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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꼬꼬무 찐리뷰]고급 별장 지하에 히로뽕 밀조실이…'마약왕' 이황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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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4일 방송된 '장미정원의 비밀-코리안 마약왕'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육중완밴드의 보컬 육중완, 그룹 레드벨벳 멤버 웬디, 배우 이주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학산별장의 주인 마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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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5년, 부산. 수영만 바다가 쫙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고급 별장 지대가 있어.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저 멀리 수평선까지 햇살이 반짝반짝, 갈매기는 끼룩끼룩. 집 뒤론 예부터 백학이 찾아온다는 학산이 있어. 완전 배산임수 명당이지.

어느 날, 그중 한 별장으로 웬 젊은 남자가 이사를 와. 목재공장 회장님의 큰 별장을 사서 온 거야. 집 뒷산 이름을 따서 '학산 별장'이라고 불리는 집이야. 바로 이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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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200 평에 건평 120평. 매매가 1억 원이야. 1975년에 1억이면 지금으로 치면 얼마일 거 같아?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 정도였어. 압구정 현대 아파트가 1976년에 분양했는데 당시 30평대 분양가가 천만원도 안 됐어. 그런데 1억짜리 집이라니. 이 집, 얼마나 좋은 집인지 알겠지? 남자는 차도 이태리제 외제차를 끌고 다녔어. 돈이 얼마나 많길래.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한 사업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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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장미를 좋아하는지 정원에 장미꽃을 가득 심었어. 또 애견인인지, 독일에서 온 셰퍼드를 다섯 마리나 키워. 간식도, 사람들이 먹는 최고급 명태를 막 삶아서 줘. 그리고 집에선 탕! 탕! 엽총으로 사격 연습하는 소리도 종종 들려.

언덕 아래 사는 마을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 이사 왔으면 떡도 좀 돌리고 해야하잖아? 그런데 남자는 마을 사람들하고는 영 교류를 안 해. 동네 소식 다 아는 마을 반장님도 이 집만큼은 예외야. 유일하게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은 수도검침원 뿐이야. 이 집 느낌 어때? 굉장히 비밀스럽지? 학산 별장으로 새로 이사 온 미스터리한 이 남자. 대체 누구일까? 그 남자의 정체를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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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잠깐 얼굴을 내밀었을 때 찍힌 사진이야. 이 사람은 몇 년 후, 온 신문 지면을 뒤덮어. 바로 이런 내용으로.

"국내 최대 '히로뽕' 밀조 두목 이황순의 집"
"초현대식 장비 갖춘 한국판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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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 별장의 주인은, 이름하여 '마약왕' 이황순. 한국의 마피아이자 히로뽕 밀조 두목이야. 콜롬비아에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있다면 한국엔 이황순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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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코바르는 미국 코카인의 80%를 유통했던 '코카인의 제왕'이야. 전 재산 33조. 돈이 너무 넘쳐나서 땅에 묻어뒀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썩어서 못 쓸 정도였다고 하지. 그의 좌우명은 '은 안이면 납'이었어. 은은 돈, 납은 총알. 그러니까 뇌물을 받고 내게 협조해서 부자가 되거나, 아니면 대적해서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지.

어떻게 이황순은 '한국의 파블로 에스코바르'라 불렸을까. 어떻게 한국의 마약왕으로 등극했을까? 그의 청년 시절로 돌아가 볼게.

▲ 밀수로 큰 돈을 벌다

이황순의 성장기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어.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 충북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거든. 그런데 공부엔 뜻이 없었는지, 이황순은 대학을 중퇴하고 부산으로 향해. 1960년대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먹고 살기가 괜찮았어. 부산항이 있어서 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풍부한 활기찬 도시였지. 이황순은 부산에 가서 조직폭력배의 조직원이 됐어.

이황순이 들어간 조직은, 1950년대 피난민 건달 7명으로 시작한 조직, '칠성파'야. 칠성파의 초대 두목은 이경섭이야. 1970년대 초, 이경섭의 손아랫동서인 이강환이 두목 자리를 물려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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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환은 선천성 소아마비가 있어서 몸이 좀 불편했어. 게다가 체구도 작은 편이야. 그런데도 보스가 된 비결은, 간이 엄청 커. 배짱이 두둑하다는 거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겁을 안 내는 성격이야. 이강환은 부산의 다른 조폭 조직인 20세기파, 역전파, 영도파, 서면파 조직원을 차례로 흡수하면서 세력을 키워. 1980년대엔 칠성파가 부산 조폭계의 넘버원이 되지. 이런 칠성파의 성장을 눈여겨 본 사람이 있어. 바다 건너 일본의 야쿠자 두목이야.

