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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드림투어 ‘준우승’ 김철민 “PBA투어서 마지막 불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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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PBA드림투어 최고령선수" 김철민은 드림투어 6차전 준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히 프로당구선수로서 1부투어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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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빌리어드뉴스 김다빈 기자] “건강이 받쳐주는 한 평생 당구선수 김철민으로 살고싶습니다.”

선지훈이 드림투어 ‘첫 3회우승’ 기록을 세운 ‘민테이블 PBA드림투어’ 6차전에선 또다른 선수가 주목을 받았다. 올해 68세로 최고령 프로당구 선수인 김철민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보다 한 세대(30세) 이상 차이나는 선수들과 만나 256강부터 결승까지 진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철민은 3쿠션과 포켓볼, 예술구를 넘나들며 숱한 우승컵을 들었다. 1995년 그랑프리 세계3쿠션 월드컵 8강전에선 토브욘 브롬달과 박빙승부(세트스코어 2:3 패)를 펼쳤다. 1997년 서울 세계3쿠션월드컵에서는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직 6차전 여운이 남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점에서 김철민을 만났다. 연거푸 걸려오는 축하전화에 인터뷰는 2시간30분이나 넘게 결렸다.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 사진을 챙겨온 김철민은 “선수로서 다시 활약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며 인터뷰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을거 같다.

=대회 끝나고 3일이 됐는데 200통 넘는 메시지와 전화를 받았다. 메시지에 일일이 답장해주는 편인데, 하도 많아 새벽까지 하기도 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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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철민의 젊었을 때 모습. (연도 미상, 사진제공=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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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그간 PBA드림투어에서 부진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맞다. 지난해 PBA투어 출범 전 열린 트라이아웃에도 2부투어는 생각도 안하고 도전했다. 선수로 활동한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나의 무대는 여전히 ‘최고의 무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선수들의 실력이 굉장히 좋더라. 트라이아웃서 1부투어 진출에 실패한 후 드림투어 1, 2차전 128강 탈락, 3~5차전에는 256강 첫 판 탈락했다. 이번 6차전은 정말 내 당구인생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런 각오 영향일까, 이번 대회에선 개인 최고 성적 64강을 넘어 준우승까지 했다.

=PBA드림투어 임하기 전만해도 나는 서바이벌 경기를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우리 시대는 재야에서 ‘서바이벌 경기’를 굉장히 많이 해왔다. 하지만 막상 경기해보니 너무 어려웠다. 100점 경기면 몰라도 50점 경기는 시간도 촉박하고 또 뱅크샷(2점)을 몇번 맞다보면 점수가 확 줄어들었다.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자존심이 정말 많이 상했다. 이번 6차전을 앞두고는 연습량을 더 늘려 매일 3, 4시간 이상 당구공을 만졌다. 그런 점들이 좋은 성적의 원인이 됐다.

▲대회 전 세운 이번 6차전 목표는.

=사실 16강에만 들자는 것이었다. 서바이벌 경기보다 1:1경기에 자신있어 세트제(16강)를 목표로 했다. 결국 세트제 진출했는데 ‘이제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한 경기 한 경기 승리하다보니 자신감이 붙었고 준우승까지 했다.

▲16강전 상대가 ‘2·4차전 우승’ 김기혁이었다. (결과는 세트스코어 3:2승)

=김기혁 선수 정말 잘 치더라. 지금까지 당구를 40년 넘게 쳐오며 ‘치면 다 맞겠다’는 생각이 든 선수가 별로 없었다. 근데 김기혁과 경기하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내가 1, 2세트를 먼저 따냈는데 이후 3 4세트를 내줬다. 3, 4세트에서 패할 때 김기혁의 공격기회만 오면 ‘저거 맞겠다’ ‘저 공 득점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력도 좋고 정신력도 좋은 선수다.

▲어렵게 올라간 결승에서 ‘드림투어 최강’ 선지훈에게 세트스코어 1:4 패했는데.

=선지훈과의 경기를 앞두고도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 실수가 워낙 많았다. 나는 공격할 때 ‘연속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포지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스트로크 할 때 조금 높은 자세를 취하는 것도 다음 공이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승 때 실수가 잦아 득점이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생각하면 요즘도 밤에 잠에서 깨곤한다. 하하.

그런데 선지훈은 정말 날이 갈수록 더 잘치는 선수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시종일관 차분함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력에 칭찬을 보내고 싶다. 미래가 정말 기대되는 선수다.

