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스포츠는 결과론에 휘둘리기 쉽다. 아마도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스포츠의 속성 때문일 게다. 그래서인지 스포츠에선 과정의 중요성보다 드러난 결과에 따라 파편화된 정보를 그럴싸한 인과관계로 짜맞추는 게 보편화돼 있다. 뜬금없이 스포츠와 결과론이라는 화두를 끄집어낸 이유는 지난 17일 막을 내린 2019 WBSC 프리미어12를 놓고 말들이 많아서다. 결승전에서 일본에 3-5로 패해 우승컵을 놓친 한국은 2020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지만 슈퍼라운드 마지막 경기와 결승전에서 일본에 잇따라 패한 탓인지 국내 여론은 썩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대회 내내 부진했던 4번타자 박병호에 대한 시선은 따갑다. 박병호는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결승전이 끝난 뒤 굵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 28타수 5안타, 타율 0.179, 2타점으로 부진했던 박병호를 향한 비난 여론은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김경문 감독의 용병술 문제로까지 옮겨붙었다.
김 감독은 선이 굵은 지도자다. 두둑한 배짱과 뚝심으로 선수들의 기를 살리는 ‘믿음의 야구’를 신봉하는 그는 탄탄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투타의 짜임새를 통해 전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스타일이다. 전력을 구성하는 물리적 총합을 뛰어넘어 기적의 퍼포먼스를 뿜어내는 화학적 결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바로 자신이 지향하는 독톡한 야구 색깔과 무관하지 않다. 김 감독이 부진했던 박병호를 줄곧 4번타자로 기용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4번타자를 흔들어서는 안된다”며 박병호의 가슴속에 믿음이라는 묘약을 불어넣었던 게 바로 김 감독이다. 결과적으로 중심타자인 박병호의 부진이 우승컵을 놓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됐지만 그렇다고 김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믿음이 과하면 고집이 되지만 적어도 김 감독의 이번 대회 용병술을 고집으로 단정지어선 안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번 대회는 2020도쿄올림픽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이다. 올림픽 본선 티켓 획득이 이번 대회 목표였고 김 감독은 어찌됐건 그 목표를 달성했다. 따라서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 도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박병호의 부진을 끝까지 참고 뚝심으로 밀어붙인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에 대한 최종 평가 무대는 다가오는 2020 도쿄올림픽이다. 그 무대에서 ‘믿음의 야구’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
믿음이라는 정신작용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쌍방향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믿음을 부여하는 자와 믿음의 수혜자는 든든한 연결고리로 맺어지게 돼 있다. 박병호에겐 부진했던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김 감독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향후 대표팀 활동에서 엄청난 충성심과 동기부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사나이의 회한의 눈물과 뚝심있는 감독의 믿음.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박병호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20도쿄올림픽에서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에 부응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김 감독의 믿음과 박병호의 눈물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냉정한 평가는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에 내려도 결코 늦지 않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한 자를 품에 안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참에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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