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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신념의 강박이 불러온 엘리트체육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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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개혁의 기치를 들고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체육정책이 걱정스럽다. 개혁의 의지는 수긍할 만하나 과연 제대로 된 해결책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걱정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처방이 잘못된 진단에서 나왔다면 그 효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죄는 체육계에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다. 체육계 스스로가 주체의 각성을 통한 개혁에 단단한 빗장을 걸어 잠그다 보니 정치권과 정부가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외부의 개입과 강제는 체육계가 빌미를 제공한 만큼 더이상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 다만 이왕 칼을 대기로 했다면 곪아터진 부문을 정확하게 도려내야지 멀쩡한 생살을 찢는 일은 없어야 하기야 펜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체육개혁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이유는 체육이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을 권력투쟁의 연장선으로 여기며 기존 체육계를 새로운 권력구조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는 짐짓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색안경을 낀 채로 엘리트체육을 폄훼하는 것은 물론 극단적으로 부정하기까지 하는 태도는 체육의 본질적 가치와 한국 체육의 역사성마저 뒤흔드는 오만함의 극치다. 엘리트체육이 부패한 체육의 온상이라는 이들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다. 공과를 구별해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합리적 사고는 온데간데 없다. 오로지 혐오와 분노라는 감정을 자극해 엘리트체육의 문제점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려는 태도는 다분히 정치적이며 의도적이다.

정책의 생명인 보편성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지금 한국 체육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대상은 누구일까. 삶의 질과 직결된 건강을 다지며 체육의 다양한 가치를 체험하고 이를 체화할 수 있는 학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2018년 기준으로 초·중·고·대학생 767만9543명 중에서 학생 선수는 7만6908명에 불과하다. 한국 체육의 문제는 1% 남짓한 학생선수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체육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99%의 대다수 학생에서 찾는 게 맞다. 그러나 체육개혁을 이끄는 이들은 한국 체육의 본질적 문제를 엘리트체육에서 찾고 학교체육의 전면적인 개편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형편이다.

편향적 사고는 더 큰 문제다. 맥락적 흐름과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엘리트체육을 범죄집단으로 낙인찍는 건 균형잡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체육을 타자화시켜 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법으로는 그만이겠지만 본질을 규명하는 데는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소년체전 폐지 등 이들이 주장하는 스포츠혁신 방안도 곰곰이 따져볼 대목이 많다. 소년체전을 시대에 맞게 개혁하자는 데 반대할 체육인은 별로 없는데도 굳이 형식을 바꿔 학생체전을 신설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년체전 폐지론의 밑바탕에는 체육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셈법이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저항을 이겨내는 지지세력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저항세력마저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 체육개혁을 이끄는 사람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는 어떤가. 그들이 정책 수혜자들로 여기는 선수와 학부모로부터 가장 극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해줘야 할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저항을 받고 있는 정책의 결과는 뻔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첫 걸림돌이 됐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이 부자가 아닌 빈자로부터 거부당한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현실과 유리된 채 잘못된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문제의 발단이 되곤한다. 엘리트체육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한국 체육의 전체지형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정책은 균형잡인 시각과 심모원려(沈謀遠慮)의 태도에서 꽃피울 수 있다. 신념의 강박(强迫)이 야기한 불편한 진실은 결코 성공한 정책의 토양이 될 수 없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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