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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맥주 쏠게, 사우나 가자” 아저씨 리더십에 대한항공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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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통합 우승 이끈 산틸리 감독

남자 프로배구 첫 외국인 사령탑 로베르토 산틸리(56·이탈리아) 대한항공 감독은 짧으면서도 강렬했던 1년을 보냈다. 그는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에 팀에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안겼다. 유럽식 훈련 시스템을 도입해 팀 체질도 바꿨다. 다혈질인 그는 올 시즌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상대 팀 감독, 선수와 신경전을 벌여 논란도 됐다. 그는 “한국 리그에서 다른 모습도 가능하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7일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우리카드를 꺾고 통합 우승을 달성한 대한항공의 로베르토 산틸리(왼쪽) 감독이 선수들과 포옹하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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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구 무대 연착륙은 쉽지 않았다. 그는 훈련 전 몸 푸는 시간을 기존 20분에서 5분으로 줄이는 대신 곧바로 팀을 나눠 2~3개의 공으로 ‘두 차례(정식 배구 경기는 3번) 연결로 넘기기’ ‘후위 공격만 하기’ 등 게임을 했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겨야 한다”며 선수들을 경쟁시켰다. 고참 선수들은 몸을 제대로 안 풀고 뛰면 다칠 수 있다며 불만이었지만, 산틸리 감독은 “유럽 방식”이라며 설득했다. 임동혁(22·라이트) 등 젊은 선수들은 실전과 비슷한 다양한 ‘미니 게임’에 재미를 느꼈고, 선배들과 경쟁해 좋은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산틸리 감독은 또 훈련할 때 주전 선수들을 한 팀에 넣지 않았다. 국가대표 레프트 ‘듀오’ 곽승석(33)과 정지석(26)은 항상 팀이 달랐다. 주전 선수와 뒤섞여 같은 훈련을 소화한 비주전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성장했다. 대한항공이 어떤 선수가 나와도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한 배경이다.

산틸리 감독은 지루한 개인 훈련을 할 땐 ‘맥주 내기’로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는 정지석에게 스파이크 서브를 할 때 올리는 공이 일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높이와 길이로 공을 던져 3~4m 앞 바구니에 넣는 훈련을 시켰다. 그러면서 공 10개 중 7개를 넣으면 자신이 맥주를 산다는 식의 내기를 했다. 정지석은 올 시즌 정규리그 서브 에이스 2위(세트당 0.54개)에 올랐고,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산틸리 감독은 훈련할 땐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코트만 떠나면 숙소 내 2~3명이 들어가는 사우나에 같이 가자고 하는 ‘동네 아저씨’였다. 한국 정서에 익숙한 고참 선수들은 못 받아들였지만, 프로 1~2년 차 선수들은 ‘로베르토’라고 부르며 같이 땀을 뺐다. 산틸리 감독이 만든 수평적인 팀 문화 아래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성장했다. 산틸리 감독은 지난 17일 챔피언 결정전(5전 3선승제) 5차전에서 우리카드를 3대1로 꺾고 우승한 후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승해 행복하다”며 “믿고 따라준 선수와 코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달 말 계약 기간이 끝나는 그는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이미 해외 리그에서 사령탑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다음 시즌에도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하고 3~4명의 후보와 접촉 중이다.

[송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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