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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마침내 입을 옷이 보인다…‘캡슐 옷장’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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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옷장을 뒤적이는 순간에도 “입을 옷이 없다”고 외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 조금 더 단순하고 더욱더 영리하게 옷장을 정리해야 할 타이밍이다. ‘캡슐 옷장’이 그 해결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수백 벌 있어도 입는 건 결국 한 벌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트레이드 마크인 옅은 회색 반소매 티셔츠와 짙은 회색의 후드 점퍼가 걸려 있는 옷장을 공개하며 ‘무엇을 입을까(What should I wear)?’라는 글을 남겼다. 평소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싶다. 소소한 선택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철학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유머였다.

5년 차 직장인 이혜영씨는 지난해 여름을 기점으로 옷 쇼핑을 잠정 중단했다. 저커버그식의 단순한 삶을 꿈꾸면서다. ‘유행’이나 ‘신상’이라는 단어와 거리를 둔 복장이지만 그의 옷차림은 전혀 남루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옷을 잘 입는다’는 칭찬을 종종 들을 정도로 세련됐다.

“상표를 떼지 않은 옷들이 쌓여 있는데도 계절이 바뀌면 습관처럼 옷을 샀어요. 그렇게 쌓인 옷이 수백 벌이었지만 손이 가는 건 고작 몇 벌에 불과하더라고요. 그마저도 언제 입을지 모를 기약 없는 옷장 속 옷들에 자리를 빼앗겨 집 안 곳곳에 널브러지기 일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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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대충 걸칠 것과 그나마 덜 이상한 것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뭘 입을지 망설이는 일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는 문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삶을 심플하게 만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다른 데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아야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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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불가 지경에 이른 공간은 ‘캡슐 옷장’을 만난 이후 여유롭게 변했다. 캡슐 옷장이란 ‘최소한의 옷을 믹스매치해 여러 가지 의상을 만들 수 있는 패션 컬렉션’을 뜻한다. 이씨는 평소 즐겨 입는 옷 5벌을 ‘기본 옷’으로 두고 이와 어울리는 나머지 아이템을 번갈아 가며 입는 방식으로 일주일 치 리스트를 짠다.

“이걸로 될까 싶었는데 옷 가짓수를 줄이니 오히려 더 야무지게 챙겨입게 되더라고요.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버리는 시간과 그로 인한 피로가 줄었고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과 죄책감처럼 자리 잡았던 안 입는 옷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사라졌어요. 불필요한 옷 소비를 줄이면서 품질 좋은 옷에 투자도 가능해졌죠.”

<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대충 걸칠 것과 그나마 덜 이상한 것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뭘 입을지 망설이는 일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는 문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삶을 심플하게 만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다른 데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아야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이씨가 꿈꾸는 ‘캡슐 옷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작은 작은 옷장이었지만 지금의 이런 실천들이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요.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삶, 간결하지만 세련된 삶을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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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리스트’ 윤하정씨(가명)는 자신의 블로그(@jungaring_log)에 출근룩을 콘셉트로 하는 ‘캡슐 옷장’을 연재 중이다. 주로 셔츠, 코트, 원피스와 같은 기본 의상으로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코디법을 소개하는데 ‘11벌의 옷으로 4월 한 달 살기’ ‘트렌치코트 돌려 입는 일주일 패션’ 등이 대표 콘텐츠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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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옷으로도 계절·유행 안 타는 ‘개성있는 옷차림’ 완성

캡슐 옷장은 1970년 런던의 부티크 대표였던 수지 폭스가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시즌별 의상과 조합할 수 있는 필수 의류 품목 컬렉션’을 소개하며 등장했다. 그는 적은 수의 옷으로도 계절과 유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DKNY로 잘 알려진 미국의 디자이너 도나 카란 역시 1985년, 단 7개의 아이템만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Seven Easy Pieces’로 일하는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캡슐 옷장을 제시했다. 효율성을 강조한 현재의 캡슐 옷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개성과 화려함에 주목하는 패션 트렌드가 이어지는 가운데 캡슐 옷장은 시대를 초월한 실용적인 패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찾아온 ‘미니멀 라이프’ 열풍은 캡슐 옷장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소셜미디어에는 캡슐 옷장을 의미하는 해시태그(#capsulewardrobe)가 이어졌고, 패션·인테리어 관련 사이트에도 각자의 팁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쏟아졌다. 3개월 동안 옷, 액세서리, 주얼리, 신발 등을 포함해 33개의 아이템만을 착용하는 ‘프로젝트 333’이 범세계적 챌린지로 번지며 ‘가볍게 입고 가볍게 살고자 하는’ 이들의 캡슐 옷장 예찬 역시 거세졌다.

