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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사막에 두고 떠나는 LPGA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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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8번 홀 그린 포피의 호수 옆에 있는 다이나 쇼어의 동상.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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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투어 첫 메이저대회 쉐브론 챔피언십이 31일 개막한다. 대회는 지난해까지는 ANA 인스퍼레이션이라고 불렸고, 그 전엔 나비스코 챔피언십이었다. 그 전에도 이름이 여러 번 바뀌어 혼란스럽다. 그래서 미국 골프계에선 비공식적으로 ‘더 다이나’라 부른다.

50년 전 1972년 대회 창립 때부터 호스트를 한 배우이자 가수인 다이나 쇼어를 기려서다. 첫 대회 우승자 제인 블라록은 “당시 다이나 쇼어는 현재의 윈프라 오프라 같은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했다. 18번 홀 그린 옆에 다이나 쇼어의 동상이 있다.

다이나는 여자 골프의 혁신이었다. 출범 시 상금이 기존 대회의 5배나 됐고, 조명받지 못하던 여자 골프 선수들을 특별하게 대우했다.

다이나는 캘리포니아 주 사막인 팜스프링스 미션 힐스 골프장에서만 열렸다. 코스를 매년 바꾸는 다른 메이저보다 전통이 쌓였고 사막의 태양 같은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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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호수의 여인이 된 박지은. [중앙포토]


한국 골프의 추억도 이 곳에 쌓였다. 박지은은 2004년 한국인으론 처음 호수로 뛰어들었다. 박세리는 2007년 우승 기회 마지막 홀에서 공을 호수에 빠뜨렸고, 결국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12년 김인경이 마지막 홀에서 30cm 우승 퍼트를 놓치고 당황해하는 표정은 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2017년 4타 차 선두를 달리던 렉시 톰슨이 4벌타를 받는 혼란 속에서 유소연이 우승했다. 캐디와 포옹하는 유소연, 쓸쓸히 그린을 떠나는 톰슨의 모습은 대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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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지막 홀에서 짧은 퍼트를 놓친 김인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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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박인비의 3연속 메이저 우승의 시작, 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의 첫 메이저 우승도 미션힐스였다. 이미림은 2020년 최종라운드 칩인 이글 등 칩샷 3개를 홀인 시키면서 우승했다.

로레나 오초아가 멕시코 마리아치 밴드의 흥겨운 연주 속에서 물에 뛰어든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청야니는 2012년 우승 이글 퍼트가 홀을 살짝 스치자 아쉬움에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는데 이후 우승을 못 했다.

미션힐스에서 경기할 때마다 회자했을 이런 이야기들이 사라지게 된다. LPGA는 새 스폰서를 영입하면서 내년 대회 장소와 일정을 바꿨다.

세계에서 가장 큰 레즈비언 축제와도 이별이다. 여성 동성애자들은 1991년 LPGA 투어의 큰 대회 기간 중 팜스프링스에서 모여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골프 대회 이름을 따 이 축제를 ‘더 다이나’라 명명했다. 페스티벌은 LPGA 투어 측에서 이미지 관리를 위해 거리를 둬 멀어지고 있었는데, 이제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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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마리아치 밴드의 축하 연주 속에서 포피의 호수로 점프하는 로레나 오초아.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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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대회 '더 다이나'는 남자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를 따라 하려 했다. 마스터스 직전 주에 열어 마스터스 오픈 게임 느낌이 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라는 점, 흰색 점프수트 캐디복, 100명 이내의 엄선된 선수, 그린재킷 세리머니 비슷한 호수의 여인 세리머니 등으로 마스터스 느낌을 냈다.

마스터스는 2회 대회 우승자 진 사라센의 알바트로스를 ‘전 세계에 울린 함성’이라고 과장했다. 더 다이나도 호수의 여인을 두고 ‘전 세계에 울린 첨벙 소리’라고 했다.

그러나 마스터스를 따라 했기 때문에 전통을 잃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2019년 오거스타 내셔널이 ‘더 다이나’ 기간 중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개최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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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벌타를 받고 우승을 놓친 렉시 톰슨.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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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선수들이 “오거스타에서 라운드하는 건 최고의 영광”이라며 미션 힐스를 외면했다.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도 오거스타 아마추어 챔피언십으로 쏠렸다. 시청자 수가 5배나 차이 났다.

결국 더 다이나는 마스터스를 피해 5월로 철수한다. 올해 우승자가 포피의 호수로 점프하는 마지막 선수가 된다. LPGA는 새로운 곳에서 새 전통을 만들겠지만 사막에 덩그러니 남을 전통과 추억은 아쉽다. 다시 쌓기 어려울 것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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