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은 16강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9분 나온 조규성의 동점골은 한국 A매치 사상 정규시간 기준 가장 늦은 시간에 나온 골로 기록됐다.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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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가 90분으로 끝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정규 경기 시간이 끝났다고 마음 놓으면 그 순간 치명타가 날아온다. 이번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에선 90분 이후 후반 추가 시간에 골이 터진 게 20%에 달했다. 25골 중 5골이다. 한국 조규성(27·미트윌란)이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 9분에 넣은 동점 헤딩골이 그 강렬한 사례다. 이 골은 한국 축구 A매치 역사상 가장 늦은 시간 나온 골로 기록됐다. 아시안컵 16강 8경기 중 2경기는 추가 시간에 승부의 추가 요동을 쳤다.
이번 아시안컵에 출전한 국가들이 유독 불굴의 정신을 가져서 그런 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부터 후반 추가 시간을 대폭 늘렸다. 비디오 판독(VAR), 선수 교체, 부상 치료 등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연을 정확히 측정해 추가 시간에 반영했다. 과거엔 3~4분 정도만 주어졌지만, 이제 10분을 넘는 건 예사다. 덕분에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전체 골 중 12.6%가 후반 추가 시간에 나왔다. 13.3%였던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역대 둘째로 높은 비율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지난 시즌 5라운드 동안 후반 추가 시간 득점은 단 5골이었는데, 올 시즌 같은 기간에는 18골이 들어갔다.
그래픽=김현국 |
아시안컵도 지난 2019년 대회에선 전체 130골 중 9골(6.9%)이 후반 추가 시간에 터졌는데 이번 대회에선 16강까지 112골 중 18골(16.1%)이 나왔다. 그 비율이 점점 급등해 조별리그 1차전 8.1%이던 후반 추가 시간 골이 3차전에 가서는 22.6%까지 폭등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후반 추가 시간 15분 골을 허용, 3대3으로 비겼다.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 한국 감독은 “추가 시간이 12분인데 왜 15분에 골을 먹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사우디 골키퍼 아흐메드 알카사르가 드러누워 시간을 끄는 모습.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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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아프다는 핑계로 시간을 끄는 ‘침대 축구’가 줄어드는 건 장점이다. 무작정 누워 버리는 상대 선수를 바라보며 울분을 삭이던 일은 사라져 간다. 그래봤자 추가 시간만 늘기 때문이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침대 축구’ 대명사 격인) 중동 선수들이 시간을 지연시켜도 다 추가 시간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탓인지 전보다 조금 덜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사우디는 16강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선제 골을 넣은 뒤 교묘하게 ‘침대 축구’를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후반 추가 시간이 10분까지 길어지면서 막판 동점골을 허용하고 승부차기에서 주저앉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경기 시간이 늘어난 만큼 선수들 체력 소모가 심해졌다. 한국은 조별리그와 16강전 4경기 동안 추가 시간을 총 65분 받았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경기당 90분이 아닌 평균 106분을 뛴 셈이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경기가 길어지면 부상 위험이 더 커진다. 코치진이 선수가 몸이 안 좋다 싶으면 빠르게 벤치로 불러들이는 관찰력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경기 시간이 늘어나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추가 시간 경고 위험성이 커지는 것도 관건이다. 이란은 지난달 31일 시리아전에서 공격 구심점인 메흐디 타레미(32·포르투)가 후반 추가 시간 경고를 받고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연장전에서 상대 공세를 힘겹게 막아낸 뒤 승부차기 5-3으로 진땀승을 거뒀지만 다음 경기 일본과의 8강전에 타레미가 나서지 못하기 때문에 타격이 크다.
두꺼운 선수층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선수들 체력 소모가 커진 상태에서 토너먼트 경기를 계속 끌고 가려면 주전과 후보 사이 실력 차가 크지 않아야 체력을 안배할 수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선발뿐 아니라 교체 요원을 잘 갖추고 있는 팀이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시대”라면서 “대표팀 명단을 꾸릴 때 벤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도하=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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