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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때리고…굶기고…아무도 돕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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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 사례서 또 드러난 ‘스포츠계 가혹행위’

[경향신문]



경향신문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최숙현 선수의 전 소속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감독(가운데)이 2일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경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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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20만원어치 먹이고 폭행
“살쪘다”며 3일간 굶기기도
감독·팀닥터·선배 모두 가담
지속적 폭력·폭언, 극단 선택

동계올림픽 효자종목인 빙상에서 폭력·성폭력 문제로 스타플레이어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온 ‘스포츠계 미투 운동’이 불거진 지 채 2년도 안 됐다. 이후 성적 지상주의에 가려진 폭력·폭언,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한 체육계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그 그림자는 여전하다. 스포트라이트 밖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철인 3종’이라 부르는 트라이애슬론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지난달 26일 부산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최숙현 선수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최숙현은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를 지낸 엘리트 선수였음에도 지속적인 폭력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감독은 물론 일부 선배와 심지어 지역 유명인사로 알려진 임시직 팀닥터(물리치료사)까지 가해자였다. 고인이 낸 진정서와 대한체육회 징계신청서에 따르면 이들의 가혹행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교 3학년생으로 미성년자여서 아직 공식 입단이 이뤄지지 않았던 2016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부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훈련 직후 팀의 간판이자 9세 위 ㄱ선배의 폭언이 이어지자, 지나가던 감독이 자초지종을 확인하지도 않고 운동화로 최숙현의 얼굴을 때렸다. 그러면서 “내가 때린 것이 아니고 운동화가 때렸다”며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체급 종목이 아님에도 체중을 구실로 이런저런 가혹행위가 이어진 것도 드러났다.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의 빵을 사다 먹도록 강요하는 식고문까지 이뤄졌다. 감독 앞에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 끝에, “살고 싶으면 ㄱ선배에게 무릎 꿇고 빌어라”라는 명령을 따르고서야 끝이 났다. 하루에 체중을 9차례씩 재면서 물도 못 마시게 했고, 3일간 굶긴 적까지 있었다. 지난해 전지훈련에서도 복숭아 1개를 먹은 것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독과 팀닥터에게 20여 차례나 뺨을 맞기도 했다.

최숙현은 계속되는 가혹행위에 결국 2018년에는 1년을 쉬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복귀 이후 최숙현은 단체전 은메달, 개인 14위 등의 성적으로 기량을 유지했지만, 선배의 괴롭힘은 이어졌다. ‘트랜스젠더 닮았다’ 등 성폭력적인 발언까지 이어졌다.

현 감독과 팀닥터, ㄱ선배는 선수들에게 금전을 강요하고 횡령한 의혹도 받고 있다. 진정서에 따르면 ㄱ선배의 경우 불투명한 경비 명목으로 후배 선수들에게 돈을 걷었다. 또 2016년 뉴질랜드 합숙훈련을 가면서는 고인을 비롯한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이 팀닥터에게 80만원씩을 내는 등 훈련 때마다 치료비 명목의 금전 요구가 있었다.

감독의 경우, 최숙현을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지도자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크다.

고인은 지난 2월 감독과 팀닥터, 선배를 고소했다. 4월에는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하거나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렇지만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칠 때는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다. 선수가 끝내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사망하고 나서야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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