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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하승진 “난 취준생, 뭐든 다 해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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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은퇴’ 선언한 하승진

경향신문

은퇴를 선언한 하승진이 11일 수원 광교 자택 인근 커피숍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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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요즘 아르바이트 알아보고 있어요. 무슨 일이든 다 해보고 싶습니다.”

지난 11일 수원 광교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편안해 보였다. 한국 최초의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전주 KCC에서 9시즌 동안 두 차례(2008~2009, 2010~2011) 챔피언에 오른 국내 최장신 농구선수 하승진(34·221㎝). 그러나 그는 이제 ‘전직 농구선수, 일반인 하승진’이다.

구단 재계약 포기, 선택 여지 없어

고심 끝 사랑받을 때 떠나자 결심

농구교실·방송…선수 복귀도 생각

잘했던 경기도 못했던 경기도 최선

후회 없이 뛰었으니 100점 주고파


지난달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거두절미하고 이제 은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선언하고 코트를 떠난 지 한 달, 하승진이 은퇴를 결심한 전후사정과 향후 계획 등을 털어놓았다.

하승진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KCC와 자유계약선수(FA) 협상 테이블에 앉은 지난달 13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 그에게 프런트는 “시장에 나가 평가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나”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어급 FA를 외부에서 영입하기 위해선 샐러리캡에 여유가 필요했고, 하승진도 정리 대상이 됐다.

하승진은 연봉 대폭 삭감도 감수하고 마지막으로 우승하고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첫 대면에서 구단은 재계약 포기 의사를 밝혔다.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는데 ‘저를 계속 써주세요’ 할 수는 없잖아요.”

하승진은 가족회의를 열고 은퇴 결심을 굳혔다. 연봉 5억원에 보상선수를 줘야 하는 사정상 다른 팀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 초라하게 떠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KCC에서 사랑받을 때 떠나기로 했다. 부인은 울음을 터뜨렸고, 그도 SNS에 올릴 글을 쓰며 눈물을 흘렸다. “글을 적다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하승진은 14일 오전 구단과 다시 만나 결심을 밝혔고, 은퇴 동의서를 받고 나온 뒤 전날 써놨던 글을 SNS에 올렸다. 뜻밖의 발표에 팬들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KCC를 성토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가 직접 팬들께 알리고 싶었는데, 그 파장이 커서 팀에 죄송한 마음이에요.”

FA 협상 종료일인 15일 KCC 정몽익 구단주가 직접 그의 은퇴를 만류했다. “잘못 생각한 것 같다고 번복하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라며 말리셨는데,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어요. 하지만 이미 공표한 일이고 엎질러진 물이라 번복할 수는 없었어요.”

후회할 결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하승진은 단호했다. “아니에요. 깊이 굉장히 많이 생각했어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거 같은데, 순간의 기분은 절대 아니었어요. 제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했고, 그래서 번복하기가 쉽지 않았던 겁니다.”

떠나는 하승진에게 KCC는 수술지원을 약속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있고, 발목에 뼈도 자라고 있거든요. 은퇴해도 수술 한 번 더 해주실 수 있냐고 했더니 당연한 일이라며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마지막으로 AS 받고 후일을 도모해야죠.”

하승진은 요즘 아르바이트 앱을 검색하고 있다. 무엇이든 경험을 쌓고픈 마음이다. “연봉 5억원 받던 사람이 아무 벌이도 없으니. 아, 어선이라도 타야 하나.” 언제나 유쾌한 하승진 특유의 너스레가 터져나왔다. “알바천국, 단기 알바, 1일 알바 이런 거 들여다보고 있어요. 참치 포장, 야구장 1일 스태프, 택배 상차…. 혹시 방송국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찍으라면 당장 산으로 갑니다.”

스스로 ‘취업준비생’이라는 그는 “무슨 일이든 할 생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농구교실, 방송, 아니면 선수 복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귀 여지도 남아 있다.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죠.” 1년 뒤 가능한 선수복귀는 KCC에서만 할 수 있다. 여건이 맞아야 되는 일이지만, 몇 시즌 더 뛴 뒤 공식은퇴식에서 팬들의 축복을 받으며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최초의 NBA 선수인 그는 국내 복귀 첫 시즌(2008~2009)에 KCC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정규리그 3위로 챔프전에 올라 삼성을 4승3패로 꺾고 우승한 순간이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았다. ‘상남자’로 마음이 통했던 허재 감독, 선수 시절을 같이 보낸 추승균 감독에겐 여전히 고맙다.

선수 인생에 스스로 매긴 평가는 100점이다. “잘했던 경기도, 못했던 경기도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후회 없어요.”

앞으로도 후회 없는 길, 최선을 다해 걸어갈 계획이다. “은퇴 결심에 정말 많은 팬들이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셨어요. 새삼 제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느꼈습니다. 그 사랑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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