최근 언급되는 캡슐 옷장은 간소화보다 ‘각자의 취향과 체형, 라이프 스타일 반영’에 힘을 주는 모양새다. <내 옷장 속의 미니멀리즘>의 저자인 아누슈카 리스 역시 옷의 수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실용적인 옷장을 꾸리는 방향으로 캡슐 옷장을 구성하라 조언한다. ‘미니멀 리스트’ 윤하정씨(가명)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윤씨는 캡슐 옷장 덕분에 묵혀뒀던 옷을 활용하는 재미와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제한된 옷으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충동구매가 줄었어요. 또한 기존의 옷과 어울리고 저의 체형이나 생활 방식에 맞는 것 위주로 사다 보니 제 스타일이 명확해지더라고요.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차림새지만 나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이라 생각해요. 코디 패턴이 반복되면서 제 옷차림에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현재 윤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출근룩을 콘셉트로 하는 ‘캡슐 옷장’을 연재 중이다. 주로 셔츠, 코트, 원피스와 같은 기본 의상으로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코디법을 소개하는데 ‘11벌의 옷으로 4월 한 달 살기’ ‘트렌치코트 돌려 입는 일주일 패션’ 등이 대표 콘텐츠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예를 들어 흰 셔츠, 촘촘한 푸른 줄무늬 셔츠, 굵은 블랙 줄무늬 셔츠가 있다고 가정하면 각각의 셔츠를 블랙 니트 조끼와 코디해 보세요. 서로 다른 느낌의 스타일 3벌을 연출할 수 있죠. 동시에 어떤 하의를 매치하느냐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달라져요. 청바지와 함께 입으면 캐주얼함을, 슬랙스 바지에 곁들이면 단정함을 강조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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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박아영씨는 한 철을 넘기지 못한 패스트 패션 옷의 수명 탓에 잦은 쇼핑이 이어지자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들었고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고민 끝에 캡슐 옷장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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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 버린다 무한반복 그만…환경 고려한 ‘배려의 옷장’

출산 후 불어난 몸무게로 기존에 입던 옷을 입을 수 없게 된 주부 박아영씨는 적은 예산으로 유행에 동참할 수 있는 ‘패스트 패션’에 매료됐다. 그러나 한 철을 넘기지 못한 옷의 수명 탓에 잦은 쇼핑이 이어지자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들었고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고민 끝에 캡슐 옷장을 마주하게 됐다.

“산다, 버린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던 중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패스트 패션 산업이 만들어낸 쓰레기 더미를 제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쇼핑에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조금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검은색 줄무늬 셔츠와 바지를 큰 틀로 소재와 브랜드를 다르게 한 옷으로 사계절을 지내요. 가장 편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코디더라고요. 박아영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같아 만족스러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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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옷정정리>, <문제는 옷습관> 저자인 이문연 사계절 옷 경영 연구소 소장(@ansyd81)은 보유한 옷을 사진으로 찍어 출력한 다음 이를 오리고 종이 인형 놀이를 하듯 이리저리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캡슐옷장의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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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 옷장을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적게 사도 충분하게 입는 캡슐 옷장 워크숍’을 통해 선순환 옷 입기 프로젝트를 제안해온 이문연 사계절 옷 경영 연구소 소장의 ‘사칙연산 가이드’(사진)를 참고해 봐도 좋겠다.

이 소장에 따르면 좋아하고 자주 입는 옷, 좋아하지만 자주 입지 않는 옷, 좋아하지 않지만 자주 입는 옷, 좋아하지 않고 자주 입지 않는 옷을 기준에 따라 ‘나누는’ 과정은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유한 옷을 사진으로 찍어 출력한 다음 이를 오리고 종이 인형 놀이를 하듯 이리저리 배치하는 과정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이템의 잠재력을 ‘곱’한다.

이 소장은 “최적의 아이템만 남기는 캡슐 옷장은 구매의 신중함을 경험하며 슬로 쇼핑을 지향하게 된다”며 “단 이미지 공유 소셜미디어인 핀터레스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캡슐 옷장 필수 아이템’은 외국인의 체형, 계절에 설계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를 똑같이 따라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미지, 생활 방식에 맞춰 구성하는 것이 실패할 확률을 줄인다”고 조언했다.

중고 플랫폼이나 지속 가능한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드레스 윤리학>을 펴낸 리드레스 팀은 “패션은 시대의 반영이라고들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옷과 옷장이 보여주는 시대상을 바로잡는 리드레스(redress)가 필요하다”며 “의류 재판매와 구제 의류를 구매하는 행위는 멋진 일이다. 금전적으로도, 생태계 및 윤리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자칫 쓰레기로 전락할 뻔한 물건이 새 생명을 얻으면서 모두에게 이득인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옷을 잘 관리하는 과정도 캡슐 옷장의 유효 기간을 늘리는 데 중요한 포인트다. 조아람 패션 디자이너는 “라벨에 표시된 주의 사항을 유념해 세탁·보관한다면 옷의 변형을 줄이고 언제나 새 옷 같은 느낌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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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가 추천하는 캡슐 옷장 가이드

·캡슐 옷장이 처음이라면 가장 먼저 나와 잘 어울리는 한 가지 기본 색상을 선택한다. 반드시 무채색일 필요는 없지만 검은색, 남색, 갈색 등 다른 컬러와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색상이 대체로 활용도가 높다.

·흰색 버튼 업 셔츠, 회색 반소매 티셔츠, 베이지색 스웨터, 흰색 긴 소매 티셔츠, 검은색 치마 등이 캡슐 옷장을 꾸리는 ‘기본템’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는 권고 사항일 뿐 본인이 좋아하는 패턴이나 디자인이 있다면 기존의 캡슐 옷장 의상과의 조화를 고려해 추가해도 좋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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