일본 야쿠자 두목이 한국 지부 역할을 해줄 조직으로 칠성파를 고른 거야. 부산을 넘어, 세력을 더 넓히고 싶었던 이강환의 뜻과도 맞아떨어졌지. 이강환은 보스급 조폭 20명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리고 일본 야쿠자와 결연식을 가져. 야쿠자 두목과 이강환이 마주 앉아서 접시에 술을 나눠 마셔. 상대 두목이 마신 접시를 품속에 넣어 보관하면 형제가 됐단 증거야.

이강환이 칠성파를 막 키우기 시작했을 즈음, 이황순이 칠성파의 조직원으로 들어간 거지. 조폭이 조직을 운영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돈이야. 이강환은 부산 유흥가를 장악하고 지하세계의 돈을 쓸어 모았어. 특히 이황순이 칠성파에 들어갔을 무렵, 부산 지하세계에서 한창 뜨는 사업이 있었어. 바로 '밀수'야. 세금을 안 내고 몰래 수입품을 들여와 파는 거야. 60~70년대 우리나라는 물자가 부족했어. 그리고 이땐 '메이드 인 재팬' 일본 제품이 아주 최고야. 우리나라에서 일본 제품을 가장 먼저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은, 부산의 국제시장이었어. 일본하고 가까운 국제시장에서는 밀수품이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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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어둠을 뚫고 소형 쾌속선이 부산항을 향해 달려와. 대마도에서 출발한 밀수 특공선이야. 대마도는 부산과 후쿠오카 사이에 있는 섬이지. 일본 섬이지만 부산과의 거리가 49.5km에 불과해. 날씨가 좋으면 부산에서 대마도가 육안으로도 보여. 밀수를 하다가 감시선에 걸렸다? 문제 없어. 밀수선은 중고 탱크에서 빼낸 고속 엔진까지 설치해서 속도가 세관 감시선보다 빨라.

밀수품 종류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1960년대엔 화장품, 학용품, 재봉틀, 양산 같은 생활용품 위주였어. 그러다 1970년대엔 녹용, 일제 TV, 고급 시계, 밍크코트, 다이아몬드, 금괴까지 다양한 사치품이 들어왔대. 이렇게 부산 앞바다까지 달려온 밀수선은, 물건을 바다에 부표처럼 던져. 그럼 부산항의 밀수꾼들이 바다로 나와서 건져내. 그리고 국제시장 같은 곳에서 유통시키는 거지. 대마도 밀수가 나날이 성황을 이루다 보니 이런 일까지 일어나.

'해녀밀수단 적발'
"부산지검 부장검사는 부산항을 무대로 밀수를 해온 제주 출신 해녀와 그 친척들로 구성된 해녀 밀수 특공대를 적발, 두목인 해녀 조ㅇㅇ 부인 등 10여 명을 관세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비상망까지 설치, 밀수를 해와 이제까지 적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 내용 中

밀수품을 바다에 빠뜨리면 해녀 서너 명이 나가서 건져와. 상황이 이러니 아주 바빠진 사람들이 있어. 바로 부산항을 지키는 세관원들. 숨기려는 밀수꾼과 찾으려는 세관원들, 신경전이 아주 치열해. 당시 세관원이었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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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원과 밀수꾼 간은 쫓고 쫓기는 경쟁이 벌어지는데, 세관원들이 수색하러 갈 적에는 의료 장비도 포함이 많이 됩니다. 청진기를 가져갈 때가 있죠. 기름탱크 속에다가 시계를 넣어온다면, 시계가 소리가 째깍째깍 가겠죠. 내시경도 가져가는데요. 이런 것은 뭐냐하면, 사람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은 내시경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죠. 배 전체가 하나의 비밀 밀수품을 은닉하는 비밀창고라고 보면 되죠. 그렇게 수색을 해도 금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이제 최후 마지막에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이죠. 갑판상으로 좀 나오도록 하게 하는 거죠. 한곳에 모여 놓고 '미안하지만 좀 앉으라'고 하거든요. 앉으라 하면은 항문에 만약에 금을 차고 있는 사람들은 앉으면 고통이 따르겠죠. 그렇게 해서 이제 잡은 적도 있죠."
-이용득, 前 부산항 세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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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품 은닉 수법들도 다양했어. 겉보기에 평범한 물건들에 숨겨와. 화장품 크림통에 보석을 넣거나, 구두 굽 속에 금반지를 넣거나, 전기밥솥 밑에 금괴를 넣거나. 그런 식이야. 일본은 우리보다 금이 쌌어. 그래서 이 물건들에 금괴를 숨겨 들어온 금괴 밀수가 많았다고 해.

