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알와크라, 권동환 기자) 벼랑 끝 한국을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구해냈다. 대한민국 축구의 모든 것이었다. 월드클래스 공격수의 진면목을 카타르에서 다시 한 번 선보였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따로 없다.

한국이 난적 호주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에 올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 와크라 알 자누브 경기장에서 열린 2023 아시안컵 8강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동점골로 연결된 페널티킥을 이끌어내고 역전 결승포까지 꽂아넣은 활약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챙겼다.

한국은 전반 42분 선제 실점을 하며 패색이 짙었지만 후반 추가시간인 53분에 손흥민이 얻은 페널티킥을 황희찬(울버햄프턴)이 성공시키고 손흥민이 연장 전반 14분에 환상적인 오른발 프리킥 골을 터트리면서 뒤집기 승리에 성공했다.

한국은 16강전을 호주보다 이틀이나 늦게 치러 체력적인 불리함을 안고 있었으나 한 수 위 공격력과 엄청난 투혼으로 이를 극복했다. 호주는 연장 전반 막판 에이든 오닐이 퇴장을 당하면서 자멸했다.

한국은 오는 7일 0시 카타르 도하 아마드 빈 알리 경기장에서 요르단과 결승 티켓을 놓고 다툰다. 요르단은 앞서 열린 8강전에서 타지키스탄을 1-0으로 이기고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랐다.



◆예상 외로 고전한 한국, 여유롭게 올라온 호주

이날 격돌을 앞두고 두 팀은 이번 대회에서 다소 상반된 행보를 드러냈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예상 외로 졸전을 펼치며 우승후보의 체면을 구겼다면 호주는 승승장구하며 9년 만의 트로피 획득을 위한 순항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카타르에 오기 전까지 A매치에서 6연승 달린 것은 물론 7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우승 1순위 일본을 견제할 유일한 팀으로 꼽혔다. 손흥민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PSG), 황희찬 등 유럽 빅리그에서 정상급 활약하는 선수들이 즐비하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에 따른 기세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실력이 시원치 않았다. 첫 경기 바레인전은 상대에 동점포를 내주는 등 고전하다가 이강인의 멀티골이 터지면서 3-1로 이겼다. 요르단과의 2차전에선 선제골을 넣고 멀티골을 내줘 역전당했다가 후반 추가시간 황인범의 슛에 이은 상대 자책골로 간신히 패배를 면했다. 동남아 약체 말레이시아전에선 클린스만호의 민낯이 공개됐다.



한국은 말레이시아전에서도 선제골을 넣고 두 골 내줘 뒤집혔으나 이강인의 재동점포와 손흥민의 재역전 페널티킥 골이 나와 체면을 구기면서 이길 뻔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후반 추가시간 14분에 3-3 동점포를 내주면서 비기고 E조 1위를 놓친 것이다. 한국의 우승 확률은 순식간에 5~6위권으로 추락했다.

16강은 반등곡선을 써내려간 한 판이었다.

중동 최강 사우디아라비아를 맞아 후반 35초 만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추가시간 9분에 설영우의 헤더 패스를 조규성이 머리로 받아넣어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조현우의 '선방쇼'로 4-2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120분 혈투였고, 불과 이틀 쉬고 준결승을 치르는 강행군이 예정돼 있었지만 태극전사들의 사기 만큼은 한껏 오른 승리였다.

호주는 이와 반대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조별리그에서 인도를 2-0, 시리아를 1-0으로 눌러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우즈베키스탄과 1-1로 비겨 B조 1위를 차지했다.

16강 상대는 막차로 탑승한 동남아 인도네시아였다. 호주는 16강전에서 인도네시아의 정면 승부에 전반 중반까지 고전했지만 상대 자책골 등에 힘입어 전반을 2-0으로 앞서고 승기를 잡았다. 후반엔 체력이 떨어진 상대 수비진을 유린하며 두 골을 추가해 4-0 대승을 챙기고 여유롭게 올라왔다. 호주는 인도네시아와 지난 28일 싸웠기 때문에 한국보다 이틀이나 더 쉬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53시간을 더 쉬었다.



