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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그대들은 결코 무도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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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시간의 제약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무디게 하는 치명적 마취제가 될 수 있다. 시간은 없고 갈 길이 바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급함을 억제하지 못하고 섣부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이 때문에 그릇되고 삿된 생각을 품고 있는 이는 시간적 제약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술수를 곧잘 쓰곤 한다. 사면초가에 빠졌던 국기원이 지난 27일 어렵사리 이사장 선거를 마쳤지만 뒷맛은 영 개운찮다. 체육개혁이라는 시대적 명분에서 한참 벗어나는 범죄전력의 인사가 선출됐기 때문이다. 국기원의 새 이사장으로 뽑힌 인물은 제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갑길(63) 이사다.

국회의원이라는 빛나는 훈장에다 광주 광산구청장을 역임한 행정경험,게다가 태권도 5단의 경기인 출신이라는 그럴싸한 커리어에도 그를 선뜻 국기원 새 이사장으로 반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명적인 도덕적 흠결 때문이다. 전 신임 이사장은 지난 2009년 광주시 광산구청장 재임 시절,건설업자로부터 관급공사 수주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뇌물을 수수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두 차례의 이사장 선거가 무산되고 맞이한 이날 선거에서 전 신임 이사장은 정치인답게 노련한 협상력을 발휘해 5번의 재투표끝에 세계 태권도의 심장이라는 국기원의 이사장직을 기어코 손안에 넣었다. 범죄전력 전 이사의 국기원 이사장 선출은 한국체육의 부끄러운 현주소이자 비겁하고 약삭빠르기 그지없는 태권도계의 생생한 민낯을 드러나게 한 좋은 본보기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체육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중단없는 개혁의 당위성과 명분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았지만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자 못한 듯 인사에서 옥석을 가리는 데 실패했고 무엇보다 체육을 진영의 논리로 접근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반복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혁의 기치와 명분은 그 어느때보다 높지만 체육현장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개혁을 목청껏 외치지만 정작 체육의 중심에는 명분과 정면 배치되는 인물이 낙점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 국기원 이사장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갑길 이사의 범죄전력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비난의 십자포화를 한몸에 받고 있었지만 정부는 정작 그의 이사장 출마를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 뇌물수수라는 그의 범죄행위가 국기원 정관에 적시되지 않았다고 면죄부를 준다는 건 도무지 납득히기 함든 처사다. 특히 전 신임 이사장이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과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건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범죄전력이 공론화된 뒤에도 전 이사장 스스로가 박 장관과의 친분을 뽐내고 다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5차례의 재투표를 거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전 신임 이사장에게 표가 몰렸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투표를 거듭하면서 반대표를 끌어모은 결정적 동인이 있었다는 걸 뜻한다. 정치인 특유의 주고 받는 딜에 능숙한 그에게 이사진들이 어떻게 합종연횡에 응했는지는 태권도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문체부 관계자도 전 이사의 신임 이사장 선출에 대해 “(그의 범죄전력을)인사추천위원회에서 필터링을 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면서도 문체부에 주어진 국기원 이사장 최종 승인권에 관해선 말을 아꼈다.

정치인 전갑길 이사의 국기원 이사장 선출로 향후 그려질 국기원의 새로운 밑그림이 불안하고 위태롭다. 필자는 그의 국기원 이사장 선출이 유력해짐에 따라 펜을 들고 일침을 놓은 바 있다. ‘그대들이 진정 무도인입니까’라는 제목의 지난 17일자 칼럼은 결국 소 귀에 경을 읽는 꼴이 되고 말았다. 국기원 새 이사장에 우려했던 전 이사가 당선되면서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전 이사에게 표를 던진 11명의 국기원 이사진,그들은 결코 정정당당한 무도인이 아니었던 걸로 판명났다. 큰 길(大道)에 눈을 질끈 감은 그들에게 무도인이라는 존경스런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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