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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페르난데스의 목표…"프리미어12 쿠바 대표·두산에서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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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과의 영상 통화로 하루를 시작…한국 투수 영상 보며 잠들어"

"두산 팬들이 '여권 숨기고 싶다'는 말 계속하도록, 좋은 성적 유지하겠다"

29일 현재 타율 단독 1위, 홈런·타점 공동 1위

연합뉴스

'쿠바에서 온 귀인' 페르난데스
(서울=연합뉴스) 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가 지난 26일 서울시 잠실구장 구단 사무실 입구에 있는 팀의 마스코트 철웅이 모형 옆에서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호세 페르난데스(31·두산 베어스)는 매일 아침 아들 호세 미겔(4), 딸 에밀리(3)와 영상 통화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26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만난 페르난데스는 "국적을 떠나 아버지의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가끔 자녀들에게 서운할 때도 있다.

쿠바에 있는 아직 어린 아들과 딸은 한국에서 뛰는 아버지와의 영상 통화가 길어지면 화면에서 사라진다. 아버지와의 영상 통화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는 "나도 가족을 위해, 가족들도 나를 위해 희생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 딸과의 영상 통화를 기다렸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가족은 내 삶의 원동력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영상 통화를 마치면 쿠바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꾹 누르고, 웨이트 트레이닝과 수영을 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봤던 KBO리그 투수들의 영상을 다시 확인한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KBO리그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엉켜 페르난데스의 '코리안 드림'을 완성해간다.

두산은 페르난데스를 '쿠바에서 온 귀인'이라고 부른다.

페르난데스는 29일 현재 타율 0.397(121타수 48안타), 7홈런, 30타점을 올렸다. 타율은 양의지(NC 다이노스, 0.359)에게 크게 앞선 단독 1위고, 홈런과 타점은 공동 1위다.

지난해 두산이 뽑은 외국인 타자 짐 파레디스는 타율 0.138(65타수 9안타), 1홈런, 4타점을 올린 뒤 한국을 떠났다. 대체선수로 영입한 스콧 반 슬라이크는 12경기에서 타율 0.128(39타수 5안타), 1홈런, 4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페르난데스는 파레디스와 반 슬라이크가 남긴 그림자를 2019시즌 초에 깨끗하게 지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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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 홈런포 가동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지난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2회말 1사 1, 3루, 두산 페르난데스가 우월 3점 홈런을 친 뒤 기뻐하고 있다.



◇ "야구의 나라 쿠바, 내 첫 번째 운명" = '야구의 나라' 쿠바에서 태어난 건, 운명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쿠바에서는 모두가 야구를 즐긴다. 나도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2007년부터 쿠바리그에서 뛴 그는 "쿠바 야구는 매우 열정적이다. 다소 과격하기도 하다"며 "쿠바에서 야구할 때 홈런을 치면 다음 타석에서는 몸에 맞는 공을 각오해야 했다. KBO에서 금지하는 2루를 향한 거친 슬라이딩도 쿠바에서는 '일상'으로 여긴다"며 "KBO리그가 더 프로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여전히 쿠바 야구는 매력적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선수도 많다"라고 소개했다.

페르난데스는 "쿠바 아바나와 바라데로는 정말 아름다운 관광지다. 아름다운 해변 옆에 호텔이 늘어서 있다. 유명한 관광지라서 매우 안전하다"며 "나를 보며 쿠바에 관심이 생긴 팬들에게 하바나와 바라데로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라고도 덧붙였다.

여전히 쿠바를 사랑하지만, 페르난데스는 가족을 위해 쿠바를 떠나야 했다.

그는 2014년 망명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페르난데스는 "2015년까지는 쿠바에서 뛰었다. 합법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뛰기 위한 방법을 알아봤고 2016년에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동안에도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그의 노력은 2017년 미국프로야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하며 어느 정도 보상받았다. 2018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 빅리그 무대도 밟았다.

페르난데스는 2018년 에인절스에서 앨버트 푸홀스의 백업 선수로 뛰며 메이저리그 36경기에 출전해 116타수 31안타(타율 0.267), 2홈런, 11타점을 올렸다. 2018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는 타율 0.333의 고감도 타격을 뽐냈다.

2018시즌 종료 뒤 페르난데스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2018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마감했는데도 에인절스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됐다. 시애틀 매리너스, 신시내티 레즈, 뉴욕 메츠가 입단 제의를 했지만 모두 마이너리그 계약이었다"며 "나도 30대에 접어들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안정적으로 뛸 곳을 찾아야 했다"고 떠올렸다.

