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민규는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바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지금은 사라진 삼미 구단을 소재로 삼아 인천야구의 아릿한 추억을 되새김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는 유독 인천을 연고로 한 팀들이 줄줄이 사라진 비운이 서려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가 그런 팀들이다. 인천야구의 적통을 이은 SK 와이번스는 2000년 3월에 창단의 기치를 내건 이후 역대 연고 팀들의 역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모두 4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2007년을 기점으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고 품격 높은 구단으로 탈바꿈한 구단이 바로 와이번스였다.
그랬던 SK가 외국인 감독 힐만이 지휘한 2018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어 올해는 염경엽 감독의 와병과 겹쳐 팀이 지리멸렬, 참담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누구 말마따나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격 발탁한 ‘구원투수’가 바로 SK 1차 전성기를 앞장서 이끌었던 민경삼(57) 전 단장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민경삼 와이번스 신임 대표는 두산 베어스 김태룡 단장과 더불어 프로야구 선수 출신 단장 시대를 활짝 열었던 인물이다. 그의 개인 이력을 보면, 신일고, 고려대를 나와 MBC 청룡, LG 트윈스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LG 프런트와 코치를 거쳐 2001년 SK 구단으로 옮겨 운영팀장, 경영지원팀장, 운영본부장을 역임하며 초창기 SK 전력의 토대를 닦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최초로 야구단 단장, 사장’을 맡게 된 선구자이다.
그의 이력에서 주목할 부분은 1990년에는 선수로, 1994년에는 팀 매니저로 LG 구단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SK에서는 2007, 2008, 2010년 우승을 프런트에서 지켜봤고, 2016년 시즌 뒤에 외국인 감독 힐만을 영입, 2018년 우승 밑거름을 놓고 구단을 떠났다는 점이다. 그는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다.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 상벌위원, 총재 자문위원 등으로 구단 언저리에서 리그 판도를 지켜본 만큼 시야도 한층 넓어졌을 것이다.
그의 인사에 대해 주위에서 ‘구원투수’라고 지칭했으나 야구판의 ‘맥을 알고 그 맥을 제대로 짚을 줄 아는’ 보기 드문, 어찌 보면 그야말로 ‘선발 에이스’감이라는 게 일반의 평가다. 2006년 시즌 뒤 LG가 외면한 김재현(현 해설위원)을 FA 해제 첫날 꼭두새벽에 접촉, SK로 데려와 2007년 우승을 일궈낸 것(당시 김재현이 한국시리즈 MVP로 오름)은 그의 결단성과 기민함, 추진력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민경삼 신임 대표가 제아무리 ‘우승 제조 프런트’로 상찬을 받았다지만, ‘허물어진 성을 다시 쌓는 일’은 멀고 험한 작업이다. 역대 한 번 망가졌던 팀들이 다년간 하위권에서 허덕인 사례는 차고 넘친다.
팀 재건의 무거운 짐을 이고 중책을 맡은 민 대표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민경삼 대표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아직 10% 정도밖에 업무 파악이 안 됐다. 현재는 귀를 열어놓고 여러 현안에 대해 구단 안팎의 얘기를 듣고 있는 중”이라면서 “(대표로서) 여러 일을 해야 하지만, 당장 흐트러져 있는 팀을 추스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재로선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원점에서 재검토, 팀이 나아갈 방향타를 잡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민 대표는 팀 재건의 가장 화급한 현안으로 “코칭스태프의 재구성”을 꼽았다. 염경엽 감독이 질병으로 팀 지휘봉을 놓은 상황이어서 우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그와 관련, 민 대표는 “아직 염경엽 감독을 못 만났다. 건강 상태도 확인하고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고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큰 테두리에서 종합적으로 판단, 감독을 포함한 조직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데 초점이 모이고 있다. 염경엽 감독의 복귀이든, 아니면 새 감독 선임이든 찬찬히 살펴보고 시즌을 마친 다음에 결론을 내리겠다는 뜻인 듯하다.
코칭스태프 구성에 대해 그는 “스태프들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하느냐가 중요하다. 선수들이 변했다. 그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집단 지성’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인 변화에 맞춰야 한다. 코칭스태프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다변화해야 한다. 소통, 소통하지만 어떻게 선수들에게 접근하느냐의 문제다.”면서 코치진의 구성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와 별개로 민 대표는 팀 재건 과정에서 선수단 전력 보강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우그러지고 들어간 부분은 메우고 고쳐야 한다”면서 “자칫 (참전하겠다는 말을) 툭 던지면 후끈 달아오를 염려도 있겠지만 FA 시장도 들여다 보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다만 “예를 들기가 뭣하지만, 삼성 구단이 1년을 기다리지 않고 양의지에 앞서 강민호를 잡은 것이 팀에 도움이 됐는지를 (거울로) 볼 필요가 있다. 내부에서 키워야 할 선수가 있는데, FA 선수 때문에 자칫 그 선수의 앞길이 막혀 고사할 수가 있다”면서 “조심, 조심”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즉각 ‘참전’을 할지에 대해 팀 내 사정을 살펴본 후에 결정하겠다는, 다소 유보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키움 히어로즈 구단의 ‘손혁 감독의 느닷없는 경질 사태’에 대해서도 민 대표는 딱 부러지게 의견을 피력했다.
“단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야구단은) 저마다 제 롤(할 일)이 있다. 감독은 감독의 영역 있다. (자리를) 줬으면 맡겨놓아야 한다. 코치들도 파트 별로 나누어져 있듯이 감독이 팀 룰 안에서 ‘꼭지점 관리’를 한다는 개념으로 이끌면 된다. 소통은 하겠지만 소통이라는 것도 깊게 들어가면 안 된다. 프런트는 간섭이 아닌 도와주는 위치다. 예를 들어 선수단이 운항을 가는데 구단이 드론을 띄워 암초가 보이면 (감독에게) 알려주고,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를 해주는 식이다”
그의 견해는 확고하다. 그리고 민 대표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팀의 장기 침체다.
민 대표는 “육성? 아니다. 성적이 나면 육성은 따르는 것이다. 리모델링으로 가야지 리빌딩은 안 된다. 메이저리그야 원체 팜 자원이 풍부해 비싼 선수를 다 내보내고 새롭게 판을 짤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축을 박아 놓고 베스트 9, 10을, 선발(투수)을 정해놓고 끌어가야 한다. 명문 팀이라고 맨날 우승하는 것이 아니다. 상위권에서 놀다가 치고 올라가 우승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태형 두산 감독은 명장의 반열에 들었다”고 이례적인 평까지 내렸다.
팀이 한번 망가지면 재건은 힘들다. 민 대표는 “(팀 추락은) 간절한 마음이 없어져서 생긴다. 막연히 기다리는 것? 그러다가 훅 떨어진다.”고 강한 표현을 썼다. SK의 팀 재건은 민경삼 대표의 마음속에서 이미 시작됐다.
글/홍윤표 OSEN 고문
사진/SK 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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