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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정현권의 뒤땅 담화] 고수의 겨울 샷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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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날이 추웠을 때 골프 합류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동반자 중에 골프 교습가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합류했다. 겨울 골프의 맛과 기술을 익힐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강원권 골프장이었는데 산속 냉기가 온몸을 감쌌지만 다행히 햇볕이 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모두 로 핸디 고수여서 한 수 배운다는 편한 마음을 갖고 골프장으로 차를 몰았다. 티업에 앞서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일단 동반자들 복장부터 달랐다. 핫 팩은 기본이고 귀마개 달린 털모자에 입까지 가릴 수 있는 목 워머와 양손 장갑 등 보온용품으로 무장했다. 두툼한 겨울 양말에 모두 징이 박힌 골프화를 신었다.

나 혼자 징이 아닌 바닥에 돌기가 달린 골프화를 신었다. 요즘은 쇠징 골프화는 나오지 않고 고무징이나 미끄러지지 않는 바닥 소재로 만든 제품이 대부분이다.

한 사람은 얇은 기능성 내복에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었고 겉에는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다. 뭐 저리 번거롭게 준비했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필드에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멋 부리다가 얼어 죽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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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날 무렵에도 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끼리 카트로 향하려는데 그 사람이 도착했다. 동반자들이 원래 지각하면 어떤 벌칙이 있는지 교습가에게 물었다. 그는 한때 2부투어에서 활동했다.

“출발시간 이후 5분 이내에 도착하면 매치플레이는 당 홀 패배, 스트로크에선 1벌타를 먹습니다. 5분 후에 도착하면 실격이죠.”

역시 고수들이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캐디의 안내로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가볍게 클럽을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연습 스윙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첫 티샷. 그만 훅이 나 왼쪽 해저드로 공이 들어가고 말았다. 걱정한 대로였다. 나에겐 첫 티샷이 늘 어렵다.

동반자 3명의 공은 모두 페어웨이 안착. 곰곰이 살펴보니 교습가를 포함한 두 명은 스윙을 70% 정도 부드럽게 했다. 고수 한 사람은 평소대로 힘껏 스윙을 했다. 조언을 구하니 컨트롤 한답시고 상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엎어서 쳤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이날 가장 큰 문제는 어프로치 샷이었다.나는 벌타를 포함해 3번째 샷으로도 공을 그린에 못 올렸다. 투온을 시도한 사람의 공은 그린에 튀어 훌쩍 넘어갔다. 또 다른 동반자가 두 번째 샷한 공은 그린 근처에 놓였다. 이를 지켜본 교습가는 달랐다. 탄도를 낮게 깔아 그린 앞에 떨어뜨려 공을 핀 근처에 위치시켰다. 나 혼자 네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3온 했다.

나는 평소대로 굴리는 식으로 부드럽게 퍼트를 했지만 공이 핀에 훨씬 못 미쳐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교습가도 공이 미끄러져 파를 했고 한 동반자는 보기를 잡았다. 겨울 그린에서 공이 미끄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스키드 현상이라고 한다. 공이 습기나 얇은 얼음에 미끄러지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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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켜본 마지막 동반자는 공을 때리는 식으로 약간 세게 퍼트를 시도해 결국 파를 잡았다. 겨울 그린은 딱딱해 공이 잘 구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습기와 얼음으로 평소보다 안 구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홀을 거듭할수록 몸이 풀리면서 원래의 스윙에 가까워졌다. 교습가의 어프로치 샷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어느 홀에서나 공을 낮게 깔아 그린 근처나 그린 앞쪽 부분에 공을 떨어뜨렸다. 공이 그린에 맞아도 많이 튀지 않았다.

“한 클럽 길게 잡고 체중을 왼발에 실은 다음 클럽 페이스를 평소보다 세워서 치면 탄도가 낮아집니다. 겨울 그린에서는 탄도가 낮으면 공이 많이 튀지 않아요.”

