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서정환 기자] ‘KCC 레전드’ 이상민(51) 코치의 전주 복귀는 영원히 무산됐다.
KBL은 30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KCC의 연고지 변경을 승인했다. 2001년 대전 현대를 인수하며 전주에 정착한 KCC는 22년 만에 전주를 떠나 부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프로농구 인기가 높은 전주이기에 더 충격적인 소식이다. KCC는 꾸준한 투자로 전주에서 정규리그 우승 2회와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를 차지했다. 전주실내체육관은 농구열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었다. 전주출신 치고 농구장에서 보낸 추억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만큼 지역에 밀착했던 농구단이 하루아침에 떠났다.
프로농구 최고 인기스타 이상민 코치의 전주복귀도 무산됐다. 1995년 현대전자에 입단한 이상민은 실업농구 시절부터 한국농구 최고스타였다. 대전현대 시절부터 이미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프전 우승 2회를 차지한 이상민은 KCC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대전현대를 인수한 KCC가 전주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상민 코치를 보유했던 이유가 컸다.
이상민 코치는 2004년 KCC에 첫 챔프전 우승을 안기며 영원한 레전드에 등극했다. 당시 KCC는 전주시내에서 카퍼레이드까지 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지금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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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의 상징이었던 이상민 코치는 2007년 원치 않는 이유로 ‘라이벌’ 삼성으로 이적했다. FA 임재현과 서장훈이 영입되는 과정에서 이상민이 보호선수명단에서 빠졌다. 삼성이 보상선수로 이상민을 지명하며 그는 타의에 의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2010년 삼성에서 은퇴한 이상민은 2022년까지 줄곧 삼성에서 코치와 감독까지 지도자생활을 하며 삼성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는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현대의 정통성을 물려받은 KCC는 프로에서도 삼성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삼성사람’이 됐지만 KCC는 이상민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하며 레전드 예우를 다했다. 전주실내체육관에 이상민의 11번과 추승균의 4번이 나란히 걸려 영광의 시절을 대변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KCC가 이상민 코치를 선임했다. 전주팬들 입장에서 빼앗긴 레전드를 16년 만에 되찾았으니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올 시즌 홈 개막전에서 전주로 돌아온 이상민 코치가 팬들에게 인사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KCC의 부산이전으로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면은 박살났다. 하루아침에 응원하던 명문팀이 사라진 전주팬들은 허탈감과 분노에 밤잠을 설쳤다. 전주시청 게시판에 항의글이 폭주했다. 전주시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소는 잃었고 외양간을 고쳐봐야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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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주팬은 “20대 전주에서 KCC를 응원하며 농구장에서 연애를 했다. 30대 시절 결혼하고 딸과 함께 농구장에 갔다. 40대인 이제 20년간 응원했던 팀이 사라졌다”며 슬퍼했다.
가뜩이나 팬들을 감동시킬 스토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 프로농구다. 여기에 최근 구단들의 잦은 연고이전과 해체위기로 그나마 있던 골수팬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출범 후 26년이 지난 프로농구가 아직도 지역연고제를 100%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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