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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익명 뒤 숨은 기자는 책임도 부끄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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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명 야구 기자단 투표의 맹점

한겨레

1985년 김시진, 장효조, 이만수 등 삼성 선수들을 제치고 정규리그 MVP로 선정된 김성한. 한겨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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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투표 때 일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전, 후기리그를 통합 우승하면서 김시진, 이만수, 장효조 등 특급 스타들을 배출했다. 김시진은 25승5패로 최다승과 승률 1위, 평균자책점 3위(2.00)를 기록했다. 장효조는 타격 1위(0.373), 최다안타 2위(129개), 타점 3위(65타점), 출루율 1위(0.467)의 성적을 올렸다. 이만수 또한 홈런 공동 1위(22개), 타점 1위(87타점)를 비롯해 타율 5위(0.322) 등의 성적을 남겼다. 팀 우승에 개인 성적까지 뛰어나 이들 중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최우수선수는 해태 김성한의 몫이었다. 수상자로 호명된 뒤 그 또한 당황할 정도로 예상외였다. 그의 성적은 홈런 공동 1위, 최다안타 1위(133개), 타점 2위(75타점)였다.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개표가 끝날 무렵 기자들 사이에서는 “뭔가 잘못됐다. 투표를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언론사 체육부에도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한국야구사>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삼성 선수단 표가 갈린 탓도 있고 “이상국 해태 홍보실장의 선거 운동을 통한 호남 선수에게 표를 던진 기자의 출신 성향이 작용하기도” 했다고 적혀 있다.

2001년 골든글러브 투표 때는 포수 최초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던 박경완(현대 유니콘스)이 우승 프리미엄이 있던 두산 베어스 홍성흔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당시 박경완의 성적은 타율 0.257, 24홈런 81타점 21도루였고, 홍성흔의 성적은 타율 0.267, 8홈런 48타점 9도루였다. 둘 성적 중 누가 나은 지 야구 초보 팬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투표권을 가진 기자단은 ‘기자 프렌들리’였던 홍성흔에게 표를 더 줬다. 홍성흔을 찍은 한 선배의 변은 “내가 안 찍어도 당연히 박경완이 될 줄 알았다”였다. ‘죽은 표’가 될 줄 알았던 표들이 모이고 모여 결과를 바꿔버린 셈이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출입 기자단에 투표권을 줬지만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 야구 기자단 투표다. 기자단 투표에서 엉뚱한 표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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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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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발표된 2020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 및 신인상도 그랬다.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와 각 지역 언론사 취재기자 112명이 무기명 투표를 했는데 타격 부문 4관왕에 오른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가 받은 1~5위표는 총 95표였다. 17명의 기자들은 그들 손에 쥔 5표 중 단 한 표도 로하스에게 주지 않았다.

신인왕 투표도 비슷했다. 2006년 류현진 이후 처음으로 고졸 신인 두 자릿수 승수(13승)를 올린 소형준(KT)은 총 105표를 받았다. 소형준은 토종 선발로는 박종훈(SK)과 함께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찬 19살 고졸 신인은 7명의 기자들에게 2~3위표마저 외면받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시즌동안 단 6타석(4타수 2안타)만 섰던 선수 또한 1위표 1표, 2위표 1표를 받은 것이다.

무기명 기자단 투표는 수 십년 동안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 투표 때는 약물 경력이 있는 선수(2018년 두산 김재환)에게 리그 최고 영예를 안겨줬으며 골든글러브 투표 때는 외국인 선수 배척 기조로 시즌 최우수선수(1998년 타이론 우즈)가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하는 촌극을 빚었다.

모든 투표에는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 투표의 결과는 기록으로, 역사로 남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를 통해 투명 사회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이제 야구 기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떳떳하게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익명 투표의 맹점을 이용해 감정적으로, 주관적으로 투표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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