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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너무 가까운 KBO리그 ‘야구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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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속 시즌 맞이 준비

경기 중 수다 떠는 문화 바꿔야

중앙일보

삼성 강민호(왼쪽)는 지난해 2루에서 상대 수비수와 잡담하다가 견제 아웃됐다. 상대와 지나친 친목은 팬을 불편하게 만든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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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KBO)는 24일 이사회에서 두 가지를 결정했다. 다음달 20일 이후 정규시즌을 개막할 수 있게 준비하며, 다음달 7일부터 구단 간 평가전을 추진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 속에서도 KBO리그는 조심스럽게 시즌 맞이를 준비한다.

전 세계 스포츠가 멈춰섰고, 7월 개막 예정이던 2020년 도쿄올림픽은 내년으로 연기됐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각 팀이 이달 중순부터 자체 평가전을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MLB) 칼럼니스트 존 헤이먼은 소셜미디어에 ‘지금 한국에선 야구를 한다. 미국에도 희망을 가질 일이 생겼으면…’이라고 적는 등 부러움을 표시했다.

지구촌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하고 팀 스포츠를 재개한다면, KBO리그가 시작점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하고 있는 데다,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도 한몫했다.

야구는 마스크를 쓰고 할 수 있는 스포츠다. 유산소 운동 비중이 적어서다. 한화·롯데 야수들은 자체 평가전 때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 물론 훈련 단계라서 가능하다. 정규시즌에서 선수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야구는 ‘비대면 플레이’도 가능하다. 각자 순서(타순)와 자리(포지션)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 다른 선수와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 맨몸끼리 부딪히거나, 땀이 섞이는 종목과 비교해 감염 가능성이 낮다. 개인종목인 골프만큼이나 다른 선수와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는 시국에, ‘야구적 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거리를 두는 스포츠다.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투수와 타자도 18.44m(투수판~홈플레이트 간 거리) 떨어져 있다. 비말이 닿을 수 없다.

물론 타자와 포수, 심판은 1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주자는 수비수와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들은 원래 서로 마주볼 일이 없다.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상대 선수나 심판과 긴 얘기를 나누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9월 3일 삼성 강민호(35)는 2루에서 롯데 유격수 신본기(31)와 잡담하다가 투수 견제구에 아웃됐다. 이 황당한 장면을 두고 은퇴선수협회는 ‘경기 중 안일한 플레이는 있을 수 없다’고 비판성명을 냈다. 팬들은 ‘KBO리그 최초의 잡담사(死)’라고 조롱했다.

강민호의 견제사만 크게 부각됐는데, 사실 KBO리그의 ‘야구적 거리’는 지나치게 가깝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선후배로 얽히는 한국 야구만의 특성 때문이다. 2000년대 초까지 서로 다른 팀 선수끼리 밤늦도록 술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요새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도 걱정은 된다. 상대 전력을 분석한 데이터가 모든 선수에게 전송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리그 구성원을 흔히 동업자로 표현한다. 리그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팀이 다르면 엄연히 경쟁자다. 팬은 다른 팀 선수와도 잘 어울리는 선수보다, 다른 팀 선수를 이기려고 애쓰는 선수를 원한다.

코로나19 시국에 사회적 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이 참에 야구도 ‘안전거리’를 확보하면 좋겠다. 무정한 말이 아니라, 규정대로 하는 거다. KBO리그 규정의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5항)’은 ‘경기 중 심판이나 상대 선수에게 친목적 태도를 금지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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