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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조선구마사’, 방어 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도 창작의 자유일까”라는 글을 썼다.
위 글은 굳이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실무자적인 관점에서 쓴 글이었다. 수백억짜리 대형 프로젝트치고는 실무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안이한 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점을 논하려고 ‘실무자적 관점’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것.
글이 길어져서 생략했는데 원래 위의 글에는 ‘창작가로서 관점’ 역시 넣으려고 했고, 이번 글이 바로 그 창작자의 눈을 가지고 ‘조선구마사’에 대해 다루는 글이다.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부분은 단순하다.
“동북공정 이슈와 별개로, ‘창작자’로서는 잘했는가”
그중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파트는 ‘캐릭터 붕괴’이다.
창작자로서 ‘캐릭터 붕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거나 없었다면 그 나름대로도 문제고, 만약 잘 알고 있었는데 그랬다면 두 말이 필요 없다.
‘캐릭터 붕괴’, ‘설정 붕괴’는 서사가 충분히 쌓인 작품, 인물을 다룰 때 매우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는 꼭 실존 인물 다룰 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상 인물 다룰 때도 중요하다.
이 부분을 소홀히 여겼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작품성 후퇴고 나머지 하나는 엄청난 비판과 비난이다.
수십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영화에서 멋진 랜딩을 선보여온 배트맨이 랜딩 한번 잘못하니 ‘저스티스리그’ 제작진은 엄청난 비판과 조롱에 시달렸고, 포켓몬리그 유경험자이자 (이벤트 대회일지언정) 우승 경력도 가지고 있는 지우가 포켓몬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얼간이로 변하니(베스트위시) 애니 제작진 역시 무수한 비판에 시달렸다.
우리나라 작품 중 어이없는 설정 붕괴, 캐릭터 붕괴로 엄청난 비판을 받은 작품하면 영화 ‘나랏말싸미’가 떠오르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 역시 세종대왕이 등장한다.
각색을 하고 재해석을 한다고 해도 핵심적으로 붕괴해서는 안 되는 설정,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이야기. 이 룰을 깨면서도 소비자들을 납득시키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이너한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작품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방송 3사에서 송출하는 수백억짜리 대형 프로젝트라면 이런 부분에 대해 당연히 조심했어야 하는데 SBS와 ‘조선구마사’ 제작진 모두 매우 조심성이 없었다.
그 결과 발생한 일은 엄청난 반발.
최근 전주이씨 종친회는 “‘조선구마사’ 내용은 태종, 양녕대군, 충녕대군 등 역사의 실존인 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왜곡해 방영했다”라며 “대다수의 국민들과 세계인들이 조선왕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전주이씨 종친회 측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조선 건국의 중요 인물인 태종을 두고 백성을 학살하는 임금으로 묘사한 것은 유감”이라며 “아무리 실존 인물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했고 이를 사전에 고지했다지만 용납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또한 동주(철원)최씨 대종회는 “고려 충신 최영 장군의 후손인 동주(철원)최씨 대종회는 공영방송 SBS에서 2021년 3월 23일 '조선구마사' 2회분을 방영하면서 최영장군을 폄훼 · 모독하는 대사를 사용하여 후손들과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SBS에게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합니다”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동주(철원)최씨 대종회 측은 “그 목사가 충신 최영 장군의 먼 일가 친척이라는 말도 있던디, 그랴도 되겄습니까?”, “충신? 하이고... 충신이 다 얼어 죽어 자빠졌다니? 그 고려 개발라 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 해놓고서리... 개, 백정새끼라고 했지비아니?” 등의 대사를 문제 삼았다.
피로 권력을 잡았지만 백성에게는 좋은 임금인 태종의 근본적인 캐릭터성, ‘고려 최후의 충신’ 최영의 근본적인 캐릭터성을 단 2화 만에 훼손시킨 것.
팩션을 지향하는 무수한 정통 사극들도 받아본 적 없는 반발을 무려 ‘퓨전 사극’이 받은 셈으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선구마사’는 다른 의미에서 역사적인 작품이 됐다.
사실, ‘조선구마사’식 캐릭터 표현은 창작자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방식이다. 실존 인물, 실제 역사를 다룬 작품을 다룰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캐릭터&설정 비틀기가 ‘내려치기형 비틀기’이기 때문.
‘삼국지’로 예를 들면 충분한 연구 없이 만들어졌던 ‘유비 무능론’ 기반 작품들이 딱 이 예에 부합한다. “유비는 운 좋게 인재빨로 황제 먹은 우유부단한 무능 군주다”라고 말하면 있어 보이던 시절이 과거에 있었는데, 삼국지 정사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그런 소리 잘못하면 바로 역공 맞는다.
박계옥 작가는 최근 사과문을 내고 “저의 사려 깊지 못한 글쓰기로 지난 며칠 동안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드라마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맨 앞에 서 있는 작가로서 지난 잘못들을 거울삼아 더 좋은 이야기를 보여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고 미숙한 판단으로 오히려 시청자 여러분들께 분노와 피로감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역사 속 큰 족적을 남기셨던 조선의 건국 영웅 분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한 점에 대해서도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청자분들께서 염려하시고 우려하셨던 의도적인 역사왜곡은 추호도 의도한 적이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남긴 점 역시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역사왜곡의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면, 메인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은 창작자로서 공부부터 다시 하는 것이 올바른 행보라고 보인다.
어째서 실존 인물, 실제 역사를 다룰 때 ‘충분한 연구’가 필요한 것인지, 어째서 실존 인물-실제 역사-실제 문화유산에 대해 다룰 때 ‘존중’이 필요한 것인지, 어째서 창작자가 창작을 할 때 ‘캐릭터 붕괴’를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tvX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 사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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