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타자를 ‘존중’하지 않는 몸에 맞는 공은 ‘빈볼’이다.
잠실구장이 들썩였다. 라이벌 두산과 LG가 격돌했다. 지난 주말 ‘잠실 더비’ 3연전에는 한 차례 매진을 포함해 총 5만8948명의 야구팬이 찾아 라이벌전의 묘미를 즐겼다. 결과도 LG가 위닝 시리즈를 챙기며 지난 시즌 1승15패의 수모를 씻기 위한 의지를 선보였다.
볼거리가 넘쳤던 이번 라이벌전에도 옥에 티는 있었다. 바로 빈볼 시비이다. 지난 14일 LG 투수 배재준이 두산 타자 페르난데스를 맞아 몸쪽으로 던진 공이 팔꿈치 보호대를 강타했다. 문제는 몸에 맞는 공이 아니었다. 페르난데스가 배재준을 바라보자, 외야 쪽을 향해 팔을 휘젓는 동작을 취했다. 어떤 의도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동작에 두산 더그아웃은 흥분했다.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벤치 클리어링까지 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같은 날 창원NC파크에서도 라이벌전이 펼쳐졌다. 부산-경남 지역을 연고지로 둔 롯데와 NC가 격돌했다. 이 경기에서도 몸에 맞는 공이 나왔다. 롯데 투수 서준원이 NC 타자 양의지를 상대로 몸쪽으로 던진 공이 엉덩이 부근에 맞았다. 양의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1루로 걸어나갔다. 이때 서준원은 모자를 벗고 기다렸고, 양의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양의지도 손을 들어 사과를 받아줬다.
이 두 장면의 차이는 ‘존중’이었다. 야구판에서는 언제부턴가 몸에 맞는 공이 나와도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겨났다. 승리와 패배만 기다리는 경쟁 관계에서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존중과 동료 의식이 없는 승리가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꿈과 희망, 그리고 스포츠 정신을 논할 수 있을까.
배재준이 페르난데스를 향해 던진 공의 그립은 직구였다. 오해를 살 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팔꿈치에 맞았다. 페르난데스가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장면이었다. 어느 선수고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자이기 이전에 같은 선수고 동료이다. 선수는 몸이 생명이다. 공에 맞았을 때 그 예민함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것이 존중이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길이다.
제구력 부재 또는 실수에 의한 몸에 맞는 공이라고 해도,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빈볼’과 다름없다.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그 의심이 다툼을 야기한다. 그라운드에 페어플레이 정신이 사라진다면, 승리만 위해서 뛴다면 스포츠의 본질 자체가 사라진다.
지난 9일 한화 신인 투수 박윤철은 SK 타자 최정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졌다. 시즌 1호 헤드샷 퇴장이었다. 하지만 박윤철은 퇴장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최정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한화 수석, 투수 코치가 모두 뛰어나와 최정을 살폈다. 팀 베테랑 정근우, 주장 이성열까지 SK를 찾아가 사과했다. 최정도 그 사과를 기꺼이 받아줬다.
불문율은 없다. 공 하나에 선수 생명이 달라질 수 있다. 상대방을 향한 존중, 작은 변화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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