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위 웨스트우드, 2년 만의 우승으로 메이저 대회 제패 동력 회복
웨스트우드의 드라이버 스윙. |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
칭찬보다는 비아냥에 더 가까운 이 호칭의 오랜 주인은 필 미컬슨(미국)이었다.
지금은 마스터스 3승에 디오픈과 PGA챔피언십을 각각 한 차례씩 제패해 메이저 5승을 자랑하는 미컬슨이지만 데뷔 10년 차를 훌쩍 넘긴 33살 때까지 메이저 우승이 없어 애를 태웠다.
2004년 마스터스에서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하기 전에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무려 22승을 올렸기에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미컬슨이 메이저 챔피언 반열에 오른 이후 오랫동안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 선수' 칭호는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에 넘어갔다.
가르시아는 골프 신동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 20년이 넘은 37세이던 2017년 처음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PGA투어에서 11승,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12승을 올릴 때까지 메이저 우승이 없던 그에게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 선수'는 더없이 어울렸다.
미컬슨과 가르시아 이전에도 메이저대회에서 얼마든지 우승할 실력을 갖추고도 유독 메이저 우승과 연을 맺지 못한 스타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유럽투어에서 통산 31승을 남기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는 메이저대회에서 5차례 준우승뿐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접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 말까지 PGA투어에서 뛰면서 통산 31승을 따낸 해리 쿠퍼(미국) 역시 메이저 우승 없이 은퇴했다. 그는 PGA투어 통산 승수에서 16위다. 리 트레비노, 토미 아머, 조니 밀러(이상 미국)보다 더 많은 우승을 거뒀지만, 메이저 정상에 서보지 못한 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PGA투어 통산 우승 횟수 25위 이내에서 메이저 우승을 못 한 선수는 쿠퍼가 유일하다.
미컬슨, 가르시아가 메이저 챔피언이 된 뒤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은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에게 넘어갔다.
주로 유럽 무대에서 뛴 탓에 PGA투어 우승은 2번뿐이지만, 웨스트우드는 유럽투어에서 무려 25승을 따냈다.
아시아투어 9승과 일본프로골프투어 4승, 남아공투어 3승 등 전 세계 프로 대회에서 수집한 우승컵은 44개에 이른다.
더구나 그는 미컬슨과 가르시아도 밟아본 적이 없는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그는 2010년 10월 세계랭킹 1위를 꿰찼다. 당대를 호령하던 타이거 우즈(미국)를 2위로 끌어내린 주인공이 웨스트우드였다.
그는 메이저대회에 82번이나 출전했다. 63차례 컷을 통과했고, 10위 이내에 19번 입상했다.
마스터스에서 두 번, 디오픈에서 한번 등 3차례 준우승을 했다. 3위도 여섯번이다. 메이저대회에서 언제 우승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빼어난 성적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정상과 멀었다.
웨스트우드는 2018년부터 부진에 빠져 몽고메리의 길을 걷는 듯했다. 마흔살을 넘기면서 경기력이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세계랭킹이 100위권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아예 메이저대회 출전 기회도 잡지 못했다. 13년 연속 출전하던 마스터스 초청장을 받지 못했고, US오픈은 예선까지 나섰지만 낙방했다.
작년에도 마스터스와 US오픈은 출전권이 없어 구경만 했고, PGA챔피언십은 컷 탈락했다.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 선수'에서 '메이저 우승이 없는 '한때' 최고 선수'로 골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싶던 웨스트우드가 부활의 나래를 폈다.
그는 지난 20일(한국시간) 유럽프로골프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2018년 이후 2년 만에 우승이다.
브룩스 켑카, 패트릭 캔틀레이(이상 미국),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 등 세계랭킹 10위 이내 선수 3명을 비롯해 정상급 선수가 대거 참가한 A급 대회다.
그는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어 2020년대에도 우승을 이어가는 진기록도 세웠다.
무엇보다 세계랭킹을 29위로 끌어올린 그는 최근 2년 연속 결장했던 마스터스, US오픈을 포함해 4개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사실상 굳혔다.
'메이저 우승 없는 최고 선수'의 귀환인 셈이다.
웨스트우드가 '메이저 우승'이라는 필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시 뛸 수 있는 동력을 얻으면서 당장 오는 4월 열리는 마스터스에서 관전 포인트 하나가 늘었다.
우즈의 2연패와 메이저 16번째 우승,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과 함께 웨스트우드가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 선수' 꼬리표를 뗄지가 큰 관심사로 등장했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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