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용규가 구단에 ‘트레이드’를 공식 요청했다. 지난겨울 이용규와 한화는 FA 계약을 했다. 2+1년 계약에 계약금 2억원, 연봉 4억원, 옵션이 매년 4억원이다. 보장금액은 2년간 10억원, 최대 금액은 3년에 26억원이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트레이드 요청은 사실상 계약 해지 요구다. 야구선수 계약에서 지급되는 계약금은 해당 기간 동안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의 대가인데,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달라는 요구는 계약금의 무효화를 뜻한다.
KBO리그 표준계약서는 구단과 선수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제13조는 ‘선수는 야구선수로서 특수기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본 계약이 이 같은 특수기능에 관계되어 있으므로 본 계약을 이유없이 파기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서 중대한 손해를 끼치는 것이며 그 손해배상의 청구에 응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선수와 구단은 승낙한다’고 돼 있다.
선수는 물론이고 구단 역시 계약을 함부로 파기할 수 없다.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기능과 능력은 대체가 어려운 상품이다. 다른 종목의 선수를 데려오기 어렵다. 선수 역시 리그, 구단을 떠나서는 ‘특수기능’을 발휘할 대체시장이 없기 때문에 계약 파기는 신중해야 한다. 계약서 13조가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노동력을 공급하는 선수도, 이를 수요하는 시장으로서의 구단과 리그도 모두 대체재가 없는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가 정말 어려운, 리그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의 몸값이 한없이 비싸지는 것은 이런 독특한 시장 구조 때문이다.
이용규는 트레이드 요청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트레이드 요청의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비난이 거세다. 스스로에게는 ‘불공정한 경쟁구도’라는 억울함이더라도 팬들에게는 ‘경쟁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존중받는 곳에서 뛰고 싶다는 이유는, 보다 편안한 곳에서 편안하게 야구하고 싶다는 핑계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계약’의 무게를 너무 쉽게 여겼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어쩌면 이용규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동안 KBO리그의 계약서 무게는 종이 자체의 물리적 무게를 넘지 않았다. 감독의 임기는 계약서에 적힌 숫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툭하면 ‘자진 사퇴’ 형태로 물러나기 일쑤였다. “성적에 책임을 지고”라는 수식어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겉으로는 자진 사퇴더라도 연봉은 잔여기간 동안 지급됐다. 월급을 받는 야인 감독이 지금도 여럿이다. 한 구단은 구단에 없는 ‘전직’들을 위한 연봉만 올해 약 10억원이다. 그 계약을 한 당사자가 책임을 졌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감독 계약만 문제가 아니다. 구속된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는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과의 지분 관련 법정 다툼에서 모두 지고도 ‘줄 주식이 없다’는 이유로 버티고 있어 여전히 폭탄처럼 남았다. 당시 계약서에는 도장과 사인이 모두 명백한데도 ‘위조됐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쳤다. 계약이 계약이 아니다.
롯데는 조쉬 린드블럼과 계약서에 적힌 ‘바이아웃’ 문제로 소송 중이다. 사실상의 이면계약이다. 삼성이 안지만과 벌인 계약금 반환소송에서도 이면계약은 적나라했다. KT는 창단 초기 트라이아웃을 통해 뽑은 선수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계약서를 무시했다가 부랴부랴 잔여 연봉을 지급하는 소동을 벌였다. 지난해 밝혀진 트레이드 ‘뒷돈’은 계약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야구는 규칙서가 160페이지가 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종목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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