칠성파 이황순도 밀수에 손을 댔어. 그런데 스케일이 달라. 이황순은 이 정도에 만족할 사람이 아냐. 그는 대마도에서 오는 작은 밀수선으로는 성에 안 찼어. 대신 부산에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대형 무역선을 이용하기로 해. 먼저, '완수파'의 두목, 최완수와 손을 잡았어.

완수파는 부산항에 정박 중인 외국선박에 음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 깜깜한 밤, 무역선이 부산 외항에 닻을 내리면, 완수파 조직은 작은 배를 타고 나가서 무역선에 접근해. 그리고 사다리를 통해 음식을 담은 박스를 실어 올려. 음식을 배달한 뒤 내려오는 박스는 비어있지 않았어. 박스에는, 금괴, 시계, 녹용 등 밀수품이 가득 실려 있어.

이황순은 밀수 조직을 철저히 분업화 시켰어. 해상운반책, 양륙책(육지에 물건을 내리는 사람), 감시책, 육상운반책, 보관책, 자금책까지. 각 단계마다 철저히 분업화돼 있어. 이황순은 밀수 자금책 역할이야. 밀수할 사람들에게 돈을 줘서 밀수품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쉽게 말하자면 '주문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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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 앞으로 롤렉스 시계 300개, 금괴는 저번처럼, 한 30관. 실수하면 안돼!"
-이황순

금 30관이면 100kg 이상이야. 당시 우리나라의 대명 광산이란 금광에서 생산하는 금의 양이 한 달에 10kg밖에 안 됐거든. 100kg이면 우리나라 금 시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야. 냉동 생선 배를 갈라서 금괴를 실어 오기도, 바나나 사이에 숨겨 들어오기도 했대. 이런 식으로 이황순이 밀수한 금괴가 총 1,000kg이었대.

이황순과 칠성파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을 거야.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쳐왔어. 정부가 '밀수'를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단속을 펼쳤어. "밀수는 망국적 사치와 허영심을 조장시키며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행위다"라며. 밀수하다 걸리면 최대 사형이야.

1972년 서울지검에 첩보가 날아들어. 외항선에 작은 배를 대고 밀수하는 조직이 있다는 첩보야. 이황순과 완수파에 대한 정보지. 수사진은 잠복 끝에, 밀수품을 옮겨 싣는 현장을 포착했어.

1972년 2월, 이황순은 체포됐어. 징역 4년, 벌금 1,400만 원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됐지. 그런데 이상한 거 없어? 아까 이황순이 민락동 호화주택으로 이사 온 게 1975년이라고 했잖아. 4년형을 선고받았으니까 1976년 이후에나 출소하는 건데, 어떻게 벌써 밖에 나와 있었던 거지? 설사 가석방이 됐다고 해도 내내 감옥에 있었잖아. 학산 별장을 살 그 큰돈이 어디에서 난 걸까?

▲ 마약왕이 되기까지

사실, 이황순의 감방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어. 수감 이듬해인 1973년 감옥에서 나왔거든. 폐결핵 진단을 받아서 형집행정지가 된 거야. 하지만, 형집행정지는 석방이 아니야. 병이 나으면 언제든지 다시 감옥에 들어가야 하고, 제한된 주거지에서만 지내야 해. 그런데 이황순은 감옥에서 나온 지 일주일만에 사라져.

사라진 이황순이 나타난 곳은, 경남 진주야. 한 돼지 사육장에 나타났어. 이 곳에서 '교수'를 만나기로 했거든. 진짜 교수가 아니라 별명이야. 그런데 이황순은 이 교수에게 뭘 배우긴 했어. 뭘 가르치는지, 교습 도구를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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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히로뽕 제조기야. 이게 실제로 이황순이 사용했던 거야. 부산 세관박물관 창고에 보관돼 있는 건데, 마약의 위험성을 강조해달라며 외부 반출을 협조해 주셨어. '꼬꼬무'가 부산에서부터 무진동 차량에 싣고 어렵게 가져온 거야.

