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이정후가 지난 1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 경기 3회말 2사1,2루 1타점 안타를 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고척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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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타구질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떻게 안타 하나는 나온다. 쓰레기 더 열심히 주우면서 운도 따르기를 바란다.”

타자에게 슬럼프는 피할 수 없는 악재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도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몇 차례 슬럼프와 마주한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고, 작은 부상이 타격 밸런스 붕괴로 이어진다. 피로가 누적돼 배트 스피드가 줄고 타격 메커닉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나 둘 어긋나면서 적신호가 켜지는데 멘탈까지 무너지면 그야말로 바닥을 찍는다.

남부러울 게 없어보이는 키움 이정후(24)도 그렇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슬럼프를 겪는다. 올시즌 첫 번째 슬럼프는 5월 중순 일주일 가량이었다. 5월 17일 창원 NC전부터 24일 잠실 LG전까지 타율 0.222(18타수 4안타)로 고전했다. 타율보다 아쉽게 다가온 것은 득점권 부진이었다. 이 기간 득점권에서 6타수 1안타에 그쳤다. 4월 타율 0.323 OPS(출루율+장타율) 0.898로 가볍게 스타트를 끊었는데 시즌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아쉬워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이정후는 지난달 24일 잠실 LG전을 마친 후 “선수의 성적은 정규시즌 6개월 동안 144경기를 치러야 나오는 것”이라며 “그래도 작년에 안 좋았을 때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4, 5경기 연속으로 무안타에 그친 적도 있었다. 작년처럼 타격 메커닉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도 아니다. 타구질은 마음에 안들지만 어떻게 안타 하나 씩은 나온다. 안 좋을 때 이정도 나오는 것에 위안을 삼는 게 괜찮을 것 같다. 그저 쓰레기 열심히 주우면서 운도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운도 필요하다. “쓰레기 열심히 줍겠다”는 말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빗맞은 타구도 안타가 되고 잘 맞은 타구도 아웃이 된다.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운을 바란다는 얘기다. 이정후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투수의 공을 보고 스윙하는 순간까지다. 공이 맞은 순간 이후부터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야구의 본질을 설명했다.

키움 이정후가 지난 1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 경기 3회말 2사1,2루 1타점 좌전안타를 치고 있다. 고척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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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썼고 무너지지 않았다. 이후 결과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정후는 5월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28경기에서 타율 0.398 OPS 1.210으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기간 홈런 9개를 쏘아올리며 홈런 부문 3위(13개)로 도악했다. 지난 26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홈런포를 터뜨렸다. 짧고 강렬한 배트플립으로 이전 4타수 무안타의 아쉬움을 던져버렸다.

최근 상승세를 앞세워 타격 지표 비율 부문에서 최정상에 올랐다. 타율 1위(0.351), 출루율 1위(0.425), 장타율 1위(0.572)다. 당연히 OPS 부문에서도 0.997로 정상에 올랐다. 논란의 여지가 없이 MVP 레이스 1위에 자리했다.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 스탯티즈 참조) 4.74로 이 또한 1위다.

이제 시즌 반환점을 돌고 있는데 이정후의 기량 향상은 현재진행형이다. 매년 한 단계씩 진화를 이뤘고 이제는 정상을 응시한다. MVP를 수상한다면 아버지 이종범 LG 2군 감독과 같은 나이에 부자 MVP를 석권한다. 이 감독은 만 24세였던 1994년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당해 이 감독은 타율 0.393 19홈런 84도루 OPS 1.033 WAR 11.77로 역사에 굵직하게 남은 시즌을 보낸 바 있다.

해태 타이거즈 현역 선수 시절 이종범 감독. |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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