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반대로 골퍼 꿈 접은 아버지
외동딸 태명, 홀인원 연상 홍인원
아버지와 달리 프로 조기 전향 딸
딸이 꿈 이루게 캐디백 맨 아버지
홍예은은 KLPGA의 대회 등에서 검증을 마친 후 다른 선수보다 빠른 17세에 프로가 됐다. [사진 KLP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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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 골프 주니어 무대에서 홍태식(49)은 전설 같은 선수였다. 아버지에게는 “취미로 한다”며 선수로 뛰었는데, 14살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랬던 그가 프로 테스트도 거치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슬럼프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오래전 서양에선 골프 실력이 좋아도 프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골프의 성인’으로 불린 보비 존스가 그랬다. 홍태식이 존스처럼 아마추어 정신을 지키기 위해 프로로 전향하지 않은 건 아니다. 골프가 좋았고 프로도 되고 싶었으나, 집안에서 반대했다.
공부해서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에 유학 갔을 때 잠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나 부모 반대에 또 부딪혔다. 홍태식은 “아버지는 당시 한국에서는 프로의 위상이 낮고, 미국 무대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 프로 테스트를 봤다. 기량이 녹슨 뒤였다.
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요즘 여자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홍예은(18)이 홍태식의 외동딸이다. 그는 딸의 태명까지 홀인원을 연상시키는 홍인원으로 지었다. 딸에게 골프를 시키고 싶었다.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계획을 세워 예은이를 골프로 유도는 했다. 골프는 정적인 운동이라 어릴 때는 좋아하기 어렵다. 그래서 테니스, 스키 등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골프연습장에서 놀게 했다”고 말했다.
그린의 경사를 읽고 있는 아버지 홍태식(오른쪽)씨와 홍예은. [사진 KLP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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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은은 “어릴 때는 골프에 관심이 없었다. 골프장에 나비가 날아와 치려던 공을 두고 나비를 쫓아간 적도 있다. 4학년 때 대회에 참가하면서 승리욕이 생겼고 골프가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딸은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성장판 검사를 했다가 키가 1m56㎝에서 멈춘다는 얘기를 듣고 매일 우유 2리터씩 마시고 줄넘기를 3000개씩 했다. 지금 키는 1m68㎝다. 그는 아버지처럼 국가대표를 거쳤고,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8년 KLPGA투어 SK네트웍스 클래식 2라운드에서 2위로 올라서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호주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프로와 관련해서 홍예은은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간다. 지난해 다른 선수보다 이른 17살에 프로가 됐다. 나이 제한 규정에 걸려 1부 투어는 못 가고 2부 투어에서 뛰어야 할 만큼 조기 전향이었다. 고등학교도 중퇴했다. 프로가 되지 못해 한 맺힌 아버지의 영향일까. 그는 “아버지와 별 관계 없다. 지난해 LPGA 대회에 나갔는데 너무 좋았다. 어차피 할 거니까 빨리하는 게 낫다고 봤다. 축구 손흥민도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택해 성공했다”고 말했다.
홍예은. [사진 WAA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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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LPGA 2부 투어인 시메트라 투어 개막전이 홍예은의 프로 데뷔 무대였다. 3위를 했다.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쉬고 있지만, 자신감은 가득하다. 홍태식은 딸의 가방을 멘다. 스윙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코치와 부모는 역할이 다르다. 내가 나서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퍼트는 가르친다. 그는 “나는 주니어 시절 퍼트를 상대적으로 잘 못 했다. 딸이 나처럼 실수하지 않게 하려고 책도 많이 읽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홍예은은 드라이버 적중률이 높고 쇼트게임도 좋다. 그래도 전문가들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건 날카로운 퍼트다.
홍태식은 “예은이는 본인이 하고 싶어했던 골프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게 홍씨가 30여년간 꿨던 바로 그 꿈이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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