▲PBA 1부투어에는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더 많을텐데. (PBA는 드림투어 10위 이상에게 다음시즌 1부투어 승격기회를 준다. 김철민은 현재 드림투어 랭킹 7위다)

=맞다. 그렇기 때문에 ‘당구 선배’로서 한국 당구계가 이토록 발전했다는 점이 뿌듯하다. 하지만 그들을 밖에서 평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당구선수 김철민’이다. 이번 6차전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도 6차전 이후 남은 대회가 2차례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1부투어는 나의 염원이기에 준우승이라는 성적이 굉장히 기쁘다. 1부투어에 진출해 하루빨리 그들과 경쟁하고 싶다. 거기가면 더 잘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하.

한창 선수할 때도 별로 긴장하지 않는편인데 PBA는 한 경기 한 경기 굉장히 긴장되더라.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프로당구 무대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당구선수’라는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직업인으로서 ‘당구선수’가 인정받고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실력이 있다면 ‘당구선수’라는 직업 하나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진 것도 PBA가 기반이 됐다. 나이 들면서 스스로 ‘꺼져가는 태양’이라고 생각했는데, PBA는 그 꺼져가는 태양에 불을 붙여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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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오스트리아 벨든에서 열린 3쿠션월드컵에 출전한 김철민이 다른 선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4번째가 김철민. 그옆으로 장성출(PBA1부투어), 레이몽 클루망, 세미흐 사이그네르가 보인다. 맨오른쪽이 토브욘 브롬달. (사진제공=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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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선수로서 다시 의욕이 타오른 계기는.

=나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지금은 없어진 BWA(세계프로당구협회) 소속선수로 활동했다. 1995년 오스트리아 벨든에서 열린 3쿠션월드컵 8강전에서 토브욘 브롬달과 좋은 경기를 해 한국인 최초로 BWA와 전속 계약했다.

그 이후 사실 세계대회와 연이 없었지만 PBA출범 소식을 듣고는 다시 마음에 불꽃이 타오르더라. 2009년 뇌경색 진단을 받기도 했고 당구장을 운영하며 최근 10년은 선수와 거리가 멀었다. 수십년을 대회에 맞춰 준비하고 연습했는데, 그걸 못하니 살아있어도 죽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다시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무대가 생겼다. 많은 관중들과 TV로 중계되는 방송경기에 나가서 ‘당구선수 김철민’을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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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울 3쿠션월드컵에서 공동3위에 오른 김철민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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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선수에게 ‘뇌경색’은 치명적이었을텐데.

=지금도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그때(2009년) 당구를 치던 중이었는데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마침 이틀 후 건강검진이어서 뇌검사를 받았다. 진단결과는 ‘뇌경색’이었다. 2달간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했는데 퇴원 후 그 전에 잡아둔 예술구 초청 시범경기 일정이 있었다. 도저히 잘할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나를 대신할 수 있는 후배와 같이 갔고 우선 먼저 내가 공을 쳐봤는데 ‘공을 쳤다’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주최측 양해를 구해 후배가 대신 시범경기를 했다.

▲그 이후 어떻게 지냈나.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당구가 전부였는데 당구를 못치게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하루에 4시간씩 걷기, 등산 등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당구장에 가서 공을 쳐보며 감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자 1년 뒤인 2010년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95%정도 감각이 돌아왔다. 감각이 돌아왔지만 대한당구연맹 전국대회 등에 나가기는 나이가 많다고 느꼈고 그 이후에는 당구장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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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서울 세계3쿠션월드컵에서 김철민이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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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A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 당구장도 그만뒀다고 들었다.

=두달 전 다른 사람에게 당구장을 넘겼다. 1~5차전 부끄러운 성적을 내니 PBA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당구 경기에만 집중하니 6차전서도 좋은 성적이 나온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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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뇌경색을 앓은 김철민은 꾸준한 재활로 예전 감각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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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드림투어는 2차례만 남겨뒀는데.

=지금 내 나이가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 불꽃’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다. 준우승으로 드림투어 랭킹 7위까지 올랐는데 마무리 잘해서 1부투어에 승격하고 싶다. 아울러 후진양성에도 힘쓸 수 있는 ‘당구선수’ 김철민이 되겠다. [dabinnett@mkbn.co.kr]

◆He is…

ㅇ1952년 출생(현재 남양주 거주)

ㅇ주요 수상경력

-1979년 전국 4구선수권 우승

-1981년 전국 3쿠션선수권 우승

-1988년 아시아예술당구선수권 3위

-1989년 전국 포켓선수권 우승

-1990년 대한당구회 국제식3쿠션 우승

-1994년 S.B.S배 국제식3쿠션 한국당구 최강전 우승

-1995년 그랑프리 세계3쿠션 당구선수권 8강

-1997년 서울 세계3쿠션월드컵 3위

-2003년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예술구선수권 우승

-2003년 S.B.S배 한국3쿠션최강전 우승

-2006년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 예술구 준우승

-2017년 한일 시니어3쿠션 챔피언십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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