◆백4 회귀+조규성 선발 복귀

클린스만 감독은 호주전에서 다시 백4로 회귀했다.

한국은 조규성이 최전방 공격수 선발로 나서는 가운데 손흥민이 조규성(미트윌란)과 함께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다. 한국은 9년 전 호주 대회 결승에서 호주와 연장 접전 끝에 1-2로 진 기억이 있다. 손흥민은 당시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 골을 넣었지만, 결국 팀 패배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황희찬의 첫 선발도 반갑다. 통증으로 조별리그 1~2차전을 쉬었던 황희찬은 3차전과 16강전에서 후반 교체로 들어왔다. 호주전에선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측면 공격을 맡았다. 황인범(즈베즈다)과 박용우(알아인)가 중원을 책임졌다.

좌우 측면 수비수로는 설영우(울산)와 김태환(전북)이 출전했다. 호주 대회에서 손흥민과 함께 대표팀에서 뛴 김영권(울산)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와 센터백 콤비로 나섰다. 조현우(울산)이 예상대로 골키퍼 장갑을 꼈다.

호주는 부상 중이었던 공격수 미첼 듀크(마치다 젤비아)가 선발로 돌아왔다. 미첼과 함께 뛸 공격수로 마틴 보일(하이버니언), 크레이그 굿윈(알 웨다)이 낙점됐으며 잭슨 어바인(장크트 파울리), 키아누 바커스(세인트 미렌), 코너 맷칼페(장크트 파울리) 등이 미드필더로 나섰다. 나다니엘 앳킨슨, 카이 롤스(이상 하츠), 해리 수타(레스터 시티), 아지즈 베히치(멜버른 시티)가 백4로 나섰다. 골문 앞엔 베테랑 매튜 라이언(알크마르)이 섰다.



◆한국의 스피드 vs 호주의 조직력

한국은 체격이 큰 호주를 상대로 전반 3분 만에 세트피스 위기를 내주는 등,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스피드에 맞서 정면으로 압박하겠다"는 그레이엄 아놀드 호주 감독의 말처럼 상대의 적극적인 저항에 고전했다.

하지만 태극전사들도 전반 5분 역습 때 손흥민이 50여m를 질주하며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달려들던 황희찬에 패스하며 호주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은 이날 초반 체력이 충분한 황희찬을 이용하며 호주를 위협했다. 이강인은 중원에서 상대 에이스 어바인의 볼을 빼앗는 등 적극적으로 수비했다.

조금씩 한국이 볼점유율을 늘려나간 가운데 호주는 패스미스 등이 나오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클린스만호는 수비 뒷공간으로 질주하는 손흥민을 향한 중거리 패스 등으로 활로를 개척하려 했다.

전반 14분엔 중앙 수비수 김민재가 오른쪽 터치라인 부근까지 돌진한 뒤 낮은 오른발 크로스를 올려 눈길을 끌었다. 위력은 크게 없어 상대 골키퍼 라이언이 잡아냈다. 전반 15분엔 어바인이 발을 높게 들고 황희찬을 위협해 둘이 충돌하는 일도 있어났다.





◆황희찬의 골…오프사이드 아깝다, 그리고 '실점'

이날 경기 첫 슈팅은 호주의 몫이었다. 전반 17분 맥칼페가 아크 오른쪽에서 왼발 터닝 슛을 시도했다. 골문 오른쪽을 벗어나는 등 큰 위력은 없었다.