'교수'는, 히로뽕 밀조 기술자야. 밀조 기술자들은 기술 수준에 따라서 총장급, 학장급, 교수급으로 분류하고 제조 비법을 가르쳐주고 강사료를 받는대. 밀조 공장에 갈 땐 스스로 검은 띠로 눈을 가렸다고 해. 나중에 잡히더라도 장소 정보를 발설할 수 없게 말이야. 아주 철저하지.

이황순은 교수한테 히로뽕 밀조 1대 1 족집게 과외를 받았어. 그런데 왜 이 교육을 돼지사육장에서 할까? 히로뽕의 재료는 염산 에페드린이란 물질이거든. 이걸 녹여 촉매제를 넣고 환원하고, 뭐 그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 그래서 염산 때문에 만들 때 악취가 심해. 그 냄새를 가리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바로 돼지사육장인 거지.

히로뽕의 원래 이름은 메스암페타민. 새로운 감기약을 개발하는 도중에 만들어진 물질이야. 축농증, 기침에 효과가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새로운 기능도 발견했어. 강력한 각성 효과가 있었던 거야. 그러자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메스암페타민으로 피로회복제를 만들지. 그 상품명이 '필로폰'. 일본 제품명 필로폰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일본식 발음 히로뽕으로 바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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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광고까지 하는 제품이었어. '피로의 방지와 회복에 히로뽕 정' 이라고 쓰여 있어. 일본은 이 약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해. 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에게 지급하려고. 자살 공격 전술을 펼친 가미카제 특공대에게도 히로뽕이 지급됐대. 흔히 마약 투약자들 상태가 몽롱한 상태일 거 같잖아? 하지만 히로뽕 투약자들은 정신이 매우 또렷하고 흥분된 각성 상태가 된대. 잠을 자지 않고, 먹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그러니 전쟁에선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거지.

그러다 전쟁이 끝났어. 어떻게 됐겠어? 일본에선 히로뽕 중독자가 넘쳐나. 마약 문제가 걷잡을 수 없게 심각해져. 결국 일본은 마약을 제조한 사람에게는 최대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어. 근데 이 법이 묘한 나비 효과를 일으켜. 히로뽕 제조에 손을 대고 있던 일본의 야쿠자들이 돈이 되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거든. 히로뽕을 제조할 곳을 일본 밖에서 찾은 거야. 거기가 어디? 대한민국이야. 일본에 징용돼서 히로뽕 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인들이 있었거든. 야쿠자들은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우리나라 기술자들을 찾아내. 대부분 부산에서 살고 있었어.

부산이 물이 좋고 날씨가 따뜻해서 히로뽕 제조에 적합한 여건이었다고 해. 히로뽕은 순도라는 게 있는데, 한국 제품이 그 순도가 좋아서 동남아산보다 인기가 좋았대. 일본 히로뽕 시장의 80%가 한국산일 정도야. 대만에서 히로뽕의 원료를 수입해서, 부산에서 제조하고, 일본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화이트 트라이앵글'이 완성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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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넥션 안에 바로 이황순이 있었어. 순도 높은 히로뽕을 제조하는데, 밀수를 해 본 경험도 있잖아. 어느덧 이황순은 히로뽕 밀조의 대부로 커 나가. 그는 일본에 히로뽕 파는 걸 애국인 것처럼 떠벌리곤 했어. 일종의 '수출' 아니냐는 거야. 집 거실에도 태극기를 걸어놨대. 영화 '마약왕'에도 이런 대사가 나오지.

"뽕을 일본에 팔면 이게 애국 아이가! 청나라는 아편으로 망했지, 일본은 뽕으로 끝내버릴 수 있어!"

반일 감정도 있고, 한국에 히로뽕을 수출한 원죄가 일본에 있으니, 일본이 인과응보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야. 이게 정말 애국심 때문이었을까? 아니, 결국엔 돈 때문이야. 히로뽕은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완전 뻥튀기처럼 가격이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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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유통 단계별 가격 변화야. 원료 단계에선 1kg당 14만 원이야. 이게 최종 밀매자한테 갈 땐, 무려 1억 7천에서 10억원까지 뛰는 거야. 최대 3000배야. 이러니까 히로뽕에는 '하얀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이 붙었어. 이황순은 불과 2년 만에 큰돈을 모았어. 그리고 자신만의 궁전, 부산 학산 별장에 철저한 요새를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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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순의 학산 별장을 살펴볼까. 앞은 수영만 바다, 뒤쪽 학산. 문은 이중 대문이야. 철제 대문이 하나 있고, 다시 10미터 올라간 곳에 두 번째 대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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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문 위엔 CCTV를 달았어. 70년대엔 CCTV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야. 그리고 담벼락 철조망은 사람 손이 닿으면 응접실에 설치된 부저가 울려. 그것도 방향별로 울려서 어느 쪽 벽에 사람의 손이 닿았는지도 알 수 있어. 산 쪽 담벼락엔 비상 탈출용 사다리를 준비해 뒀어. 단속반이 닥쳤을 때 산으로 도망가는 용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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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에 은신용 동굴까지 있었거든. 경계와 도피에 아주 최적의 시스템을 만든 거지.

