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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살해 협박 마저 이겨냈던 '진정한 홈런 전설' 故 행크 애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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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의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운 뒤 기뻐하는 현역 시절 행크 애런의 모습. 사진=A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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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메이저리그 전설적인 홈런타자 행크 애런. 사진=A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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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에 도전했던 순간은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경호원 없이는 야구장을 떠날 수도 없었고 항상 호텔 방에서 따로 저녁 식사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도 늘 경호원에게 둘러 싸인 채 학교를 다녔다”

지난 23일 미국 애틀랜타 자택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전설의 홈런왕’ 고(故) 행크 애런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같이 얘기했다. 애런이 쏘아 올렸던 수많은 홈런은 빛나는 영광인 동시에 끔찍한 악몽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애런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선수였다. 1954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2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무려 755개의 홈런을 날렸다. 2007년 배리 본즈(764개)가 그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애런보다 홈런을 더 많이 선수는 없었다. 본즈가 금지약물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애런은 여전히 ‘진정한 홈런왕’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애런은 선수 시절 행복하지 못했다. ‘백인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흑인 선수가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특히 애런이 최전성기를 누렸던 1960~70년대는 더욱 그랬다. 엄청난 대기록을 세우고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가 쏟아졌다.

애런은 ‘백인의 우상’ 베이브 루스의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714개)에 다가설수록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엄청난 살해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더그아웃에서 애런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라는 섬뜩한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애런은 협박과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 어릴 적 찢어질 듯한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목화농장에서 일하면서 키운 손목 힘으로 홈런 숫자를 차근차근 늘려 갔다. 1974년 4월 9일 개인 통산 715번째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루스를 넘어 역사를 다시 썼다. 당시 애런은 홈런 기록을 수립한 뒤 “휴~ 이제 끝났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애런은 은퇴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이달 초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꺼리는 흑인들을 위해 시민 운동가들과 함께 직접 백신을 맞기도 했다.

애런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SNS를 통해 “애런이 베이스를 돌 때 기록만 좇지 않았다. 그는 편견의 벽을 깨는 것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애런은 미국의 영웅이었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애런은 기록상으로도 대단하지만 인성과 진실성은 더 대단했다”며 “그는 야구에 상징적인 존재였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는 인물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애런의 홈런 기록을 뛰어넘었던 본즈는 “나는 몇 차례 애런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영광을 누렸다”며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애런은 매우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그는 상징이자 전설,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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