한국은 전반 19분 큰 위기를 넘겼다. 굿윈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왼발 슛을 날렸고 이를 조현우가 쳐내자 듀크에게 다시 슛을 허용한 것이다. 듀크의 오른발 슛이 잘못 맞아 골문을 벗어난 것이 다행이었다. 굿윈은 아쉬운 듯 고개를 감싸쥐었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김영권의 긴 침투패스를 황희찬에 연결,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호주를 위협했다. 상대 수비가 한 발 먼저 발을 뻗으면서 결정적인 슈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은 세트피스에서 A매치 26경기 10골을 기록한 '골 넣는 수비수' 수타를 박용우가 맨투맨 마크하면서 실점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전반 31분 땅을 칠 찬스를 날렸다. 이강인이 아크 먼쪽에서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날카로운 중거리패스를 올렸고 설영우가 이를 지체 없이 가운데로 밀어넣자 황희찬이 넘어지면서 오른발 슛을 한 것이다. 골망을 출렁이면서 호주에 비수를 꽂는 선제골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설영우가 상대 수비라인을 깨트릴 때 무릎이 먼저 나간 것으로 판정됐다. 반자동 오프사이드(SAOT) 판독 기술이 미세한 설영우의 오프사이드를 잡아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은 맷칼페에 중거리슛을 허용하는 등 호주의 파상 공격에 시달렸고 결국 선제골을 내줬다. 전반 42분 호주의 전방압박에 페널티지역에서 수비가 흔들렸고 황인범이 치명적인 패스미스를 범했다. 이를 맷칼페가 페널티지역 오른쪽 측면에서 반대편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굿윈이 잔뜩 기다렸다가 자신이 잘 쓴 왼발로 강한 발리슛을 시도했다. 골망이 출렁였다.

호주의 압박에 실수가 나오면서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전반전이 종료됐다.

한국은 전반전에 황희찬 골이 취소되면서 단 하나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는 굴욕적인 45분을 보냈다. 볼점유율은 정확히 70.0%를 찍었지만 아무 의미 없는 비율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30.0%의 볼점유율을 기록한 호주가 슈팅 6개를 퍼부으면서 한 골을 뽑아냈다.



◆조규성 교체아웃 초강수…손흥민-황희찬이 살렸다! 극적 동점

다급한 한국은 후반 초반부터 공격 비중을 늘렸다. 후반 3분엔 이강인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한국 대표팀 첫 슈팅을 왼발로 시도했으나 잘못 맞아서 상대 골키퍼 라이언에 잡혔다.

이어 후반 6분엔 치명적인 추가 실점 위기를 내줬으나 조현우의 연속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왼쪽 측면 크로스를 보일이 문전에서 헤더 슛과 오른발 슛으로 한 번씩 연결했으나 조현우가 기가 막힌 선방으로 막아낸 것이다. 조현우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추가골을 내주고 무너질 뻔했다.

이후 동점포가 절실한 한국은 손흥민과 이강인을 보다 높은 위치에 올려 공격의 강도를 더 높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상대 장신 수비수에 막힌 조규성을 교체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 아래 그를 빼고 이재성을 집어넣으면서 황희찬과 손흥민을 전방에 올렸다.

호주도 바커스와 맷칼페를 빼고 에이든 오닐, 라일리 맥그리를 넣었다. 이어 굿윈과 앳킨슨을 불러들이고 조던 보스, 루이스 밀러를 투입했다. 한국은 후반 27분 상대의 롱스로인에 이은 듀크의 헤더 슛이 위험한 순간을 맞았으나 조현우가 잘 잡아내 추가골 위기를 다시 한 번 모면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32분 황인범을 불러들이고 왼발 킥이 좋은 홍현석을 투입했다.

후반 33분엔 이강인이 아크 앞에서 번뜩이는 패스를 내줘 이재성이 받았으나 라이언이 먼저 나오면서 이재성의 반칙이 선언됐다. 후반 38분엔 보스의 왼쪽 측면 크로스를 듀크가 헤더 슛으로 연결했으나 볼이 오른쪽 골포스트를 살짝 벗어났다.

이렇게 한국의 패배로 끝날 것 같았던 승부는 후반 추가시간 귀신 같이 한국의 대반전 드라마로 연결됐다. 한국은 요르단전, 말레이시아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 연달아 후반 추가시간에 골을 넣으며 동점 혹은 역전에 성공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주인공은 손흥민이었다. 후반 51분 손흥민에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볼을 끌고 가다가 상대 수비수 반칙을 이끌어낸 것이다. 주심이 즉각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키커로 나선 황희찬이 이를 골문 왼쪽 강슛으로 꽂아넣으며 1-1을 만들고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손흥민의 환상 프리킥 역전 결승포 '쾅'…'대한민국이 SON이다'

연장전은 막판 동점포로 기세를 탄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전개됐다. 연장 전반 4분엔 황희찬과 이강인이 골문 앞에서 연달아 슛을 쐈으나 라이언이 반사 신경으로 막아냈다.

