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평양원정, `1990년 10월 11일` 과 `2019년 10월 15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북한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경기에서 손흥민이 슛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쇼미 더 스포츠-189]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인 1990년 10월 11일 오후 3시, '남북통일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과 북한 간 친선 축구경기가 평양 5.1 능라도 운동장에서 열렸다. 남북한이 분단된 이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북한을 공식 방문해 치르는 최초의 축구 경기였다. 15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고, 경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이보다 더 컸다고 한다.

경기 결과는 1대2 북한의 승리였다. 참고로, 분단 이후 치른 남북한 간 성인 국가대표 경기들 중 대한민국이 북한에 당한 유일한 패배가 이날 경기였다. 하지만, 당시의 패배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친선 경기였고, 심판 또한 북한 심판이었다. 게다가 당시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팀을 위해 여러 인센티브가 부여되었고, 결국 후반 막판의 인저리 타임 페널티킥으로 북한이 승리했다.

그날 평양의 경기는 생중계되지 못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 측이 생중계를 요구했으나 북한 측이 녹화 방송을 고집함으로 인해 결국 녹화로 중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30여 년 전의 방송 및 통신환경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부분 또한 일견 있는 게 사실이다.

평양 경기 이후 몇 일 뒤, 서울에서 2차전이 열렸다. 소위 '홈 앤드 어웨이'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남북 탁구단일팀이 구성되었고, 지바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코리아'란 이름으로 세계 제패를 이루어냈다. 누군가가 비유했듯이 스포츠는 평화의 '마중물'이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북한 땅에서 남자축구대표팀이 경기를 하게 되기까지는 정확히 29년하고 4일이 걸렸다. 그동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통일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대회가 더 있었지만, 모두 대한민국에서 열렸고, 몇 번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해 남북한이 맞붙었지만, 북측의 사정으로 제3국에서 경기를 치름으로서 평양 원정은 성사되지 못했다. '마중물'이 충실히 역할을 다해도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물이 잘 순환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지난 10월 15일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평양 원정 경기는 29년 전의 경기와 닮은 듯 하지만, 사실은 많이 다르다. 이날 경기의 타이틀은 '2022 카타르월드컵 지역예선'이다. 어찌 되었건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우리 대표팀에 양보할 수도, 양보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경기였다. 이는 북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스포츠의 본질은 승리이며, 이를 위해 또, 축구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기서, 과정이 공정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날 경기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물론, 아주 보수적으로 규정을 적용하려는 누군가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A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관중도 없었고, 중계 또한 되지 않았다. 또,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우리 선수들은 원정팀 선수들이 응당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물론, '홈 어드밴티지'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상식(common sense)의 수준을 넘어 서서는 안 된다.

이번 경기가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규정을 명확히 위반했는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FIFA와 AFC 또한 당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기를 주관하는 나라의 협회에 일정 부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라고 방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지킬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9년 전인 1990년에는 축구를 보기 위해서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불룩한 브라운관 TV를 통해봐야만 했다. 하지만, 2019년인 지금은 각자의 작고 가벼운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어디서나 더 좋은 화질의 경기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9년 전 경기는 녹화로나마 온 국민이 경기전체 영상을 볼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경기를 치른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경기 전체는커녕 5분 남짓의 하이라이트 영상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물을 잘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 뒤에 제대로 작동되는 펌프와 펌프질이 필요하다.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마중물'만 있을 뿐, 펌프는 작동하지 않고 있고, 펌프질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스포츠가 평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스포츠 그 자체로 순수하게 인식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이렇게 납득하기 어렵고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이유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북한이 스포츠를 스포츠 그 자체로 인식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평화의 '마중물'은 그 다음 문제이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