그리고 이 정원에 아름다운 장미를 가득 심었어. 이 와중에 낭만이었던 걸까? 아니면 장미정원을 만든 데 다른 의도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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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밀의 학산 별장에서 이황순은 쉴새 없이 많은 검은돈을 벌어들였어. 이황순의 영광은 언제까지 계속 됐을까.

▲ 밀수 검거에서 잡은 마약왕 꼬리

시간은 흘러 1979년 12월, 인천항. 이황순에게 큰 나비 효과를 불러올 아주 작은 사건이 꿈틀대고 있어.

깜깜한 밤, 한 남자가 인천항 부두에 서서 서성대고 있어. 반으로 찢어진 천 원 짜리 지폐를 들고. 이 찢어진 지폐는 밀수 세계에서 통하는 일종의 증표야. 찢어진 지폐 2장이 서로 딱 맞으면, 밀수 상대가 맞다는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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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범들이 밀수 루트를 부산에서 인천항까지 넓혀놓은 거야. 하지만 밀수범한테 그냥 항구를 뚫릴 순 없잖아. '밀수범 잡는 호랑이'로 불리던, 윤재기 검사가 인천지검에 발령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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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인천지검 검사였어요. 내가 검사할 때는 모든 대한민국 범죄 정보가 나한테 다 와. 그래서 폭력배도 근절됐고 밀수범들도 근절됐고. 윤 검사가 인천에 뜨면 '세 살짜리 어린 애도 울다가 깬다' 그런 정도로 무서운 검사가 됐어."
-윤재기, 당시 인천지검 검사

히로뽕 범죄의 뿌리를 완전히 뒤흔들 사건. 그 시작은 아주 묘한 금괴 도난 사건이었어. 밀수범 안 씨가 금괴를 도둑맞았다고 신고한 도난 사건이야. 밀수범이 금괴를 도둑맞았다? 게다가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하는 순간 밀수범 자신도 잡혀갈 수밖에 없는데, 신고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그가 신고한 이유는, 잃어버린 금괴가 아깝기도 하지만, 더 열받은 이유가 있었대. 금괴를 가져간 도둑의 신분 때문이야. 그 금괴 도둑이, 형사였거든.

이 사건을 윤재기 검사가 맡았어. 추적 끝에 금괴를 갖고 달아난 형사들은 찾아냈어. 이러면 사건 해결 끝일까? 아니지. 윤재기 검사는 이 참에 금괴 밀수의 윗선을 밝혀 조직 전체를 소탕하려 해. 그러기 위해선, 신고자 안 씨가 입을 열어야 해. 어떻게 했을까? 윤 검사는 안 씨에게 어떤 노래를 부르게 했어. 이걸 부른 안 씨가 결국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정보를 밝혔다는데, 어떤 노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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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국심을 자극시켰어요. 태극기 앞에서 애국가를 한 10번만 부르고 데리고 내려오라고. 그 여자의 어머니가 독립운동가였어요. '당신 어머니가 독립운동하는 김구의 수행원이었는데 당신이 밀수꾼이 되느냐' 했죠. 애국가를 한 5번쯤 부르니까 막 울면서, '내 검사님한테 모든 걸 말씀드릴 테니 그만하자'고. 그래서 데리고 내려왔어. '대나무배 그게 밀수선이다. 그리고 그 배의 모든 선원들이 밀수꾼이다'. 그 정보를 가지고 만다린호를 찾게 됐죠."
-윤재기, 당시 인천지검 검사

그래도 일말의 애국심은 있었나봐. 태극기를 보면서 애국가를 부르게 하니, 안 씨가 고급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해. 다음주쯤 대만에서 대나무를 싣고 오는 배를 주시하래.

