동안 팀에선 이름 대신 '용감한 시민'이라고 불렸다. 양의지는 '의인 아니십니까'라고 놀리기도 했다. 좋은 별명이라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좋은 일만 가득한 한 해였지만 오현택은 "아쉽다"고 했다. 투구이닝수가 적어서다. 오현택은 올해 64와 3분의 이닝이었기 때문이다. 오현택은 "가을 야구를 못 한 것도 아깝지만 이닝 수가 부족했다. 경기당 1이닝도 되지 않았다"며 "이용훈 코치님이 한 두 타자 책임지는 투수가 아니라 1이닝을 책임지는 투수가 되라고 했다. 그래야 상품가치가 올라간다"고 했다.

오현택이 긴 이닝을 던지지 못한 건 잠수함 투수에게 강한 왼손타자용(피안타율 0.355) 무기가 없어서다. 오른손타자(피안타율 0.234)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슬라이더는 리그 최정상급이지만 좌타자에겐 쓰기 어려운 구종이다. 오현택은 "새로 부임한 양상문 감독님도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떨어지는 구종을 추가할 수 없겠느냐'고 하셨다. 나도 항상 필요성을 느껴서 체인지업 장착을 예전부터 시도했었고 지난해엔 후반기에 투심도 던졌다"고 했다.

이번엔 훈련방식 자체를 바꿀 계획이다. 오현택은 "예전엔 체인지업만 던지다 보니 슬라이더가 나빠졌다. 이제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면서 익혀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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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퓨처스(2군) 올스타전에서 우수투수상을 받은 뒤 아들과 함께 상을 받는 오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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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택에겐 8살 난 아들이 있다. 아버지가 야구선수란 사실을 아는 아들은 올해 친구들에게 아빠의 활약상을 자랑했다. 오현택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 기분 좋았다. 내년엔 아들 친구들을 야구장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의인, 훌륭한 야구 선수 이전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는 그의 미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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