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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심석희 사건 겪고도…고 최숙현 도움 요청 받고도…여전히 ‘귀 막고 눈감은’ 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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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인지 감수성 제자리” 비판

[경향신문]

2018년 1월 대한민국 체육계는 국가대표 코치의 선수 폭행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맞은 선수는 다름 아닌 쇼트트랙 스타 심석희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계주팀을 금메달로 이끈 심석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단에서도 기둥이었다. 심석희가 선수촌을 뛰쳐나간 사이 하필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 선수촌을 방문했다. 당초 감기몸살 때문이라던 불참 이유는 “맞아서”임이 드러나자 ‘손찌검 정도’로 포장됐다. 알고 보니 심석희는 어릴 때부터 상습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조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몇 년을 끙끙 앓던 상처는 대통령의 방문 자리에 불참하는 정도의 ‘사고’가 벌어지면서 그제야 외부에 알려질 수 있었다. 심석희는 1년 뒤 더 용기를 내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추가 고소했다. 워낙 위중한 사안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한체육회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움직였다. 가해 코치 영구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심석희를 향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국 스포츠의 최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가 한 선수를 향해 사과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철인3종경기는 그야말로 비인기 종목이다. 한국은 불모지이다보니 올림픽 정식종목에 포함돼 있는지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다. 최숙현은 국가대표 경력이 있지만 단체종목 위주로 출전했다.

그럼에도 최숙현은 적극적으로 외쳤다. 심지어 ‘가해 선수’로 지목되고 있는 팀 선배는 국내 랭킹 1위에 올림픽 출전 경력과 아시안게임 메달까지 딴 독보적인 선수다. 이미 과거 경찰에 신고하고도 도움받지 못한 경험이 있지만 최숙현은 지난 2월 감독과 팀닥터, 선배 둘을 경찰에 고소했고, 경북체육회에 도움을 청했다. 4월에는 대한체육회 인권상담센터에 신고했고, 6월에는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 진정서를 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진정서를 냈다. 무려 5번이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동계종목에서 국민여동생급으로 사랑받는 스타 선수 심석희조차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외치는 데 매우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겪었고 큰 용기가 필요했다. 빙상에는 사건이 줄줄이 터져 주목받고, 대통령의 선수촌 방문이라는 우연까지 겹치면서 진실을 드러낼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1년반 전 심석희에게 사과한 대한체육회는 또 한번 뒤늦게 꼼지락거리고 있다. 혼자 고통받던 무명의 철인3종 선수가 진실을 밝혀달라며 목숨을 끊은 후에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혁신위원회에 참여한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는 “당시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체육회 내의 스포츠인권센터 자체가 폭력 등에 대한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파악했다. 폭력에 있어 가장 귀 기울여야 할 것은 피해자의 말”이라고 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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