며칠 후, 대나무 3만 8천 단을 실은 만다린호가 인천항으로 들어와. 어스름하게 달빛이 내려앉은 부두에 한 남자가 나타나. 밀수 운반책이야. 배에 접근하기 위해선 먼저 부두 경비원한테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해.

돈을 찔러주며 경비원을 포섭하고, 트럭 운전사도 섭외해 놨어. 밀수꾼은 항만에 정박된 만다린호로 접근해. 그리고 반으로 찢어진 천 원짜리 증표를 꺼내 맞췄어. 딱 맞아. 밀수품들을 실어 나르려는데, 어디선가 "동작 그만!"이라는 소리가 들려. 윤 검사였어.

윤 검사는 기관실을 열도록 지시했어. 정보원 안 씨가 기관실 안 탱크를 살펴보라고 알려줬거든. 안에서 아직 빼내지 못한 밀수품인 녹용, 고급시계, 우황 청심환, 해구환이 한가득이야.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밀수품이 있어. 웬 하얀 가루가 수북해. 무려 250kg 정도야. 이 가루의 정체, 염산 에페드린이야. 맞아, 히로뽕의 원료. 그러니까 만다린호의 실체는, 화이트 트라이앵글의 한 축, 히로뽕의 원료 공급선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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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 원료를 찾은 건 처음이었던 거 같아. 막 소비하는 사람들은 다 제조층은 불질 않아요. 거기까지 타고 올라가서 마약 제조층을 잡을 수가 없어. 에페드린이라는 마약 원료를 찾아내 가지고 그 마약 수사의 원천 제조업자를 잡았던 유일한 사건이고. 유혹도 많았지. 그때 돈 250억을 주겠다고. 이 마약 수사를 중단해 달라고 하는 정도로 큰 유혹도 많이 받았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그걸 추적해서 봤더니 제조업자는 이황순이었죠. 밀수 조직의 대부였어."
-윤재기, 당시 인천지검 검사

만다린호 수사 끝에, 우리가 잘 아는 이름이 나왔어. 바로 이황순. 형집행정지로 감옥을 나와 6년간 행방불명됐던 이황순의 꼬리가, 히로뽕 원료 구매자로 드러난 거지. 이건 히로뽕 조직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야. 마약 수사를 해도 하선, 구매자만 잡는 경우가 많거든. 근데 원료 공급책은 마약 피라미드의 상선 중의 상선이야. 이 기회, 놓칠 수 없지.

▲ 학산별장 체포 작전

부산지검 특별수사반이 학산별장 앞에서 잠복을 시작해.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황순은 그림자도 안 보여.

그때야.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덜컹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와. 이황순은 아니었어. 신분을 물어보니, 수도계량기 검침하고 나오는 수도검침원이래. 그래서 그냥 가시라 했는데, 순간, 뭔가 좀 이상해. 지금은 월 초라서, 수도 검침할 때가 아니거든.

"당장 저 놈 잡아!"

부랴부랴 뒤쫓았는데 놈은 감쪽같이 사라졌어. 수도검침원은 이황순의 부하였던 거야.

며칠 후, 부산 남부경찰서 강력반이야. 매일같이 경찰서를 출입하는 한 남자가 있어. 국제신문 사회부 3년 차 김정주 기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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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일반 형사들의 움직임이 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민락동에 필로폰 밀조처를 급습한다, 이런 정보를 듣고 '아 이건 큰 사건이구나' 싶어서. 이걸 제대로 한 번 취재해서 시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그런 작은 사명감 같은 것도 같이 일어났죠."
-김정주, 당시 국제신문 기자

이황순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어. 현장에 있던 수사진이 먼저 이황순을 체포하러 접근했어. 그런데 이황순이 총까지 쏘며 격렬히 저항한거야. 60명의 경찰들이 부랴부랴 무장을 하고 출동해. 그때 김 기자도 형사들 뒤를 쫓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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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엔 보기 드문 양옥집이었죠.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요새화 되어 있는 거죠.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김정주, 당시 3년차 기자

경찰은 이황순의 학산 별장을 에워싸고 소리쳐. "이황순 너는 포위됐다. 저항하지 말고 자수해라"라고. 그러자 이황순은 자수할 수 없다며, 경찰한테 돌과 빈 병을 막 던져대. 경찰은 집에 섣불리 진입하지 못했어. 이황순이 셰퍼드를 풀어놓은 거야.

