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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연합시론] 인종차별 겪는 '귀화 선수'…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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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스포츠계의 인종차별 문제는 흔하고 뿌리 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들도 해외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서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이 대표적이다. 손흥민은 다른 팀 팬들에게 '개고기' 운운하는 인종차별적 발언과 몸짓을 수시로 겪어야 했다. 여자배구와 남자축구 대표팀도 근년에 상대 팀으로부터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 세리머니'를 당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실상은 어떤가? 한국 사회에서도 차별과 혐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안의 차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 프로농구의 귀화 선수로 국가대표팀 센터를 맡은 라건아(31. 전주KCC) 선수 얘기다.

라건아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에게 쏟아진 인종차별적 표현과 욕설이 담긴 글을 공개하면서 고충을 토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어떤 팬은 라건아에게 "한국에서 돈 많이 벌더니 늙은이처럼 뛰고 있다"고 비아냥대는 메시지를 보냈다. "KBL(한국프로농구)에서 뛰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너보다 잘하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과 함께 가족들에게도 심한 욕설을 남겼다. 라건아가 "고맙다"고 무시하면 "깜둥이(nigger)"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라건아는 SNS에 "나는 한국인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매일같이 받는다. 대부분은 그냥 차단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이런 문제들을 매일 헤쳐나가야 한다"고 적었다. 라건아 선수의 괴로운 심경에 공감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미국 출신인 라건아는 본명이 리카르도 라틀리프다. 그는 2012년 미주리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울산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외국인 선수로 입단해 팀의 챔피언전 3연패를 이끌었다. KBL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그는 2018년 1월 체육 분야 우수 인재로 뽑혀 특별귀화를 통해 이중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해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꼽혔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고, 작년 중국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핵심 센터 역할을 했다. 남북통일농구 경기에서 뛰기도 했다. 라건아는 귀화 전 이름에서 성을 따와 '용인 라 씨'의 시조가 됐다. '건아'라는 이름은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 '대한의 건아'라는 뜻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그는 귀화하면서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미국과 달리) 마약도 총도 없고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하게 살 수 있어 (한국이) 좋다"고 말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귀화 선수인 라건아가 겪는 고충은 스포츠계를 넘어 '과연 한국 사회는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해외에서는 인종차별을 당하는 피해자이지만, 국내에서는 가해자가 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눈에 보이는 피부색, 머리카락과 같은 생물학적 요소에 근거해 인간을 규정하고, 혐오하는 저열한 행위다. 우리나라는 세계화에 따라 다른 인종과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포용이야말로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시민적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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