이후 계속 보기를 기록하던 나도 6번째 롱 홀에서는 기분 좋은 순간을 맞았다. 그린 근처에서 8번 아이언으로 굴린 공이 깃대를 맞고 홀에 그대로 들어가 버디를 기록한 것. 그러고 보니 이날 동반자들은 웨지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이 그린 근처에서 아이언으로 모두 공을 굴려서 그린에 올리는 게 아닌가. 추울수록 팻샷(일명 뒤땅)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리라.

9홀에서는 넘어질 뻔한 순간이 있었다. 내가 티샷을 마치고 플라스틱 그물망으로 덮인 티잉 그라운드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질 뻔했다. 다행히 중심을 잡아 사고는 없었다. 겨울에 징이 박힌 골프화를 신어야 하는 이유였다. 집중해서 티샷을 하고 나면 긴장이 풀려 경사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고 캐디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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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들어 날이 약간 풀렸지만 햇볕이 잘 안 드는 홀은 여전히 추웠다. 동반자 중 한 사람이 12번째 파3홀에서 절묘한 벙크샷을 구사해 파를 잡았다.

그린이 생각보다 딱딱한 데다 핀 앞에 벙커가 있어 첫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린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린 뒤로 공을 보내거나 벙커에 빠뜨렸다.

이날 일명 조폭 스킨스를 했는데 교습가가 돈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지만 12번 홀에서 더블을 기록해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이 게임은 버디를 하면 다른 사람이 딴 돈까지 모두 빼앗고 트리플(파3홀에선 더블)은 전액, 더블보기를 범하면 반액을 토해낸다. 나를 포함한 두 사람은 보기. 나머지 동반자가 벙커에서 발바닥을 비비면서 모래 상태를 확인하는 듯했다. 약간 언 것 같았는데 피칭 웨지를 짧게 잡고 몸은 약간 핀쪽으로 향하고 공은 오른발 쪽으로 놓이도록 셋업한 후 부드럽게 벙커샷을 했다. 공이 턱을 넘어 핀 근처에 바로 붙어 컨시드를 받고 쌓인 돈을 모두 거둬갔다. 공과 모래를 함께 떠올렸는데 보통 모래를 폭파하듯 쳐내는 벙커샷(익스플로전샷)과 전혀 달랐다. 이날 벙커 모래가 완전히 얼면 사고를 막기 위해 공을 빼내고 치기로 약속했다. 얼지 않은 약간 딱딱한 벙커에선 고수들은 턱이 낮으면 퍼트를 이용하거나 아이언으로 굴려 핀에 공을 붙이기도 했다. 놀라운 벙커샷을 구사한 동반자는 16번 홀에서 팔을 저리는 가벼운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응달진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날리다 클럽으로 땅을 치고 만 것. 기세가 올라 평소대로 내려찍는 샷을 시도하다 저린 손에서 클럽을 놓치고 말았다. “겨울철에는 한 클럽 긴 아이언으로 쓸어 치는 샷을 구사해야 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교습가가 조언했다.

별다른 사고가 없었기 망정이지 팔 전체와 몸이 상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는 결국 트리플 보기를 기록하며 그동안 거둬들인 모든 돈을 반납했다.

17번 홀은 재미났다. 동반자 두 사람은 보기를 하고 두 번째 샷으로 날린 나의 공이 연못 얼음을 맞고 그린에 튀어 올라갔다. 파를 잡아 교습가와 동타를 이루면서 게임 돈 전부를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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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롱 홀은 좋은 레슨 현장이었다. 정확한 티샷에 쓸어 친 멋진 우드샷, 그린 근처에 굴리는 어프로치 샷, 때리는 듯한 완벽한 퍼트가 연출됐다. 버디를 잡으면서 최종 승리는 교습가에게 돌아갔다. 이날 모두 평소보다 5타 정도 더 나왔다고 했다. 성적을 떠나 나에게는 추운 겨울 고수에게 한 수 배우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 교습가는 딴 돈으로 캐디피와 식사비까지 지불했다.

겨울엔 휴장하는 골프장도 있지만 대중골프장은 대부분 문을 연다. 춥거나 덥다고 예약이 취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사람마다 체감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한파특보가 내려지거나 나이든 분은 건강 상태를 말하면 취소를 받아준다고 한다. 안개나 바람을 이유로 부킹을 취소해주는 경우는 없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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