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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송지훈의 축구·공·감'

[송지훈의 축구·공·감] 맘에 들지 않는 건…손인가 VAR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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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격 반칙에 쓰러진 손흥민

맨유 카바니 득점 VAR로 무효화

잉글랜드 축구계 거센 찬반 논란

VAR에 대한 불만 폭발 측면도

중앙일보

맨유 맥토미니(오른쪽)가 팔을 휘둘러 손흥민의 얼굴을 가격하고 있다. 이 상황은 VAR을 통해 반칙으로 판명됐다. [사진 SPOTV 캡처]




손흥민(29·토트넘)을 둘러싸고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불붙은 논란이 식을 줄 모른다. 전문가와 미디어, 팬까지 몰려 리그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2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토트넘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EPL 31라운드 경기였다. 전반 36분 드리블하던 맨유의 스콧 맥토미니가 팔을 휘둘러 손흥민 얼굴을 쳤다.

얼굴을 감싸쥔 손흥민이 그라운드에 쓰러진 사이, 세 번의 패스를 거쳐 맨유 에딘손 카바니가 골을 넣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을 통해 맥토미니의 파울이 선언됐고, 골은 무효가 됐다.

해당 상황에 대해 영국 현지의 다수 언론과 축구 전문가는 ‘맥토미니의 반칙이 맞다’는 입장이다. 영국 프로경기심판기구(PGMOL)는 “맥토미니의 팔 사용이 부자연스러웠다”며 득점 취소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선언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리얄 토머스 기자는 14일 소셜미디어에 “(맥토미니의 행동은) 명백한 파울이다. 해당 장면 직후 골이 나왔기 때문에, VAR을 활용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썼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르면 VAR은 ▶골 ▶페널티킥 ▶퇴장 ▶제재 대상 선수 불분명 등 네 가지 상황에 한해 적용한다.

그런데 일각에서 ‘손흥민의 액션이 과했다’는 주장이 끊임 없이 흘러나온다. 애스턴 빌라의 레전드 가브리엘 아그본라허는 13일 “(손흥민이) 주먹으로 맞았다면 몰라도, 그저 손가락이었다. 그 장면 때문에 VAR까지 돌려보며 골을 취소한 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손흥민에 대해 “더 남자다워야 한다. 그렇게 오래 누워있으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BBC 해설위원인 맨유 레전드 로비 새비지도 “손흥민은 할리우드 액션에 대해 부끄러워해야한다. 그건 절대 파울이 아니었다. 이 논쟁은 끝났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토트넘 출신인 저메인 제나스도 “파울이 아니었다. 고의성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맥토미니 손을 들어줬다.

요컨대 손흥민의 ‘다이빙’(할리우드 액션)을 의심하는 쪽은 “손흥민이 맥토미니 팔에 맞았어도 휘슬을 불 정도는 아니다. VAR를 노리고 고의로 아픈 척 연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VAR 대중화에 따른 축구계 일각의 불만이 손흥민 사례를 기폭제 삼아 터져나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축구에서 VAR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VAR 적용 대회와 분야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VAR 자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심판의 눈이 아닌 카메라 렌즈에 판정을 맡기는 것 자체가 축구라는 스포츠의 중요한 무언가를 훼손하고 있다는 거다.

축구는 각종 프로 스포츠 가운데서도 '과학의 눈'을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보수적인 종목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최고 권위 대회인 월드컵 본선에 VAR 시스템을 적용한 게 불과 3년 전인 2018년 러시아 대회부터다. '축구 종가'를 자처하는 잉글랜드는 한술 더 뜬다. EPL에서는 'VAR 활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경기 흐름이 자주 끊긴다'는 이유를 들어 "VAR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터져나온다.

이번 논란의 본질이 VAR에 대한 불만이라면, 그 분노를 특정 선수에게 쏟아내는 것 또한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아그본라허가 사용한 ‘남자다움’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더욱 껄끄럽게 느껴진다. 편견과 차별이 담긴 단어가 아니길 바란다.

손흥민은 상대에게 위협적인 공격수다. 그렇다고 그라운드에서 남성미를 어필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는 경기 중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쉽거나 억울할 때 울었다. 파울을 당해 쓰러져 오래 일어나지 못했다고, 눈물을 보일 만큼 감정 표현에 솔직했다고, ‘남자다움’ 같은 용어를 동원해 누군가를 재단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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