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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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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는 잘못이 없다…MLB의 터무니없는 콜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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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3일(한국시각) 열린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경기에서 와이어트 랭포드(텍사스) 타석 때 주심 콜 상황. MLB.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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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메이저리그(MLB) 이슈 중 하나는 앙헬 에르난데스(62) 심판의 리그 복귀다. 1991년부터 빅리그 심판으로 재직해온 그는 지난해에는 허리 부상 때문에 풀 시즌을 뛰지 못했는데, 주심으로 나선 10경기에서 스트라이크/볼 오심 콜이 161개(Umpire Auditor 기준)에 이르렀다.



풀 시즌을 뛰는 올해는 어떨까. 일단 지난 13일(한국시각)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경기 때 그는 다시금 악명을 떨쳤다. 1사 만루서 텍사스 신인 타자 와이어트 랭포드가 타석에 섰는데 에르난데스 주심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 3개에 대해 연거푸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볼넷’은 ‘삼진아웃’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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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지난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 중 ABS 판정 관련 실수 및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심판진에 중징계를 내렸는데 이민호 심판은 계약 해지, 문승훈·추평호 심판은 3개월 정직(무급) 처분을 받았다. 연합뉴스


숙명적 맞수인 엘에이(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시즌 첫 경기(4월2일) 때는 덴 벨리노 심판이 경기를 ‘지배’했다. ‘엄파이어 스코어카드’에 따르면, 당시 벨리노 주심은 결정적인 순간에 다저스에 유리한 볼 판정을 했고, 결국 샌프란시스코는 3-8로 졌다. ‘엄파이어 스코어카드’는 “벨리노 심판의 볼 판정 정확도는 92%였다. 다저스는 심판 판정의 이점으로 0.65점을 더 얻었다. 두 팀 간 최종 점수 차이(5점)를 보면 미세해 보이지만, 야구는 순간의 게임이고 콜 오심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 심판의 볼 판정 실수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한 데이터는 더 있다. 메이저리그 심판의 판정 정확성을 보여주는 ‘엄프스코어스’(UmpScores) 앱의 창립자인 마크 T. 윌리엄스는 지난 2019년 4월 발표한 논문(보스턴 대학)에서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2018년 3만4294차례 볼-스트라이크 콜을 실수했다”고 지적했다. 경기당 평균 14차례, 이닝 당 평균 1.6차례 볼 판정 실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윌리엄스는 “2018년에는 심판의 오심으로 경기가 종료된 경우가 총 55경기였다”고도 했다.



윌리엄스의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시즌 동안 2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심판은 그렇지 않을 때(15%)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치(29%)로 오심을 했다. 더불어 스트라이크 존 오른쪽, 왼쪽 상단에 대한 잘못된 콜 비율이 꽤 높았는데 2018년 기준으로는 오른쪽 상단 26.99%, 왼쪽 상단 26.78% 비율로 오심이 나왔다. 4번 중 1번꼴이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을 시행 중인 KBO리그에서 현재 제일 입길에 오르고 있는 스트라이크 판정도 존의 오른쪽, 왼쪽 상단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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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스트라이크 이후 오심 비율. 마크 T. 윌리엄스 논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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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8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볼 판정 오심이 가장 적은 심판 상위 10명의 경력은 평균 2.7년, 평균 연령은 33살, 오심률은 8.94%였다. 이들 중 경력이 5년 이상이거나 37살 이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하위 10명의 경력은 평균 20.6년, 평균 연령은 56.1살, 오심률은 13.96%였다. 3시간 가까이 부동의 자세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힘든 일이다. 윌리엄스는 “피치컴 등 기술적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심판들은 100년 전 베이브 루스가 군림하던 시대와 똑같이 공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한다”면서 “기술 도입이 심판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심판이 더 나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된다”고 했다.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세계 최초로 1군리그에 ABS를 도입했다. ABS 판정을 두고 “이것은 야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사실 태초의 야구에는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야구의 최초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니코보코 규칙(1845년) 11항에는 “타자가 공 3개를 쳤는데 두 개는 파울이 되고 마지막 공이 잡히면 아웃이 된다”고 명시돼 있다. ‘스트라이크’(Strike:치다)라는 말의 뜻을 되새겨 보면 된다. 심판에 의한 스트라이크 콜은 당연히 없었다. 이 때문에 타자는 온종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공을 기다릴 수 있었고 결국 타자가 일부러 경기를 지연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심판의 개입이 시작됐다. 스트라이크 콜은 1863년 처음으로 등장했다.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였다.



볼 판정 첫번째 기준은 스트라이크 존, 그 자체가 아니라 일관성 여부다. 인기 구단과 비인기 구단, 1군 붙박이 선수와 막 1군으로 올라온 선수, 신인 선수 모두 감정이 배제된 똑같은 스트라이크 존 적용을 받아야만 한다. 인간 심판일 때 인기 구단이나 이름값 있는 선수, 혹은 베테랑에게 스트라이크 존이 후한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텍사스 신인 랭포드가 당한 볼/스트라이크 판정만 봐도 심판에 의한 프로 선수 길들이기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텍사스대학의 경제학자 대니얼 해머메시 팀은 2004~2008년의 메이저리그 투구 350만건 이상을 분석해 스트라이크 판정과 인종차별 사이의 관계를 연구했는데, 심판들은 자신과 같은 인종의 투수에게 더 유리한 볼 판정을 내렸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올스타전에 여러 차례 뽑힌, 이른바 검증된 투수에게 스트라이크 판정이 후했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 야구라고 다르겠는가. 가뜩이나 선수 출신 심판이 대부분이라서 학연, 지연으로 얽혀 있는 리그인데.



스트라이크 존이 구장마다 다르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으나 2023년까지 각 구단은 고유의 스트라이크존을 가진 심판들에게 적응해야만 했다. 현재 KBO리그 등록 심판위원만 50명이 넘는다. 프로야구 구장 수보다 훨씬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장 감독은 “인간 심판이었을 때 경기에서 우리만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수긍이 되고 깔끔하다. 현 시스템에 100% 만족한다”면서 “전세계에서 첫 시도를 하는 것이니까 ABS와 관련해서 잡음이 계속 나오겠지만 앞으로 계속 보완해 나간다면 점점 나아지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ABS와 함께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피치 클록에 대한 불만도 꽤 흘러나온다. 아예 피치 클록을 무시하는 구단이나 선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의 고향’ 미국이 지속 가능한 야구를 위해 도입한 게 피치 클록이다. ‘빠름, 빠름, 빠름’에 익숙한 21세기 Z세대를 붙잡기 위해서는 ‘스피드 야구’가 필요하다. 지금은 ABS, 피치 클록 등을 흔들 때가 아닌 바뀐 시스템에 하루빨리 적응해 그들 고유의 야구를 펼칠 때다. ABS나 피치 클록은 핑계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KBO 사무국도 ABS의 투명성을 위해 구단에 선수별 스트라이크 존 등의 세부 자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23일부터 1, 3루 더그아웃에도 주심, 3루심과 함께 동시간대에 스트라이크/볼 판정 결과를 들을 수 있는 ABS 수신기가 제공된 점은 환영할 일이다. 심판의 콜이 잘못됐을 경우 구단이 바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존은 그저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 14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일어난 스트라이크/볼 콜 실수에 따른 은폐 시도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 한 것이다. 기계는 감정이 없어서 인간이 아닌 숫자, 그래픽만 본다. 최첨단의 21세기에 그저 인간에게 기대야만 했던 19세기 야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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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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