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프로농구 KBL

‘곰의 탈을 쓴 여우’ 전창진 감독이 꺼낸 ‘깜짝’ 드롭존, kt의 아킬레스건 제대로 찔렀다 [KBL 파이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곰의 탈을 쓴 여우’ 전창진 감독은 자신이 왜 KBL을 대표하는 명장인지 증명했다.

부산 KCC는 27일 수원 kt 소닉붐 아레나에서 열린 수원 kt와의 2023-24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90-73으로 대승, 69.2%(18/26)의 우승 확률을 차지했다.

전반까지 다소 고전했던 KCC, 그러나 후반부터 트랜지션 게임이 살아나며 15-0 스코어 런을 기록하는 등 순식간에 kt를 무너뜨렸다. 예상외 대승에는 분명 시나리오가 있었고 모든 걸 구성한 건 전창진 감독이었다.

매일경제

‘곰의 탈을 쓴 여우’ 전창진 감독은 자신이 왜 KBL을 대표하는 명장인지 증명했다. 사진=KBL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KBL 센터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 공식 행사가 끝나고 만난 전창진 감독은 재밌는 이야기를 건넸다. 자신은 패리스 배스, 허훈이 아닌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이다.

전창진 감독은 서울 SK와의 6강, 원주 DB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도 점수를 줘야 할 선수보다 ‘주지 말아야 할 선수’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오재현, 강상재를 묶으며 당당히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주목한 건 배스와 허훈을 제외한 문·문 듀오(문성곤, 문정현), 그리고 정성우와 마이클 에릭이었다. 전창진 감독은 울산 현대모비스와 창원 LG가 왜 무너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배스와 허훈이 50점을 합작해도 결국 다른 쪽에서 흐름을 내주지 않거나 실점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공식이 자리 잡았다.

중요한 건 어떻게 막는지였다. 전창진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에서 자신의 전술에 대해선 1%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경기를 통해 보여주겠다는 메시지만 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챔피언결정전 1차전 직전 라커룸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 드롭존이었다.

전창진 감독은 “에릭이 나올 때 (플레이오프)처음으로 드롭존을 설 것이다. 배스가 나오면 다시 맨투맨 디펜스로 바꾼다. DB와 4강 시리즈에서 드롭존을 하려고 준비했다가 공격이 잘 풀리면서 쓰지 않았다”며 “드롭존을 쓰다가 안 되면 바로 바꿀 것이다. 훈련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맥만 짚었다. 존 디펜스는 길목을 잘 알아야 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과감하게 활용할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도박수’에 가까웠다. KCC는 드롭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선수들이 있다. 전창진 감독도 드롭존을 활용해왔던 지도자. 올 시즌에 아예 꺼내지 않은 수비 전술도 아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만큼 챔피언결정전과 같은 큰 무대에서 자칫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창진 감독의 승부사 본능이 빛난 순간이기도 했다. kt가 17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오를 수 있었던 포인트로 에릭을 지목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를 무력화할 무기가 바로 드롭존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t는 2쿼터 에릭 투입 후 KCC 드롭존에 막혀 전혀 득점하지 못했다. 오히려 알리제 존슨이 에릭을 스피드와 타이밍으로 공략, kt를 흔들었다. 송영진 감독은 결국 1분 30초 만에 에릭 대신 배스를 투입해야 했다. 24-23으로 앞서고 있다가 24-27로 밀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배스의 조기 투입은 오히려 독이 됐다. kt는 현대모비스, LG를 상대하면서 배스의 체력 안배, 그리고 집중력 저하를 에릭 투입으로 보완했다. 배스는 이 시간 동안 재정비했고 후반 ‘각성 모드’로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에릭이 코트 위에서 X 팩터 역할까지 해주면서 2배의 효과를 봤다.

매일경제

전창진 감독은 KCC 부임 후 첫 우승, 그리고 2008년 이후 16년 만에 우승에 도전한다. 사진=KBL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나, 이번에는 달랐다. 에릭이 1분 30초 만에 벤치로 돌아가면서 kt의 플랜이 꼬였다. 2쿼터 전부는 아니더라도 7, 8분은 버텨줬어야 했다. 이후 배스의 쇼타임이 이어졌으나 KCC 입장에선 대성공이었다. 결국 승부를 봐야 할 후반, 배스는 전과 다른 퍼포먼스를 펼치지 못했다. 전창진 감독에게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찔린 셈이다. 반면 KCC는 후반 내내 마음껏 달리며 조기에 승리를 결정 지었다.

송영진 감독은 “존 디펜스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3점슛이 나오지 않아 배스를 일찍 투입해야 했다. 결국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전창진 감독은 100%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배스가 나왔기에 100% 만족한다. 그의 체력을 더 쓰게 만들어서 좋다. 그 부분이 후반까지 연결됐다. 배스는 좋은 득점원이지만 플레이를 보면 체력을 많이 쓰는 선수다. 송영진 감독도 배스의 휴식을 위해 에릭을 넣었지만 드롭존에 적응하지 못해 배스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스가 나올 때 드롭존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바보짓이다”라며 자신했다.

이외에도 전창진 감독은 1쿼터 1분 24초 만에 작전타임을 부르기도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준 선택이었다. 전창진 감독은 “어느 정도 주의를 줬다. 6일을 쉬고 경기하는데 나태한 모습이 보였고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주고 말았다. 4점을 너무 쉽게 내줬다. 경기 시작부터 이미 이겼다고 생각한 것 같다. 챔피언결정전과 같은 무대에서 기세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니 그 부분을 꺾고 들어가려고 했다”며 “감독을 하면서 이렇게 빠른 작전타임은 나도 처음이다. 정규리그는 더 지켜보려고 하는데 챔피언결정전은 한 번 넘어간 기세를 바로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작전타임을 빠르게 가져갔다”고 밝혔다.

kt의 분위기로 흘러갈 듯했던 경기는 1쿼터 초반 KCC의 작전타임 후 흐름이 바뀌었고 접전이 됐다. 물론 전반 내내 100% 만족할 수 없는 경기력이었으나 그럼에도 kt의 좋았던 출발을 순간 끊어낸 건 전창진 감독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07-08시즌 이후 명장이란 타이틀에도 좀처럼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전창진 감독. 그는 올봄 내내 소름 끼칠 정도의 정확한 플랜, 그리고 날카로운 순간 판단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이 왜 최고인지를 재증명하고 있다. 전창진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디테일한 플랜은 이번 플레이오프를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매일경제

드롭존을 꺼내든 전창진 감독, kt는 이에 속수무책이었다. 사진=KBL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원=민준구 MK스포츠 기자

[ⓒ MK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