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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배구 황제 김연경

김연경 없는 한국 배구와 ‘얻어걸린 10년’ [이준희 기자의 ‘여기 V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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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김다인(왼쪽)과 이다현이 1일 경기도 수원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중국과 경기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대한배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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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결과였다. 2년 연속 전패(24패)와 꼴찌(16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세자르 곤살레스 감독 부임 뒤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거둔 성적이다. 김연경(흥국생명) 등 핵심 선수들이 이탈한 뒤 세대교체를 거치며 부진을 전망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더욱 뼈아팠던 것은 다른 아시아 나라가 거둔 성적이다. 선수들은 유럽·남미 선수들과 키 차이에서 오는 높이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정작 신장에서 별 차이가 없는 일본은 7위(7승), 타이는 14위(2승)로 이번 대회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보였다. 중국도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1위 미국을 3-2로 누르며 대회 5위(8승)에 올랐다.

세자르 감독은 2일 수원에서 대회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이게 한국 여자배구가 마주한 현실”이라고 했다. 세자르 감독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어쨌든 그가 한 말은 뼈아픈 진실을 담고 있었다. 김연경을 비롯한 황금세대가 빠진 지금, 한국은 세계무대 경쟁력이 없다.

그간 올림픽에서 선전하며 배구 인기를 주도했던 여자배구마저 당장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이 사실상 어렵다. 위기를 느낀 한국배구연맹(KOVO)은 배구 세계화를 위한 7대 과제를 제시했다. 주로 국외팀과 교류 확대 및 유망주 국외 임대 등 세계화 전략이다. 필요한 조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2021년 도쿄올림픽 취재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인 삶 속엔 스포츠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었다. 누구를 만나도 학창시절 뛰었던 운동팀 하나 정도는 있었다. 경기도 안산 이주여성 배구단을 찾았을 때도 타이 출신 단원은 학생 때 배구팀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있는 운동부도 없애고, 심지어 운동장도 없애는 한국의 ‘지금’과는 달랐다. 세계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 버블이 터진 뒤 일본에서 이어진 장기 침체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 스포츠 현실을 보며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2000년대 누린 스포츠 영광의 시기는 ‘얻어걸린 10년’이 아니었을까.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가 겹치며 누렸던 스포츠 황금기가 우리 실력인 양 자만했고, 스포츠가 자리 잡을 땅을 일구는 데는 소홀했던 건 아닐까. 심지어 여전히 그때 그 방법이야말로 유일한 답이라고 믿는 게 아닐까.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참사 뒤 야구계가 알루미늄 배트와 나무 배트 논쟁으로 뜨거울 때, 야구 학부모들이 모이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누군가 글을 썼다. “정말 웃긴다. 아이가 야구한다고 했을 때 그(배트) 문제로 고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느냐. 당장 야구공 한 번 만져보고, 배트 한 번 쥐어볼 기회도 없는 나라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비단 야구만의 문제일까.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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