"거기가 철제대문이지 않습니까. 강제로 따고 들어가야 하는데, 송아지만한 셰퍼드 대여섯 마리가 펄쩍펄쩍 뛰어서 밖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관들을 위협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졌었습니다."
-김정주, 당시 3년차 기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개를 향해 총을 쐈어. 한 마리가 총에 맞아 쓰러져. 그러자 이황순 눈이 막 돌아가. "왜 개를 쏘는 거야!"라고 소리쳐. 그러더니 다친 개를 데리고 들어가서 치료를 해. 지금 이황순이 너무 흥분해 있는 상태야.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일단 이황순을 설득하기 위해 가족을 투입시켰어. 이황순의 형을 급히 불러 집으로 들여보냈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후 "빵!" 집안에서 총소리가 들려. 이황순이 자기 목 쪽으로 총을 쏜 거야. 순간, 형이 몸을 날려 막아서 총알은 이황순의 목이 아니고 오른쪽 어깨를 뚫었어. 치명상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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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만, 한국, 일본을 잇는 히로뽕 커넥션의 상선, 마양왕 이황순을 검거했어. 이황순은 병원으로 옮겨져서 수술을 받았어. 의식이 회복되길 기다린 뒤, 경찰 조사가 이뤄져. 이황순은 순순히 협조하지 않았어. "성가시게 굴면 혀를 물고 죽어버리겠다!"라며 이판사판으로 나와.

▲ 장미정원의 비밀

이황순이 입을 열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직접 나서 증거를 잡아야해. 경찰은 이황순이 자신의 집을 왜 그렇게 요새처럼 구축해놓은 건지, 집안을 수색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집 내부는 아주 호화찬란해. 최신식 장비와 무기가 가득해. 카메라 모니터, 서치 라이트 스위치, 일본도, 래밍턴 엽총, 자외선 망원경, 고성능 음파탐지 시설까지 설치돼 있어. 이 집에서 경찰이 찾아야 하는 건 히로뽕이야. 완성품이나 제조했던 흔적을 찾아야 해. 집 안 어디에 밀조 시설이 있을 텐데. 과연 어디일까?

장미정원을 살피던 경찰은, 수상한 것을 발견했어. 돌로 된 정원석 한 개를 들추자 지하로 수상한 구멍이 뚫려있어. 입구는 완전 좁아. 한 사람이 겨우 구부리고 들어갈 정도야. 몸을 굽히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그곳엔,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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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밀조 현장을 직접 들어가 보고 확인한 일행입니다. 그 공간 안에 밀조 기계 장비들을 갖다가 배치해놓고 하는 그런 데가 있었습니다. 밀조 공장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까, '이거는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고 느꼈죠."
-김정주, 당시 3년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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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은 잘 꾸민 고급 주택이지. 집 내부를 봐도 특별히 이상할 건 없어. 그런데, 비밀은 지하에 있었어. 지하에 미로를 뚫고, 그 끝에 비밀 공간을 만든 거야. 장미정원의 지하가 히로뽕 밀조 공장이었던 거야.

장미정원 곳곳엔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어. 지하의 히로뽕 제조 냄새를 내보내는 환풍기. 장미꽃에서 장미 향기가 날 수 없는 이유야. 그리고 학산별장의 위치도 히로뽕 악취를 가릴 수 있는 최적의 입지야. 집 앞에 수영만 앞바다가 있잖아. 바닷바람이 잘 부는데다 특유의 바다 냄새도 나니까. 또 그때 수영천은 폐수 처리가 잘되지 않아서 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대.

이황순은 총 300kg의 히로뽕을 밀조했어. 당시 돈으로 300억원 이상이야. 이황순은 이렇게 만든 히로뽕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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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마당에선 포장마차 리어카가 발견됐어. 마약 운반 시 위장하기 위해 사용한 거지. 낮에 하수인들이 집을 드나들 때는 월부 책장수나 수도 전기 검침원으로 철저히 위장했어. 그래서 동네 주민들도 전혀 눈치를 못 챘던 거야.

그런데 이황순 집에서 발견된 물건 중, 좀 특이한 장치가 있었어. 사우나 시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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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을 주사한 뒤, 더 빠르게 몸에 흡수되도록 하는 용도라는 거야. 이런 게 집에 있다는 건 어떤 의미겠어? 이황순도 히로뽕 중독자였다는 거지. 하루에 6차례 주사를 맞았대. 히로뽕의 품질을 검사하는 확실한 방법은 직접 주사를 맞아보는 거라고 해. 아마 이황순도 그렇게 시작한 주사 횟수가 점점 잦아졌을 거야.

