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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날개 달린 발’ US 오픈 그린과 ‘다시 안 와’ 아시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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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드풋서 우승 5번 중 4번 오버파

창의성 요구하는 윙드풋의 그린

코스는 그린, 골프는 퍼트가 핵심

중앙일보

US오픈 개막을 하루 앞둔 17일(한국시각) 연습라운드에서 저스틴 토머스가 퍼트하고 있다. 윙드풋의 창의적인 그린은 오거스타 내셔널보다 경사가 심하고 내리막 스피드가 빠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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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끝없는 전장, 개미허리 페어웨이, 들어가면 공 못 찾는 무시무시한 러프, 수많은 벙커, 시멘트처럼 딱딱한 그린….”

가장 어려운 골프 대회인 US오픈을 앞두고 이런 기사와 예고 방송이 쏟아진다. 기자도 여러 차례 썼다. 이런 걸 보면 우승자 스코어도 대부분 오버파가 될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페어웨이가 좁아도 누군가는 신들린듯 샷을 하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아무리 러프가 길어도 누군가는 헤쳐나간다. 타이거 우즈의 영향으로 선수들 실력이 눈부시게 향상됐기도 했다.

1979년부터 최근 40번의 US오픈에서 오버파 우승은 5번이다. 전장이 8000야드에 육박했던 2016년 에린 힐스에서는 16언더파 우승도 나왔다. 괴물처럼 어렵다는 오크몬트와 베스페이지 블랙에서 최근 열린 US오픈 우승자 스코어는 모두 4언더파였다.

예외는 있다. ‘날개 달린 발’이라는 뜻의 윙드풋(Winged Foot) 골프장이다. 이곳에서 열린 5번의 US오픈 중 4번이 오버파 우승이었다. 1974년 대회에는 ‘윙드풋의 학살’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윙드풋에선 누가 우승후보냐고 물으면 항상 윙드풋이 이긴다는 농담도 한다. 역대 US오픈 개최지 중 가장 스코어가 나빴다. 언더파 우승이 나온 해에는 비가 많이 와 그린이 매우 부드러웠다.

언뜻 보면 윙드풋이 다른 US오픈 코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 같지는 않다. 시네콕힐스 골프장의 강하고 어지러운 바닷바람, 베스페이지 블랙의 끝도 없는 러프 지대, 클래식 코스 특유의 페어웨이를 빽빽하게 둘러싼 숲 같은 건 윙드풋에 없다.

윙드풋이 난공불락이 된 핵심 요인은 그린이다. 그린의 평균 경사가 7도를 넘는다. 경사 3도 미만이 10%도 안 된다. 게다가 그 그린 안에 대담하거나 미세한 둔덕과 능선이 있다.

그린 안 각 구획은 유기체처럼 연결되지만,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직접 가기 어려운 곳도 많다. 18개 홀 그린이 다 독특해 마음을 놓으면 어려움에 빠진다. 잭 니클라우스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어려운 그린”, 콜린 몽고메리는 “오거스타 내셔널보다 빠르고 경사도 심하다”고 평했다.

골프 코스 이용료를 그린피로 부른다. 코스 관리위원회를 그린 위원회라고 한다. 그린은 골프장 전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퍼트가 골프의 핵심이다.

한국에 그린이 어려운 아시아나 골프장이 처음 생겼을 때 난리가 났다. 이 골프장 대표를 지낸 성기욱 전 프로골프협회 부회장은 “(골프장 이름이) 아시아나가 아니라 ‘다시 안 와’라고 하는 등 불평이 엄청났다”고 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회원들은 이불을 구겨놓은 듯한, 혹은 감자 칩 같은 그린에서 퍼트의 재미를 알게 됐다.

윙드풋은 골프 설계 황금기인 1920년대에 생겼다. 1929년 윙드풋에서 처음 US오픈이 열릴 때 한 기자가 설계자인 A.W. 틸링하스트에게 “러프를 기르고 핀을 그린 구석에 꽂는 등 골프장을 어렵게 세팅할 거냐”고 물었다.

틸링하스트는 “미스 윙드풋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거나 특별한 보석을 달지 않아도, 그냥 세수하고 소박한 드레스만 입고 파티에 가도 아름답다”고 대답했다. 그린은 코스의 얼굴이다. 윙드풋의 아름다운 그린을 볼 기회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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