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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라리가, 뒤늦게 '인종차별 몰아내자' 플래카드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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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니, 교체되는 이강인 등 강하게 밀쳐 경고 받아
'비니시우스 사태'로 발렌시아 예의주시 속 부적절
라리가 회장 "6개월 안에 문제 해결할 수도" 황당 주장
한국일보

26일 스페인 마요르카의 에스타디 마요르카 손 모익스에서 2022~23시즌 라리가 36라운드 마요르카와 발렌시아 경기 전 선수들이 인종차별, 축구에서 몰아내자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맨 왼쪽에 마요르카의 이강인도 서 있다. 스포티비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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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3·레알 마드리드)로 터진 인종차별 문제를 뒤늦게 반성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또한 비니시우스를 비판했던 하비에르 테바스 라리가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6개월 안에 인종차별 문제 해결하겠다"는 황당 주장을 펼쳐 입지는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26일(한국시간) 스페인 마요르카의 에스타디 마요르카 손 모익스에서 2022~23시즌 라리가 36라운드 마요르카와 발렌시아 경기 전 선수들은 붉은색의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그라운드에 섰다. 플래카드에는 "인종차별, 축구에서 몰아내자"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날 선발 출전한 이강인(22·미요르카)을 비롯해 양 팀 선수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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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022~23시즌 라리가 36라운드 바예카노와 홈경기 전 동료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등번호 '20'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서 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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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레알 마드리드와 바예카노 경기에서도 진풍경이 벌어졌다. 부상으로 경기에 결장한 비니시우스 대신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모두 그의 등번호 '20'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팬들은 "우리가 비니시우스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비니시우스에게 지지를 표현했다. 양 팀 선수들은 붉은 플래카드를 들고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라리가가 뒤늦게 플래카드 행사를 준비한 건 지난 주말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경기 중 발생한 초유의 사태 때문이다. 당시 발렌시아 홈경기에 나선 비니시우스는 관중들의 "원숭이" "죽어라" 등 인종차별 외침 속에 결국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다. 경기는 중단됐고 비니시우스는 관중들과 설전을 벌였으며, 상대 선수와 언쟁하는 과정에서 심판에 의해 퇴장까지 당했다. 이래저래 상처 입은 비니시우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페인과 라리가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꼬집으며 발렌시아 관중 등 자신을 향한 인종차별 구호가 담긴 영상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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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 레알 마드리드 홈 경기장에 '우리가 비니시우스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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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요르카와 발렌시아 경기는 전 세계 팬들의 주목받았다. 인종차별 논란에도 레알 마드리드전(1-0 승)에서 승점 3점을 챙긴 발렌시아가 마요르카를 이기고 강등권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발렌시아는 오히려 비니시우스를 비방해 더욱 질타를 받았다. 하비에르 솔리스 대변인이 "비니시우스는 발렌시아 관중 모두를 인종차별자로 매도했다"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려 '2부 강등'을 표현한 비니시우스를 탓해서다.

결국 발렌시아는 마요르카에 0-1로 패해 강등권 위기로 내몰렸다. 발렌시아(11승 7무 18패)는 승점 40으로 13위에 머물러 18위 레알 바야돌리드(승점 38)와 승점 2점차 밖에 나지 않아 남은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반면 마요르카는 승점 47로 11위에 안착, 잔류를 확정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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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르카의 이강인이 26일 스페인 마요르카의 에스타디 마요르카 손 모익스에서 열린 2022~23시즌 라리가 36라운드 발렌시아와 홈경기에서 후반 베다트 무리키에서 왼발 크로스를 날리고 있다. 이강인의 패스를 받은 무리키는 헤더골로 연결해 팀을 1-0 승리로 이끌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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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는 플래카드만 들었을 뿐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날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리그 5도움을 기록한 이강인은 후반 38분 교체 아웃됐다. 이 과정에서 에딘손 카바니는 '빨리 나가라'고 이강인의 등을 두 번이나 밀쳐 옐로카드를 받았다. 인종차별 역풍으로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이강인은 그런 와중에도 웃어 보이며 흔들리지 않았다.

최근 마요르카가 공식 SNS에 올린 이강인 관련 영상도 도마에 올랐다.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 등 동료 선수가 훈련 도중 아무렇지도 않게 이강인을 '치노(chino)'라고 부르는 영상인데, 마요르카 역시 이 부분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해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치노는 중국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주로 북중미와 남미에서 동양인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한국 팬들은 "스페인이 인종차별 자체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6개월 안에 인종차별 줄일 수 있다"...라리가 회장, 황당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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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테바스(오른쪽)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회장이 최근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레알 마드리드)와 관련해 인종차별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테바스 회장 뒤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마드리드=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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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에 국제적인 항의가 빗발치는 와중에 하비에르 테바스 라리가 회장의 발언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는 비니시우스가 인종차별 문제를 SNS로 호소할 때 "라리가에서 인종차별은 극히 드문 일이다. 라리가는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말해 기름을 부었다.

테바스 회장의 발언은 국제사회에 라리가의 인종차별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는 꼴이 됐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등이 비니시우스를 지지하며 연대 메시지를 전하자, 테바스 회장은 25일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더 큰 권한을 가진다면 몇 달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테바스 회장은 "이 문제를 100%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도와 같은 범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것과 이유"라며 "하지만 우린 인종차별 행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필요한 권한이 주어진다면 6~7개월 안에 인종차별을 몰아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니시우스가 경기 출전을 거부한다면 그를 지원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테바스 회장은 "만약 비니시우스가 (인종차별로) 영향을 받는다고 느낀다면, 난 그가 경기장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가 경기에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권장하겠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토해냈다. 결국 경기장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정책을 강화하려는 게 아닌 선수가 알아서 피하라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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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테바스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회장이 최근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레알 마드리드)와 관련한 인종차별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테바스 회장 뒤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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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라리가 측과 달리 스페인왕립축구협회는 라리가 내 인종차별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더욱 비교되고 있다. 비니시우스를 퇴장시키도록 한 비디오판독(VAR) 감독 등에 징계를 내렸던 협회는 발렌시아에도 5경기 동안 관중석 부분 폐쇄 처분과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벌금도 부과했다. 인종차별 문제에 발벗고 나서며 라리가와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테바스 회장은 사과에도 진정성이 없었다. 그는 "브라질은 내가 가진 메시지와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비니시우스를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발언과 더불어 브라질 정부가 리우데자네이루 명물이자 상징인 예수상의 조명을 끄며 비니시우스에 지지를 표현한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테바스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했다면 사과해야 한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서 "비니시우스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외치는) 라리가의 영상을 (SNS에) 올렸기에 상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꾸준히 인종차별자들을 비난했다. 우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될 비니시우스 같은 선수를 향한 무분별한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이 수그러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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