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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씁쓸한 낙향? 화려한 귀향... 노장 서건창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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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KIA 선두질주 이끄는 서건창

조선일보

KIA 서건창이 지난 10일 프로야구 경기에서 LG를 상대로 8회 1타점 2루타를 때리고 환호하고 있다. 올해 연봉 5000만원에 고향 팀 KIA 유니폼을 입은 그는 타율 0.354로 팀 선두 질주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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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때는 의아했는데, 지금은 너무 꿀 같은 존재.’ ‘그 때문에 이긴 게 4~5경기는 된다.’ ‘기대 대비 3배 잘해 준다.’

2017년 이후 7년, 통산 12번째 우승 꿈을 키워가는 KIA에는 노장 서건창(35)이 있다. 21일까지 타율 0.354(48타수 17안타) 13득점 8타점 3도루. 규정 타석엔 모자라지만 주전들 잇단 부상 속에서 자칫 가라앉을 뻔한 팀이 그의 활약 덕에 초반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그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08년 프로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팀은 없었다. 신고 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1경기 만에 방출됐다. 그 뒤 현역병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2012년 넥센에서 다시 프로에 도전했다. 연봉은 2000만원. 그때부터 숨겨진 타격 재능이 꽃을 피우면서 2014년 타율 0.370 201안타로 국내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종전 이종범 196안타)을 세우며 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받았다. 이 기록은 당시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늘어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21년 LG로 이적한 후 타격이 급하강 곡선을 그렸다. 2022년 타율 0.224에 그치더니 지난해엔 겨우 2할(0.200)을 지켰다. 주로 대타로 나서 44경기 출전에 그쳤다. LG가 29년 만에 우승했던 그 순간, 그는 그라운드에 없었다. 부진에 허덕이면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졌기 때문.

“LG가 지난 시즌 우승했지만, 솔직히 아주 좋지도 싫지도 않은 중간 정도 느낌이었어요. 전 우승 멤버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준비만 잘하면 어느 팀에서든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 팀을 찾을 때 마음이 급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전 소속팀 키움에서 먼저 제의가 왔지만 KIA에서도 관심을 보여줬어요. 선수라면 누구나 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연고 팀에서 뛰고 싶은 로망이 있잖아요?”

서건창은 지난 연말 LG에 스스로 방출을 요청했고, 고향 팀 KIA 유니폼을 입었다. 연봉은 5000만원. 인센티브 7000만원을 더해도 한때 4억원까지 찍혔던 연봉(2017년)에 비하면 초라하기만 하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남들이 한두 번씩 하는 ‘FA 대박’과 이상하게 거리가 멀었다. 2021년 FA 요건을 채웠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이듬해 반전을 노리고 ‘FA 재수’를 선택했는데 이후 성적이 더 추락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죠. 연봉 액수를 따졌다면 굳이 KIA와 계약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더 중요했던 건 성적과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얻는 거였어요. 연봉이야 잘하면 다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건창은 약간 무릎을 구부려 웅크리고 방망이를 왼쪽 어깨에 걸치듯 곧추세우는, 독특한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약간 기형적인 이 폼으로 리그를 지배했다. “3~4년간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안 좋은 일이 한 번에 몰려왔어요. 2014년 타격왕 했을 때는 손을 절대 안 써야 한다는 느낌으로 쳤는데, 나이 들면서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못 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게 됐죠. 원래 하루 못했다고 힘들어하고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되어있더라고요. 올해 많은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하고, 팀 성적과 분위기가 좋으니 재밌어요. 야구는 역시 멘털 스포츠인가 봐요.”

서건창은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 폼부터 먼저 손을 댔다. 몸통 회전을 통해 손을 덜 쓰는 스윙으로 바꿨고, 회전축 변화를 주면 이상적인 타격 각도가 나올 것 같아 몸을 더 숙였다. 이순철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왼다리 앞쪽 가까이 있던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가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서건창은 무엇보다 “우승이 간절하다”고 했다, 그는 넥센과 키움 시절이던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무대에 섰으나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9년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둘렀으나 한국시리즈에선 부진했다.

“아직 우승 반지가 한 개도 없어요. 아주 훌륭한 선수들도 우승 못 해본 사람 많잖아요? 우승은 하늘이 내려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경기를 뛰고 있지만 시즌이 끝날 때 어떤 위치에 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항상 머릿속에 그리는 순간이 있어요. 한국시리즈 맨 마지막 경기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내가 잡는 그 순간.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방망이 잡는 순간을 떠올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가 마지막까지 공격한다는 건 팀이 급박한 상황까지 갔다는 거잖아요?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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