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종합] `선을 넘는 녀석들` 최재형, 독립 위해 일생 바친 `페치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타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석훈철 객원기자]

설민석, 전현무, 김종민, 유병재, 최희서가 페치카(인간 난로)라 불리던 최재형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를 따라갔다.

17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는 최재형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그렸다.

설민석은 안중근 의사의 유년기를 공개했다. 그는 "안중근 의사는 어린 시절 학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안중근 의사의 남매들은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공부하지 않은 안중근 의사를 나무라지 않았다"고 밝혔다.

설민석은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의 만남 스토리도 공개했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은 동학농민운동 토벌에 참여했다. 그때 안태훈은 용맹한 19살 소년을 봤다. 그는 19살 소년의 기개를 높이 사 소년을 데려갔다. 그 소년이 바로 김창수, 김구였다"고 했다. 이어 "16살 안중근과 19살 김구가 그때 만난 것이다"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설민석은 안중근 의사가 뜻이 맞는 동지 12명과 함께 왼속 약지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단지 동맹과 그들이 뭉친 동의단지회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는 안중근 의사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나서게 된 이야기까지 밝혔다.

멤버들은 설민석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깜짝 케이크를 건넸다. 설민석은 꼬마 팬의 손편지를 선물로 받았다. 설민석은 편지를 읽다 울컥해 유병재에게 넘겼다. 꼬마 팬은 설민석 선생 덕에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는 얘기를 건네 훈훈함을 자아냈다. 아이들은 선녀들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최희서는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감명을 줬다는 게 울컥했다"고 했다.

멤버들은 최재형 선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나섰다. 멤버들은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발견했다. 유병재는 "러시아 땅에 '독립운동가 최재형 고택'을 보니 뭉클하다"고 밝혔다.

설민석은 "최재형 선생님의 생일은 8월 15일이다. 탄생부터 광복날과 연관됐다"고 밝혀 멤버들을 소름 끼치게 했다. 그는 "형수 구박에 최재형 선생이 11살에 가출했다. 그 후 러시아 선장 부부에게 입양됐고 무역회사에 입사해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리움에 못 이겨 가족이 있는 연해주로 갔다. 연해주에 많은 땅을 사서 '페치카'(인간 난로)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연해주민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최재형 선생은 넓은 길 대신 좁은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둘러봤다. 설민석은 동의회 조직도를 가리켰다. 설민석은 "이범진과 이위종이 부자 관계이고 이범윤은 이범진의 동생이다"라는 사실을 전했다. 설민석은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최재형 선생님만 빼고 수능 단골이에요"라며 저평가된 최재형 선생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설민석은 "최재형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연해주 삶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어 "안중근 의사의 아내와 두 아들이 남자 최재형 선생과 사모님이 끝까지 돌봐줬다"는 사실을 더했다. 유병재는 "안중근 장남께서 일본군 첩자로 추정되는 사람에 의해 독살 당했다면서요"라고 말했다. 김종민은 "안중근 의사 자녀의 삶이 얼마나 위험했을까"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설민석은 동양평화론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동양평화론을 처음 쓴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다. 이토가 쓴 극동평화론은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는 명분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이토의 극동평화론을 반박하기 위해 동양평화론을 작성했다"며 "안중근 의사는 '한중일이 하나가 되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은 공평하고 균등한 상태에서 하나가 되어야지. 일본이 침략하는 건 옳지 않다'는 비판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설민석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은 독일처럼 사과하고 그랬으면 충분히 중심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희서는 "최근 '김복동'을 봤다. 일본은 충분히 사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화가 난다"고 밝혔다.

설민석은 "1917년이 중요합니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벌어져요. 재러 한인은 사회주의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죠. 일본은 볼세비키 혁명군에 희생된 일본 민간인을 명분으로 러시아에 사는 한인을 말살했죠"라며 "그것이 1920년 4월 침변이다"고 말했다.

설민석은 "최재형 선생 일가는 최재형 선생에게 도망을 가라고 했다. 하지만 최재형 선생은 '내가 도망가면 가족들이 희생을 당할 텐데 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다음날 최재형 선생은 일본군에 붙잡혀 갔다"며 안타까운 사실을 전했다. 최희서는 최재형 선생의 딸 최올가가 당시 상황을 기록한 내용을 읊었다. 이를 들은 멤버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설민석은 "증언자에 따르면 최재형 선생은 모진 고문을 받고, 재판 없이 총살됐다"며 "일본이 유골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평평한 곳에 묻었다"고 전했다. 멤버들은 최재형 선생이 걸은 길을 걸으며 당시 최재형 선생의 심정을 가늠했다. 멤버들은 최재형 선생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최재형 선생이 묻힌 곳이 평평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멤버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희서는 최재형 선생의 딸 최올가가 남긴 수기를 읽으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유병재는 식당에서 최재형 선생 죽음 이후 최재형 가족이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을 꺼냈다. 전현무는 "내가 최재형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다. 최희서와 전현무는 "가족들과 함께 도망갔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설민석은 "병재 씨는 의열단, 종민 씨는 대한광복회였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전현무는 "그럼 저는요?"라고 물었다. 이를 들은 최희서는 "프리랜서?"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식사를 마친 멤버들은 다같이 독립군가를 부르며 연해주에서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기렸다.

한편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는 역사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배움 여행으로 시간의 선을 넘어서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역사를 알아보는 발로 터는 탐사 여행 프로그램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5분 방송.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