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통제·밤샘 방송 예삿일…분 단위까지 쪼개진 강행군 연속
상당수 아이돌 공황장애 등 토로…무리한 일정에 사고도 빈발
"BTS, 20여 년 이어진 아이돌 시스템에 반기…혁신적 변화 절실"
팀 활동 잠정 중단 선언한 BTS |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김예나 기자 =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해야 하니까, 아침에 나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며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어요." (R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4일 '정체성 회복' 등을 이유로 그룹 음악 활동 잠정 중단이라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최정상 월드스타마저 지치게 만든 K팝 아이돌 시스템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리더 RM은 전날 유튜브 영상을 통해 현행 K팝 시스템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K팝과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늘 보낸 다음에 그것들이 숙성해서 내 것으로 나와야 하는데 10년을 방탄소년단을 하며 물리적인 스케줄을 하다 보니 내가 숙성이 안 되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또 "언제부터인가 랩 번안하는 기계가 됐다"며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충분히 한 다음에 돌아오고 싶은데 놔두지를 않더라"고 작심한 듯 말했다.
팀의 맏형 진 역시 "그룹 활동을 하다 보니 너희(멤버들)가 말한 것처럼 기계가 돼 버린 느낌"이라며 "내 취미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다"고 거들었다.
글로벌 톱 아티스트인 이들조차도 숙소 단체생활, 칼군무 등으로 대표되는 일사불란한 군대식 아이돌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은 최근 신곡 '옛 투 컴'(Yet To Come)의 음악 프로그램 사전 녹화를 새벽 1시 넘어서 진행했다. 헤어와 메이크업 등을 위한 시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날밤을 '꼬박' 새웠다는 이야기다.
진은 사전녹화 이후인 지난 12일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통해 "하루 밤새웠다고 몸살? 이게 나이를 먹는 건가"라며 팬을 만난 기쁨과 동시에 피로감을 드러낸 바 있다.
흔히 차원이 다를 것으로 생각하는 방탄소년단의 현실이 이 정도라면 다른 K팝 아이돌이 겪는 고충은 훨씬 엄혹할 수밖에 없다.
가요 기획사가 주도적으로 신인 자원을 발굴해 혹독한 연습이 수반되는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에 이르기까지, K팝 '꿈나무'들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K팝 시장 특유의 숙소 생활로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 단위까지 쪼개진 숨 막히는 일정 탓에 제대로 먹거나 자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신인 시절을 거쳐 큰 성공을 거둔다 해도 어지간한 큰 기획사가 아니라면 유명 가수 한두 팀의 매출이 곧 회사 전체 수익과 직결되다 보니 원하는 때 쉬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렵다.
솔로 활동 나서는 BTS |
연 매출(이하 연결 기준) 1조원에 자산 규모 4조원을 넘는 국내 1위 가요 기획사 하이브조차 방탄소년단의 비중이 절대적이기에 이들이 '쉼표' 하나를 찍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하이브를 비롯해 SM·YG·JYP 등 기존 대형 기획사는 물론, 마마무 소속사로 잘 알려진 RBW까지 증시에 상장하면서 아티스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가수의 성과가 곧 주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15일 방탄소년단의 그룹 음악 활동 잠정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소속사 하이브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25%가량 곤두박질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리한 활동 등으로 다치거나 공황장애를 앓는 등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돌도 적지 않다.
걸그룹 트와이스 미나는 2019년 심리적 긴장과 불안감 등을 호소하며 한동안 콘서트 일정에서 빠졌고, 이듬해인 2020년에는 정연 역시 불안 증세로 휴식기를 가졌다.
위클리 신지윤은 2020년 데뷔 이래 불안 증세로 휴식과 활동 재개를 반복하다 이달 결국 의료진과 논의 끝에 그룹을 탈퇴했다.
레드벨벳 웬디는 2019년 SBS '가요대전' 리허설 도중 무대 아래로 떨어져 골절 등 큰 부상을 당했고, 펜타곤 여원은 올해 2월 개인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특히 2014년 교통사고로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멤버 2명이 유명을 달리한 사건은 8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팬 사이에 안타까운 비극으로 남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은 본인이 음악을 만들고, 거기에 생각과 감정을 넣는 '아티스트'로 성공을 거뒀다"며 "그런데 K팝 시스템은 여전히 연습생, 데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7∼8년 활동 같은 과거 행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적·신체적 고갈을 방지하고자 지금의 상태를 모두 비워내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채우는 방식으로 K팝 시스템이 발전해야 한다"며 "방탄소년단은 20여 년 유지된 K팝 아이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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