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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벌거벗은 세계사' 여색·쾌락·살인..명나라 위기 빠뜨린 희대의 폭군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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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6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명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세 명의 황제를 분석했다.

강력한 군사력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족을 최후 통일한 왕조가 바로 명나라였다. 그러나 명나라 멸망 원인 중 하나는 명나라 내부에 있었다.

여색, 음주, 사치, 낭비, 살인까지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명나라를 망조의 길로 끌고간 정덕제, 가정제, 만력제가 소개됐다. 이 폭군들이 명나라 역사를 100년 이상 집권했다.

천 년 간 멈춰있던 인류 최대 토목공사인 '만리장성' 공사를 재개했다. 오랫동안 방치돼 끊겨 있던 성벽을 보수했다. 만리장성으로 방비를 강화한 결과 경제적, 정치적으로 안정됐다.

9대 황제 홍치제는 법을 중시했고 대신들을 중용해 부패를 방지했다. 통치 17년 만에 인구 천만여 명 늘고 100만 석가량 쌀이 증가했다. 그러나 홍치제의 재위기간은 18년밖에 되지 않았다. 단명했기 때문.

성군으로 불리던 홍치제 뒤를 이어 등장한 정덕제는 14살에 즉위해 8살 때부터 공부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황제가 된 정덕제는 전쟁놀이에 심취했다.

정덕제는 '표방'이라는 동물원을 만들어 조공품이었던 사자, 기린, 표범 등 신기한 동물들을 모아놓고 맹수와 싸웠다. 무려 5년 간 은 24만 냥 이상을 들여 표방의 밀실, 가옥, 사냥터를 조성했다. 은 24만 냥은 당시 2만여 명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이러한 정덕제의 동물원 놀이에 병력이 낭비가 됐다.

정덕제는 맹수들과 정력 대결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정덕제는 표방에 여자들을 데려다놓고 여색을 탐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정덕제가 서역 여성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간신과 환관들이 서역 여자들을 바쳤다. 정덕제는 마앙이라는 장군의 여동생, 기혼자이면서 임산부였던 여자를 탐했다고 전해진다.

정덕제는 강빈이라는 장수와 정을 통했다. 강빈뿐 아니라 미모가 출중한 남자들을 불러 남색을 탐하기도 했다. 정덕제는 강빈에게 '주'씨 성을 하사하고 양아들로 삼기까지 했다.

강빈의 제안에 정덕제는 '주수'라는 가상인물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관직을 내려 전쟁터에 나갔다. 마치 게임 캐릭터를 키우듯 전쟁놀이를 했다.

반란군을 진압 후 쾌락에 빠져든 정덕제는 배에서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러다가 심한 감기에 걸렸고 정덕제는 급하게 양주에서 베이징까지 실려갔지만 결국 30대인 1521년 사망했다.

헤럴드경제

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변방을 돌아다니다 보니 정덕제의 후사가 없어 정덕제 뒤를 사촌 가정제가 이었다. 그러나 가정제의 아버지 호칭 문제가 불거져 17년간 논쟁이 이어졌다. 여러 문제로 가정제는 도교에 심취하게 됐고 급기야 미신에 빠지게 된다. 도사 소원절을 총애해 관직에 앉히고 국정 책임을 맡겼다.

가정제는 불로장생에 집착하게 됐다. 불로장생약에 어린 궁녀들의 생리혈이 필요하다며 1080명의 궁녀를 뽑았다. 어린 궁녀들에게 월경을 유발하기 위한 약을 먹였고 이로 인해 궁녀들이 많이 다량의 출혈로 사망했다. 또한 궁녀들에게 뽕잎이나 이슬만 먹여 맑은 생리혈을 받으려 했다. 착취가 심해지자 궁녀들은 가정제 암살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했다.

명나라에 위기가 덮쳤다. 몽골군 알탄 칸이 침략했다. 5만 명을 징집한 명나라는 몽골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이어 1년 만에 왜구가 명나라를 침략했다.

잠시 융경제가 즉위한 기간동안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듯싶었으나 융경제 역시 5년 정도밖에 재위하지 못했다.

융경제의 셋째 아들 만력제가 즉위했다. 정치가 장거정은 융경제의 부탁으로 만력제가 어릴 때부터 직접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스승 장거정의 비리를 알게 된 만력제는 충격을 받았다.

만력제는 회의도 불참하고 조정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황제 업무 파업을 했던 것. 이어 그는 자신의 무덤을 미리 만들었는데 무덤 아래 엄청난 규모의 지하 궁전을 만들어 국고를 탕진했다.

술에 빠진 만력제는 가죽 채찍으로 환관과 궁녀들을 때려 죽였다. 그의 손에 죽게 된 환관과 궁녀만 1000여 명이 넘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신들의 반대에도 만력제는 3천여 명의 군을 파병했다. 전쟁이 7년간 지속되며 군력이 소모되자 만력제는 4만 명이 넘는 군대를 다시 파견했다고 한다. 이렇게 파병된 군사가 약 17만 명이 됐고,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결국 재정적 위기가 환관들의 수탈을 불러일으켰고, 환관의 수탈이 민란으로 번져 명나라는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여진족의 침략까지 더해져 만력제는 48년간의 재위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276년간 이어진 명나라는 만주족 청나라에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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