'정교한 타자'를 원하던 두산이 페르난데스에게 입단 제의를 했다. 페르난데스는 "정말 고맙게도 두산에서 관심을 보였다. 즐겁게, 안정적인 곳에서 야구하고 싶어서 두산과 계약했다"고 밝혔다.

두산은 페르난데스와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30만 달러, 인센티브 35만 달러 등 최대 70만 달러에 계약했다. 인센티브 비중이 높았지만, 페르난데스는 "구단이 내민 조건을 채울 자신이 있다"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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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트로피 옆에 선 페르난데스
(서울=연합뉴스) 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가 지난 26일 서울시 잠실구장 구단 사무실 입구에 있는 2018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 옆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은 내 운명…두산에서 오래오래" = 페르난데스는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의 문화나 한국 야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한국행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페르난데스는 "유니에스키 마야(전 두산)와 헨리 소사(전 LG 트윈스) 등 친구들이 'KBO리그는 매우 수준이 높다. 그리고 야구하기 좋은 환경이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시범경기까지만 해도 페르난데스는 고전했다. 그는 시범경기에서 18타수 3안타(타율 0.167)로 부진했다.

페르난데스는 철저한 준비로 위기를 돌파했다.

그는 "KBO리그 영상을 매일 보고, 분석했다. 훈련할 때도 영상을 보며 얻은 정보를 떠올렸다"고 했다.

정규시즌에 돌입한 뒤, 페르난데스를 향해서는 칭찬만 쏟아진다.

기대했던 콘택트 능력은 4할에 가까운 타율로 일찌감치 증명했고, 장타력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홈런 7개를 치며 파워히터의 면모도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나는 교타자다.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유지한다"며 "김재환(두산)처럼 40홈런을 치기는 어렵겠지만, 20∼30홈런은 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두산 팬들은 열정적으로 "두산의 페르난데스"를 외친다.

페르난데스는 "한국의 응원 문화에 정말 놀랐다. 어느 구장에서나 내 이름을 크게 외쳐주시는 팬들이 있다"며 "경기장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책임감을 훈련으로 승화한다. 페르난데스의 여가는 한국에서 만난 쿠바 친구 3명과 점심을 먹는 게 전부다. 잠들기 전까지 KBO리그 영상을 보며 상대 투수를 분석하고, 경기장에 누구보다 일찍 나와 훈련을 시작한다.

벌써 두산에 대한 애정도 생겼다. 페르난데스는 "두산에서 오래오래 뛰고 싶다. 팬들이 올 시즌이 끝난 뒤에도 '페르난데스의 여권을 숨기고 싶다'고 말씀하시도록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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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 만루 홈런
사진은 지난 21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7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페르난데스가 만루홈런을 치고 홈인하며 기뻐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고척돔에서 쿠바 대표팀으로 뛰고 싶다" = "한국은 또 다른 운명"이라고 말하는 페르난데스는 올해 11월 한국에서 또 다른 추억도 쌓고 싶어한다.

세계랭킹 5위 쿠바 야구대표팀은 11월 8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3위)과 2019 프리미어12 서울 예선라운드(C조)에서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페르난데스는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쿠바 대표팀 내야수로 뛰었다. 호세 아브레우(시카고 화이트삭스), 율리에스키 구리엘(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타자들과 함께 쿠바 타선을 이끌었다.

페르난데스는 "쿠바가 고척돔에서 프리미어12 예선라운드를 치르는 걸 알고 있다. 내게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며 "2014년 이후에 쿠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프리미어12에서 쿠바 대표에 뽑혀 고척돔에서 경기를 치르면 내게도 영광스러운 이력이 추가된다"고 했다.

그는 "아직 타석에서 보지 못했지만, 언더핸드스로 박종훈(SK 와이번스)은 쿠바나 미국에서도 생소한 투수다. 내가 쿠바 대표팀에 뽑히면 박종훈 등 한국 대표팀 투수들의 투구 영상을 보여주며 '전력분석'을 돕겠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페르난데스가 쿠바 대표팀에 뽑히면 가족과의 만남은 더 늦어진다. "가족을 빨리 보고 싶긴 한데…"라고 잠시 머뭇거리던 페르난데스는 "고통을 조금 더 참아도 가족에게 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게, 모든 아버지의 꿈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는 페르난데스는 오늘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누르고, 자신만의 훈련 일정을 짠다. 그렇게 페르난데스는 코리안 드림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그의 인생 목표인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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