한국은 후반 막판 교체로 들어간 셀틱 소속 윙어 양현준이 상대 수비진을 휘저으며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손흥민의 그림 같은 프리킥 골이 나왔다. 황희찬이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 모서리 부근에서 돌파하다가 상대 파울을 얻어냈는데 이 때 손흥민이 키커로 나섰다. 정면보다는 측면에 가까운 위치였지만 손흥민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오른발 감아차기를 시도했다. 볼은 라이언의 쭉 뻗은 팔을 피해 골문 왼쪽 구석을 흔들었다. 앞서 이번 대회에서 페널티킥으로만 두 골을 넣었던 손흥민이 페널티킥이 아닌 첫 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이날 한국 선수 아시안컵 경기 최다 출전(17경기) 기록을 세웠는데 자신의 골로 자축한 셈이 됐다.

호주는 자멸했다. 연장 전반 추가시간 황희찬에 거친 반칙을 범한 것이다. 주심이 비디오판독을 한 뒤 그에게 준 옐로카드를 레드카드로 바꿨다.

한국은 이날 호주전 뒤집기 승리를 통해 강력한 우승 후보의 면모를 되찾았다. 요르단과의 리턴매치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다만 핵심 수비수 김민재가 경고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요르단전에 빠지는 것은 아쉽게 됐다.



◆ 클린스만호 전적 및 일정

2023년 3월24일 친선경기 / 한국 2-2 콜롬비아(울산문수축구경기장) 득점 : 손흥민(2골)

2023년 3월28일 친선경기 / 한국 1-2 우루과이(서울월드컵경기장) 득점 : 황인범

2023년 6월16일 친선경기 / 한국 0-1 페루(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2023년 6월20일 친선경기 / 한국 1-1 엘살바도르(대전월드컵경기장) 득점 : 황의조

2023년 9월8일 친선경기 / 한국 0-0 웨일스(영국 카디프)

2023년 9월13일 친선경기 / 한국 1-0 사우디아라비아(영국 뉴캐슬) 득점: 조규성

2023년 10월13일 친선경기 / 한국 4-0 튀니지(서울월드컵경기장) 득점 : 이강인(2골) 황의조 자책골

2023년 10월17일 친선경기 / 한국 6-0 베트남(수원월드컵경기장) 득점 : 김민재 황희찬 손흥민 이강인 정우영 자책골

2023년 11월16일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 한국 5-0 싱가포르(서울월드컵경기장) 득점 : 조규성 황희찬 손흥민 황의조 이강인

2023년 11월21일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 한국 3-0 중국(중국 선전) 득점 : 손흥민(2골) 정승현

2024년 1월6일 친선경기 / 한국 1-0 이라크(UAE 아부다비) 득점 : 이재성

2024년 1월15일 2023 아시안컵 / 한국 3-1 바레인(카타르 도하) 득점 : 황인범, 이강인(2골)

2024년 1월20일 2023 아시안컵 / 한국 2-2 요르단(카타르 도하) 득점 : 손흥민, 자책골

2024년 1월25일 2023 아시안컵 / 한국 3-3 말레이시아(카타르 도하) 득점 : 정우영, 손흥민, 이강인

2024년 1월31일 2023 아시안컵 16강전 / 한국 1(PK 4-2) 1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알 라이얀) 득점 : 조규성

2024년 2월3일 2023 아시안컵 8강전 / 한국 2-1 호주(카타르 알와크라) 득점 : 황희찬, 손흥민

2024년 2월7일 2023 아시안컵 준결승 / 한국-요르단(카타르 알 라이얀)

사진=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