그런데 이황순을 체포한 직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있어. 바로 보사부, 지금 보건복지부의 마약 단속반이야. 지청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달아나는 직원이 있질 않나, 갑자기 출근을 안 하는 직원이 속출해. 부산에 파견 나간 직원 3명은 아무 연락도 없이 잠적해 버렸어. 왜일까?

사실, 이황순이 검거되기 2년 전에 부산지검에 투서 한 통이 도착했어. 한때 이황순과 같은 조직원이었다는 남자인데, 배신을 당했대. 그래서 이황순에 대해 제보할 내용이 있다며 진정서를 낸 거야. 내용은 구체적이고 또 충격적이었어. '경찰이 이황순에게 뇌물을 받았다. 그래서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고 있는 거다'라는 내용이야. 조사 결과, 제보는 다 사실이었어. 이황순이 교도소에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교도소 의무과장에게 뇌물을 주고 가짜 진단서를 받았기 때문이야.

특히 1976년부터 79년까지 부산 마약단속반장으로 있던 김계장한테는 3차례에 걸쳐 5천만 원이나 건넸대. 이런 식으로 뇌물을 받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한 둘이 아냐. 당시 이황순한테 뇌물을 받아서 검거된 공무원은 모두 13명. 이황순과 함께 체포된 마약범이 12명인데, 마약범보다 뇌물을 받고 뒤를 봐준 공무원 수가 더 많아. 이황순이 마약왕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지.

▲ 사라지지 않은 마약왕의 흔적

마약왕 이황순은 당시 15년형을 선고받고, 또다시 감방 생활을 시작했어. 이황순이 검거됐으니 마약 문제는 일단락됐을까? 아니. 이황순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중소 규모 밀조 조직이 열 개도 더 남아 있어. 또 부산에 수사가 집중되니까 밀조 공장이 전국으로 분산되기 시작해. 무엇보다 히로뽕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본으로의 수출이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갈 히로뽕이 대거 국내로 역류해서 들어와. 그렇게 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도 히로뽕 중독자들이 점점 늘어나. 유흥가, 연예인, 가정주부, 회사원, 대학생까지… 무섭게 확산됐어. 히로뽕 중독자들의 강력범죄도 큰 사회 문제가 됐어.

"마산지검에 폭행치사혐의로 구속된 김씨. 그는 이날 히로뽕주사를 맞은 후 환각상태에서 한 살 짜리 자기딸을 '괴물'이라며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 씨는 영안실에 안치된 딸의 팔과 다리를 물어뜯으며 '마귀'라고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조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마귀를 죽였을 뿐'이라고 진술, 수사관을 놀라게 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가 '이 주사를 맞으면 농사일도 피곤하지 않고 부부금실도 좋아진다'는 히로뽕 밀매꾼의 꾐에 빠져 상습 투약자가 된 지 5개월 만에 '금수'로 변한 것이다."
-히로뽕 중독자 범죄 관련 신문 기사 中

이황순의 최근 근황, 궁금하지? 그런데 이후 이황순의 소식은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어. 생사조차도 말이야. 1980년부터 15년형이니 만기를 살고 나왔대도 1995년 출소이고, 생존해 있다면 지금은 아흔 정도의 나이일 거야.

마약왕 이황순은 1세대 마약범이야. 1세대는 일본 시장을 겨냥했던 마약범들이야. 2세대는 순수 국내파라고나 할까. 한국 시장에 유통한 마약범들이야. 3세대는 지금, SNS로 비대면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야. SNS를 이용하니 구하기가 훨씬 쉬워졌어. 그러다보니 구매자뿐 아니라 판매자의 나이가 10대인 경우도 많아졌어. 최근 뉴스에도 보도됐잖아. 강남 학원가에서 청소년들한테 마약이 든 음료수를 나눠준 사건.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약에 노출될 수도 있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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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 향기가 가득한 장미정원에서 이황순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마약은 사라지지 않았어.

마약 청정국이던 우리나라는 2016년 그 지위를 잃었어. 인구 10만명 당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일 때, 국제적으로 '마약 청정국'으로 인정받거든. 이제 우리나라는 그 수치를 넘은 거지. 지난해 적발된 마약만 769kg이야. 서울 인구 전부가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래.

마약에 손을 댄다는 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들어간다는 거야. 오늘의 '꼬꼬무' 이야기를 통해 마약의 위험성을 느끼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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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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