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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남북 정치적 교류 막힐 때도 스포츠로 다진 신뢰는 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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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남북체육교류협회 김경성 이사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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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작은 스포츠 교류를 통해 꽉 막힌 대화의 물꼬를 터서 평창 동계올림픽 같은 큰 행사를 일궈냈고, 4·27 판문점선언까지 연결됐어요. 이처럼 스포츠 교류는 앞으로도 남과 북, 미국이 더 큰 대화를 여는 돌파구이자 교류 확대의 창구가 될 것입니다.”

남북체육교류협회 김경성(61) 이사장은 지난 1일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에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남북의 민간 스포츠 교류가 2014~15년에도 일촉즉발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평화적 도구이자 효과적인 대화 수단이 됐다”고 강조했다. 모든 남북교류가 막혀 있던 2017년 중국 쿤밍 ‘제3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최문순 강원지사가 북쪽 단장에게 제안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성사됐고, 그 평화 열기가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새달 평양 남·북·아시아·유럽 등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
2006년부터 남북 유일 정기 교류전
남북단일팀 합동훈련 11월 유럽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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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능라도에 ‘김경성초대소’ 지어
“약속 철저히 지켜 ‘신뢰’ 쌓은 덕분”


김 이사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새달 평양에서 ‘제6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럽 3·아시아 3·남 3·북 3개팀 등 모두 8개 나라 12개팀이 참가한다. 애초 이달 초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북한 내부 사정으로 한달 가량 미뤄졌다.

아리스포츠컵 대회는 남북체육교류협회와 북한 4·25체육단이 공동 주최하는 남북 사이의 유일한 정기 교류전이다. 2006년 평양을 시작으로 긴장된 남북관계 속에서도 22차례나 남북과 중국을 오가며 꾸준히 경기를 해오다 2014년부터 아리스포츠컵대회로 정례화했다. 지난해는 8월 평양과 10월 춘천을 오가며 대회를 열어 육로를 통한 상호방문이 남북 교류 사상 처음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남과 북은 올해 평양대회를 마친 뒤 참가 선수를 중심으로 남북 단일팀을 꾸려 두 달간 합동훈련을 거쳐 11월 유럽 국제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남북 단일팀의 국제대회 참가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남북에서 동시 방송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여러 차례 단일팀을 추진하다가 정치적 이유 등으로 무산됐지만 오랜 세월 만나면서 우정을 쌓은 덕분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단일팀 분위기 무르익었다. 교류 과정없이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급조하는 단일팀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오는 10월께 미국 시애틀로 건너가 남과 북·미국·남미 등이 참여하는 ‘제7회 아리스포츠컵대회’를 열 계획이다. 남북 유소년들은 미국대회를 통해 교류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미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이질감을 완화하고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할 계획이다.

협회는 프로축구 정기 교류전에도 나설 방침이다. 우선 올해 연말 남·북·중·일 등 동북아 4개 나라 여자프로축구 챔피언 교류전을 시작하고, 이후 남자 교류전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그의 구상에는 남쪽 프로리그에 북쪽 선수 입단과 남북 프로리그 통합까지 들어있다. 그는 “현재 북한엔 남쪽 프로리그에 해당하는 ‘1부류 조선연맹리그’ 12개팀이 운영되고 있다”며 “남북의 정치 통합은 어렵겠지만 스포츠 통합을 통해 자연스럽게 남북 주민의 동질감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남북의 유망주을 발굴해 프로복싱 챔피언 만들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1차로 남쪽 여자 밴텀급 김수린(22) 선수가 9월 세계 챔프에 도전한다. 이어 11월중 북쪽 복싱 유망주 6명을 체급별로 데려와 집중훈련을 시킨 뒤 내년에 세계 챔피언에 도전시킬 계획이다. 협회는 이를 위해 지난달 일산 원마운트에 전 세계챔피언 변정일 선수 등을 초빙해 챔프복싱센터를 개관했다.

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평양대회와 내년 4월 원산 국제마라톤대회를 추진하고, 탁구·농구 등 유소년 스포츠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협회는 남북 청소년이 훈련과 숙박을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연수원을 경기와 강원에 각각 세울 계획이다.

사업가였던 김 이사장이 남북 스포츠 교류에 뛰어든 것은 ‘2006 독일월드컵’ 최종예선 때 북한 대표팀과 만남에서 비롯됐다. 중국 윈난성 축구협회 명예주석의 직함을 갖고 있던 그는 2005년 북한 대표팀에 고지대 전지훈련 지원을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2006년 북한 4·25체육단과 ‘남북체육교류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의 훈련 지원 덕분에 북한은 2006년 20살 이하, 2008년 17살 이하 여자월드컵축구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하는 개가를 올렸다.

북한은 김 이사장의 남북 스포츠 균형발전의 공로를 높이 사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두번째로 평양 능라도에 ‘김경성 초대소’를 짓고, 평양 사동구역에 35만㎡ 규모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는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이곳에 스포츠관광호텔과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다.

그는 북의 전폭적인 신뢰 비결에 대해 “북쪽에서는 사람은 믿어도 정부나 직책은 잘 믿지 않는다. 정부는 언제든 약속을 백지화할 수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여전히 정부가 남북 대화 채널을 독점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를 차단해 여러 사업들이 차질을 빚었다며 쓴소리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에서 민간교류 확대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개성공단연락사무소 중심으로 대북 교류 창구를 획일화하려는 정책을 펼쳐 정반대로 갔어요. 과거 보수정권 때도 제3국에서 합동훈련과 친선경기를 모두 허용했는데, 서울시청여자축구팀과 북 4·25체육단의 쿤밍 경기, 익산시의 남북 청소년 탁구교류전 등을 통일부에서 불허하는 바람에 북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거든요.”

그는 “북은 유엔 제재 때문에 다양한 채널의 대화가 필요한데 정부는 개성공단연락사무소 중심의 성과만 고집해 스스로 북과 대화를 차단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며 “정부 주도의 대화는 갈등이 생기면 중단되지만, 신뢰성 있는 민간단체를 통해서는 북의 최고위급과도 대화가 가능하므로 정부가 이를 장려하고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스포츠 교류를 통한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오는 9월 7일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주는 국제스포츠평화상을 수상한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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