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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한국 축구' 파울루 벤투와 대표팀

[도영인의 UAE 리포트]이청용의 용기, 그리고 벤투 감독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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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제공 | 대한축구협회


[두바이=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지난 주말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16강 준비에 한창인 ‘벤투호’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여동생 결혼식 참석을 위한 이청용의 일시 귀국이었습니다.

이청용은 대표팀이 아시안컵 C조 조 1위를 확정지은 지난 16일(한국시간) 열린 중국전까지 여동생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그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만약 대표팀이 중국을 이기지 못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면 일시 귀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을겁니다. 현실적으로 조 1위는 16일 경기 이후 5일간 휴식을 취하고 22일에야 16강전을 소화하지만, 만약 조 2위로 16강에 갔다면 20일에 경기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한국을 다녀올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이청용은 중국전 직후 벤투 감독을 직접 찾아가 19일 한국에서 열리는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냈다고 합니다. 대표팀 선수 관리는 코칭스태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벤투 감독은 이청용의 일시 귀국과 관련해 축구협회와 논의를 거쳤습니다. 그 결과 중국전 다음날인 17일 오전 이청용의 무박 3일짜리 일시 귀국이 전격적으로 승인됐습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대회에 참가한 선수가 가족 행사를 위해 일시 귀국한 것은 축구대표팀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로 인해 ‘벤투호’ 동료들도 이청용의 한국행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실 해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장면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에는 아내의 출산이나 자녀의 입학, 졸업 등의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을 경우 선수에게 휴가를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국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일이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표팀 소집 기간에 개인적인 사유로 일시 귀국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부터 가족의 경조사 중에서 어느선까지 허용을 해야하느냐 등에 대해 여러가지 시각과 의견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서 한발짝만 떨어져 보면 이번 이청용의 일시 귀국은 대표팀 문화의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편협적인 문제를 떠나 큰 틀에서 볼 때 이청용의 용기와 벤투 감독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마 대표팀을 거쳐간 수많은 선배들은 출산, 결혼 등 자신의 생애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당연히 안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소집기간 중에는 코칭스태프에게 쉽게 입을 열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축구와 같은 단체 종목의 경우 팀이 최우선의 가치이기 때문에 개인은 팀을 위해 어느정도 희생을 해야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벤투 감독은 이청용의 요청에 “가족이 우선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16강 일정과 컨디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국행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축구협회 내에서는 일부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는 전언입니다. 이전까지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 대회 중 일시 귀국을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결국 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감독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면서 이청용의 급작스러운 한국행이 성사됐다는 후문입니다.

이청용은 용기를 내 한국행을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새로운 대표팀 문화의 시작을 알리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됐다는 점은 분명히 의미가 큽니다. 이청용이 물꼬를 트면서 이제는 대표팀 문화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청용이 잠시 자리를 비운 19일 대표팀 훈련에 앞서 인터뷰에 나선 부주장 김영권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 보는 경우라 놀라긴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청용이 형이 잘 생각했고, 감독님의 결정이 옳았다고 봅니다. 돌아와서 실력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도 만약 아내 출산이 있다면 어디서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에게 갈 것입니다.”
doku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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