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3 (일)

팔굽혀펴기 왕자, 반란을 꿈꾼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프로야구 두산 안권수

일본 사회인 야구 출신 교포 3세

고교 때 타석전 푸시업으로 인기, 4년 동안 공장 다니며 야구 병행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턱걸이… 빠른발·기민한 수비로 눈도장

공보다는 콘크리트와 씨름한 시간이 더 많았다. 재일교포 3세 야구 선수 안권수(27·두산)는 작년까지 땅 아래로 파이프와 파이프를 이어 전기를 흐르게 하는 콘크리트 패널을 만들었다. 오후 1시 시작한 공장 일은 오후 8시 반쯤 되어야 끝이 났다.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퇴근한 그는 날 밝기가 무섭게 공을 잡았다. 야구 연습은 오전 7시 반부터. 잠은 늘 모자랐다.

안권수는 '継続は力なり(꾸준함은 힘이 된다)'란 말을 되뇌며 고된 시간을 버텼다. 일본 사회인리그 팀 카나플렉스에서 그렇게 4년간 야구장과 공장을 오가며 언젠가 찾아올 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떻게든 나가서 어떻게든 들어온다

"두산 베어스 지명하겠습니다. 와세다대 재일교포 선수 안, 권, 수."

작년 8월 2020시즌 KBO(한국야구위원회) 신인 드래프트. 두산 베어스가 국내에선 존재감이 거의 없던 스물여섯 늦깎이 안권수를 2차 10라운드 전체 99순위로 지명하자 장내가 잠시 술렁였다.

"두산에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신인 트라이아웃 때 허리가 아파 주저앉았어요. 실망하기 싫어 지명 행사장엔 부모님이 대신 갔죠. 그때 이름이 안 불렸더라면 야구를 그만뒀을 겁니다."

조선일보

안권수가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일본 고시엔 대회 당시 대기 타석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 /두산 베어스·일본 블로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권수가 곧바로 1군 무대에 설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가능성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신인 체력 테스트에서 예닐곱 살 어린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했고, 스프링캠프에선 적극적인 주루와 기민한 외야 수비로 김태형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안권수는 일본 팀과 벌인 연습 경기와 자체 청백전까지 14경기에서 타율 0.269(26타수 7안타)를 기록했다. 도루는 6개 성공시켜 팀 내 최다다.

"어떻게든 나가서, 어떻게든 홈플레이트를 밟아야 한다는 게 제 야구 철학입니다. 야구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쭉~."

◇팔굽혀펴기 왕자는 한국서 꿈을 펼칠까



조선일보

사이타마현 출신의 안권수는 어린 시절 수영 유망주로 꼽혔지만, 야구에 더 재미를 느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방망이를 잡았다. 일본 야구 팬들은 그의 이름(야스다 곤스)은 기억 못 해도 '팔굽혀펴기 왕자'라고 하면 '아~ 그 선수'라며 알은체한다.

와세다실업고 재학 시절인 2010년 안권수는 고시엔(甲子園·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대회에서 4할 타율(15타수 6안타)로 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부드러운 타격을 위해 팔 힘을 뺀다며 대기 타석에서 '푸시 업'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팔굽혀펴기 왕자'로 불렸다.

와세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야구에 흥미를 잃었다"며 야구부를 나왔다. 그 이유에 대해선 지금도 말하기를 꺼린다.

그래도 글러브를 벗지는 않았다. 전용 구장 하나 없는 독립리그 팀 무사시 히트 베어스에서 뛰면서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입단설까지 나왔지만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2016년 와세다 대학 사회과학부를 졸업한 그는 결국 일본 사회인 리그를 거쳐 한국에서 프로 꿈을 이루게 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왔어요. 일본에서 살면서 국적 바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기회를 얻게 됐네요."

안권수의 롤 모델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에서 뛰었던 아오키 노리치카(38·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두산의 정수빈(30). 정교한 타격에 주루 플레이에 능하고 수비가 뛰어난 외야수들이다.

안권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막이 조금 미뤄졌지만, 그동안 견뎌왔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내 야구 인생의 봄을 기다리는 요즘 무척 설렌다"고 했다.

[장민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