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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태권도의 골깊은 패거리 문화가 잉태한 국기원 이사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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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겠다. 각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체육계에서도 태권도는 유독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종목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심판의 편파판정, 승부조작, 그리고 남북통일보다 더 어렵다는 골깊은 파벌갈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숱한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아왔던 게 바로 태권도라는 종목이다. 그러나 태권도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고 문화 한류(韓流)의 원조로서 크나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문화콘텐츠로서의 태권도 가치를 키우고 무도 태권도의 철학적 가치와 종주국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국기원의 위상 강화와 ‘바로 서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지난 2010년 단행한 게 바로 국기원의 법정법인화다. 태권도진흥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법적 지위를 확보해 튼실한 물적토대를 확보하는 대신 인사쇄신 등 태권도계의 뿌리깊은 적폐를 들어내겠다는 게 정부의 바람이었건만 결과적으로는 참담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전임 국기원원장이 구속되는 등 비리백화점으로 전락했던 국기원을 넋놓고 지켜봐야 했던 정부는 다시 한번 인적 쇄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국기원 정상화를 위해 정책과 대안을 쏟아냈지만 별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숱한 산고끝에 탄생한 원장 선거가 파열음을 토해냈다. 선거를 통해 최영열 전 원장이 당선됐지만 상대인 오노균 후보의 문제제기로 원장 선거는 어쩔 수 없이 법정다툼으로까지 비화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국기원 이사장 선거도 도덕성 문제로 시끄럽다. 광주 광산구청장 재임시절인 지난 2009년 뇌물수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전갑길 신임 이사가 이사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본인이야 정관에 명시된 임원 결격 사유를 피해 억울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사회적 시선은 따갑다. 국기원 정상화를 바랐던 정부로선 난감하기 그지없는 암초를 만난 셈이 됐다. 이유야 어찌됐건 여론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국기원 이사장 선거는 재투표끝에 당선자를 가리지 못해 다음 기회로 미뤄졌지만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정부가 국기원을 법정법인화하는 용단을 내린 배경 중 하나는 범법자가 섞여 있던 국기원의 인적 쇄신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결과인데 어째서 범죄전력을 지닌 자가 또 다시 국기원 이사에 뽑혔는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그가 어떻게 국기원 이사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당혹스러워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선거에 앞서 이례적으로 “정부는 특정인을 밀고 있지 않다”면서 세간에 떠돌던 국기원 이사장 내정설을 강하게 부인한 뒤 “국기원은 그 어느 단체보다 도덕성이 중요하다”고까지 밝히기도 했다. 문체부가 범죄전력을 지닌 전 이사의 이사장 출마에 강한 제동을 건 이유는 박양우 문체부 장관과의 관계 때문이다. 전 이사와 박 장관은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다행스런 건 재투표끝에 당선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기원은 오는 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다시 한번 이사장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전 이사가 출사표를 다시 던질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따로 있다. 바로 아직도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태권도계의 상황인식이다. 전 이사는 1차 투표에서 7표를 얻었고 재투표에선 6표를 각각 얻었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전 이사를 적극 밀고 있는 이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국기원의 부끄러운 도덕적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태권도의 가치와 철학은 고사하고 오로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태권도계의 고질적인 패거리 문화는 이 참에 뿌리째 뽑아야 하는 적폐중의 적폐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기원은 무도 태권도의 본산으로 세계 태권도계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는 그런 단체다. 국기원에 가장 필요하다는 위엄과 권위는 밖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태권도계는 입만 떼면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떠벌이곤 한다. 국민들에게조차도 손가락질 받는 태권도가 세계로부터 존경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기원의 ‘바로 서기’는 과연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이는 태권도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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